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더니 미친년을 앞에 두고도 못 알아본 채 한 시간째 지랄하고 있는 손놈. 세상 똑똑한 척은 다 하지만 실은 멍청하고, 진상의 끝을 보여주겠다 노력하지만 내 앞 창구를 스쳐 지나갔던 진상 중에 제일 하수다. 그럼에도 내가 너를 봐주는 것은 혹시나 너로 인해 내가 시말서를 쓰지 않을까, 그래서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작은 기대 때문이다. 과연, 너의 능력을 보여줘!
내가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작은 영업점 구석 넓지도 좁지도 않은 창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지 10년째. 나는 지금 이 창구를 벗어날 방법을 찾고 있다. 창구 안에 앉을 생각만 했지 떠날 생각을 안 해본 터라 방법을 모르겠다. 그러니 진상 고객에 밉보여 민원을 받을 수밖에.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아니, 나는 처음 창구에 앉았을 때 참 기뻤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단 생각에 행복했다. 이 넓은 사회에 내 책상 하나가 온전히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그 마음이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왜 이 감사한 창구에 무수히 많은 사람이 거쳐 갔는지, 내가 왜 교육받을 시간도 없이 급하게 창구에 나오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이곳엔 쌍년이 있었다. 뉴스에 나오는 직장 내 괴롭힘 교본을 만든 사람. 기분이 태도가 되는 것을 넘어 모든 사람이 자기의 기분을 맞춰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 업무능력은 없지만 자존심은 센 멍청이. 이쁜 척 본인을 매우 공주 취급하지만 실은 못생긴 할망구. 본인이 기분 나쁜 날엔 직원들에게 서로를 지적해 보라 시키며 히죽대던 얼굴을 떠올리면 밥맛이 싹 사라진다. 민원인이 찾아오면 시끄럽다고 혼자 탕비실에 들어가 편하게 쉬다 상황이 끝나면 슬그머니 나오는 꼴을 볼 때면 진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빌런을 못 견딘 많은 젊은 여자 직원들은 이곳을 떠났고 그 사실을 참으로 재밌어하던 쌍년이었다.
그만두면 그만인 것을 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저 쌍년보다 하루만 더 일하자. 너의 끝을 내가 지켜보겠다. 마음을 먹고 나니 회사 생활이 편해졌다. 괴롭힘에도 반응이 없으니, 약이 오르는 쪽은 그쪽이었다. 책잡히지 않으려 업무며 근태며 완벽해지려 노력했다. 괴롭힘이 심해지면 나는 다음날 아주 일찍 출근했다. 출근부에 출근 시간을 제일 먼저 적어두고 웃는 얼굴로 싫은 그년을 맞이했다. 보아라 너 따위에게 반응할 내가 아니다 라며. 영업실적을 핑계로 직원들을 퇴근 못 하게 할 땐 보란 듯이 앉아 여유롭게 자격증 공부를 했다. 그리고 내가 약속이 있는 날에는 실적을 내고 일찍 퇴근했고, 매주 목요일 성당 예배를 이유로 쌍년이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최대한 영업활동을 자제하며 약을 올렸다. 당시 막내인 나의 업무 중에는 매일 아침 전 직원들의 커피를 타는 것이 있었다.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어 올 때 혹시나 내가 본인 커피에 무슨 짓을 한 게 아닌지 의심하며 머뭇거리는 쌍년을 지켜보는 것은 나의 작은 즐거움이었다. 그런 이유로 후임이 입사한 후로도 나는 매일 아침 쌍년의 커피를 책임졌다.
빌런 덕분에 나머지 다른 직원은 서로 함께 똘똘 뭉쳤고 돈독해졌다. 더 이상 괴롭힘은 괴롭지 않았고, 괴롭지 않은 직원들을 보며 괴로워진 것은 상대였다. 그렇게 쌍년은 힘을 잃고 노쇠해졌다. 나는 업무능력을 얻고 성격을 잃었다. 쌍년의 마지막 근무 날은 비루했다. 정년퇴직자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지급된다는 특별 휴가 하루 없이 마지막 날까지 쉬지 못하고 무의미한 출퇴근을 반복했다. 같이 점심을 먹어주는 이도 없이, 송별회도 없이 도망치듯 회사를 떠났다. 그 후 하루만 더 일하겠다는 나는 버틴 기간보다 더 오래 일하고 있다. 목표가 없어져서일까 당겨 쓴 업무능력 때문에 현재 하는 일이 지루해서일까 이 무료하고 따분한 일상이 지겹다. 나는 떠날 용기도 없는 것일까.
하수 진상이 지쳤는지 지랄을 그만두고 나를 쳐다본다. 뭘 쳐다보냐고 말하고 싶지만, 꾹 참으며 말한다. 저는 고객님을 이해시키기에 부족한 직원이다. 그러니 직접 중앙회나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으셔서 원하시는 답을 찾으셔라. 그리고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 이제 그만 제 앞 창구를 비워달라고. 참고로 이 업무는 제 담당이라 다른 창구를 전전해도 결국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게 될 거라 친절하게 안내도 해드렸다. 이 정도면 알아듣고 민원을 넣겠지. 그럼 나는 시말서를 쓰겠지. 자꾸 쓰다 보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려나 보다. 당황한 진상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겠다고 누굴 해코지하겠다는 게 아니었다 자기는 그런 나쁜 사람이 아니라 말한다. 당황해서인지 내가 무서운 건지 전자 서식으로 서류 작정하며 자꾸 취소 버튼을 누른다. 누르면 누를수록 다시 작성해야 해서 피곤한 건 손님 네놈인데 연신 미안하다고 하더니 결국 도망치듯 영업점을 나갔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패기 어디 갔을까.
나는 알고 있다. 스스로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란 것을. 나는 떠날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든 길을 찾고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떠나고자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이곳에 어울려진다는 것을. 어쩌면 끝내 나에게 시말서를 작성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렇다면 남아보자. 진상 처리기로 쓰임을 다 해보자. 주위가 시끄러울수록 스스로 차분해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