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에 글쓰기를 시작하다
마흔의 어느 날. 대학 동기를 만나 밥을 먹는데,
친구: 너 oo이 생각나?
나: 알지, 걔가 왜?
친구: 걔가 엄청 유명한 소설가가 된 거 알아? 열심히 하더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더라.
찾아보니 그 친구는 정말 많은 팬들이 다음 작품을 학수고대하는 유명한 소설가가 되어 있었다. 대학 때 함께 어울리던 친구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 끝에 꿈을 이루었다는 소식이 기쁘기도 하면서 왠지 잠이 안 오는 밤이었다.
나 어릴 적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눈물, 콧물을 다 빼놓는 드라마를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가, 어느 날은 10편이 넘는 장편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모두가 잠든 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사각사각 글을 쓰는 시간이 좋았고,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인생이 보람차고 행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점점 아버지는 작아지는 것 같고, 공부 잘하는 딸이 유일한 자랑인 부모님에게 '나는 돈을 못 벌어도 좋으니 평생 글을 쓰며 살겠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왠지 내가 작가가 되면 우리 아버지는 어깨 한 번 못 펴보고 계속 작아지다 점이 될 것만 같은 걱정도 들었다. 사실은 그냥 나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었고 용기가 없었던 것인데 아버지의 어깨가 눈에 들어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작가 대신 글을 쓰는 직업이면 되겠다는 생각에 변호사가 되었다.
변호사가 되니 정말, 매일매일 글을 쓸 수 있었다.
사람들은 변호사가 법원에 가서 판사 앞에서 멋지게 변론을 할 거라 생각하지만, 5분 단위로 진행되는 재판에서 1분 이상 말을 하면 재판을 지연시킨다는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될 뿐이다. 그래서 재판은 주로 20-30장의 서면을 미리 법원에 낸 뒤, '서면을 진술하겠습니다'라는 한 마디로 진행된다. 그러니 매주 몇 개씩 있는 재판을 위해 질리도록 매일같이 글을 쓸 수 있었다.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그 대가로 많은 월급을 받으며 나이 드신 부모님이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게 되었고, 먹고사는 문제로 전전긍긍하지는 않게 되었건만 마흔이 된 날의 마음은 즐겁지 않았다. 내 생각이 아니라 의뢰인이 원하는 바대로 의뢰인의 주장을 담은 글을 써주는 사람이어서일까,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지레 겁먹고 포기했던 겁쟁이 모습이 계속 떠올라서일까, 그냥 마흔이 된 투정일까 모르겠지만 마음이 답답했다.
사십춘기가 된 김에 만일 이 순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무엇이 가장 아쉬울까를 고민해 보았다. 세계여행을 가는 것, 한없이 놀아 보는 것, 최고의 변호사가 되는 것, 그런 것들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고, 내 어릴 적 꿈이 생각났다. 그랬다. 나는 좋은 글을 못 써보고 죽는 것이 가장 아쉬웠고, 지금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흔에 글쓰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