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에게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
당신을 잊고 살다가도 문득 생각나면 늘 심연에 빠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종착역은 당신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해요.
그래서 당신을 무서워했습니다. 종착이라는 건 끝이라는 거니까,
뭐든지 끝난다는 것은 댕강.하고 잘리는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더 무서운 건 언제 잘릴지, 그 누구도 모른다는 점이었죠.
주변의 죽음을 보면 항상 예측할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인지 항상 슬프기보단 실감이 안 났습니다.
슬픔에도 유효기간이 있어서인지, 실감이 날 때쯤이면 이미 휘발되고 없더군요.
그래서 늘 실컷 슬퍼할 수도 없어요.
당신은 예측할 수 없는 낯선 것들 투성이를 들고 2022년, 저에게도 찾아왔었습니다.
당신의 이름 두 자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익숙해지지가 않더라고요.
당신을 맞이할 준비를 혼자서 했었습니다.
그 준비는 그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끝나는 건 저 혼자였으니까요. 주변 사람들은 끝나지 않은 채, 연속될 테니깐요.
뭔지도 모른 채로, 흐릿한 끝을 구체적으로 준비했습니다.
준비를 하면서 알았어요.
삶이란건 당신을 맞이할 때 어떻게 해야 잘 맞이할 수 있을지를 계속해서 고민하는 과정들이라는 것을요.
당신을 최대한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삶이 좋은 삶이겠구나. 라고 처음 생각을 해봤습니다.
준비라는 건 별거 없더군요. 주로 인사를 준비했습니다.
가족, 친구들, 계절들, 제 방, 나무들, 자주 가는 카페들, 일기장 같은 것들에게요.
인사할 대상들을 정리하면서, 뭐가 중요한지를 알았어요.
왜 이렇게 늦게 알아챌 수밖에 없는 걸까요? 혹시 당신은 아시나요?
많은 의문을 뒤로한 채, 저는 지금도 필사적으로 당신을 피합니다.
당신은 필사적인 우리를 보며 우스울까 궁금하네요.
정해져 있는, 당신만 아는 끝들과 비교해보며,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까요?
딱 두 가지만 부탁하겠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많은 인류가 조금만 아파할 수 있을 때,
찾아와주세요.
많은 의문과 부탁이 휘갈겨진 편지지만,
늘 절실한 인류의 대표로 진심을 눌러 담아봅니다.
2024년 10월, 이제는 당신이 덜 무서운 한 사람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