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가을 Aug 06. 2023

[Review] 화음의 아름다움을 더 빛나게 만든 조율

아버지가 물었다. “내가 두렵니?”

아들이 우물쭈물하자, 아버지가 말한다.

“너 진짜 내가 두렵구나”


아버지와 아들. 서로 가장 닮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둘 사이는 늘 냉랭하다. 아버지는 늘 매서운 눈으로 아들을 보고, 아들은 그의 날카로운 행동에 또다시 상처받은 얼굴이다.


드니는 프랑스 음악계 최고 권위로 불리는 ‘빅투아르 상’을 수상한 지휘자다. 하지만 아버지 앞에만 서면 주눅 든 아이처럼 작아진다. 그의 아버지이자 음악 스승인 프랑수아 뒤마르 역시 연륜있는 지휘자이지만 자신 보다 인정받는 아들에게 질투심을 느낀다.


겉으로 표가 나는 날 것의 질투심은 그를 심술궂은 늙은이로 만들어 버린다. 아들의 시상식 자리에 모습을 비치지 않는 건 물론, 괜한 곳에 화풀이하고 택시 안에서 듣게 된 아들의 무대 볼륨까지 줄여 버린다.


그런 그가, 아이처럼 상기 된 표정으로 저녁 가족 모임에 나타났다. ‘예쁜 길거리 풍경’을 감상하느라 늦었다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가족들에게 프랑수아가 말을 이어 나간다. “오늘 엄청난 일이 있었어. ‘라 스칼라’에 가게 됐다고!”


라 스칼라는 모든 지휘자가 꿈꾸는 극장이자, 프랑수아가 40년간 갈망한 무대다.


하지만 며칠 후 드니는 라 스칼라의 제안이 사실 자신의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주최 측 실수로 제안이 잘못 전달 됐다는 걸 아버지에게 알려야 한다. 이미 어머니와 축배를 들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버지에게… 



영화의 맛을 돋우는 천상의 조미료, 음악


매 순간 음악이 난무하지 않아 좋다. 적재적소, 꼭 필요한 순간에만 울려 퍼지는 음악은 감정을 최대한으로 증폭시킨다. 일상적인 장면들을 배경음악 없이 담아내 현실성을 더 가중시켰다.


거기에 브람스, 모차르트, 라흐마니노프, 베토벤까지… 명곡이 올라간 영화가 맛이 없을 리가 없다. 샤프란, 트러플만큼이나 향긋한 최고급 조미료를 과하지 않게 잘 배분해서 사용했다.


미묘한 감정에 향긋한 오일을 떨어트리고 불 위에서 요리해 내 풍미는 깊고, 감성은 풍성한 육즙만큼이나 꽉 차있다. 중간중간 긴장을 느슨하게 만들어 주는 프랑스식 농담을 케이퍼처럼 곁들여 즐기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완벽한 무대에 다다르게 한 화음, 그리고 조율


피아노 조율의 첫 단계는 피아노를 열고 부속품을 살펴보는 것이다. 피아노 줄과 페달, 해머 등을 확인한다. 줄을 조이고 푸는 과정을 반복하면 이제 이 피아노는 아름다운 음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자꾸 마찰음이 생긴다면 먼저 뚜껑을 열고 갈등의 시발점을 찾아내야 한다. 프랑수아가 아들 집을 찾아가 오랜 시간 마음에 담아놨던 이야기를 툭툭 털어내는 것부터 시작이다. 물론, 그 과정이 꽤 투박했지만, 프랑수아에게는 큰 용기이자 결심이었을 테다.


그리고 드니의 아들이자 프랑수아의 손자는 조율에서 큰 역할을 했다. 테이블에 방치된 편지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린 후 할아버지와 화합할 방법에 대한 힌트를 준다. 그 역시 음악가 집안의 섬세함을 타고난 것 같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다. 대화하고, 갈등하고, 위로하고, 다시 음을 맞추는 그 모든 과정은 오케스트라 무대와 판박이다.


영화 마에스트로는 가족, 연인과의 화합 과정을 우아하게 담아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갈등을 겪고, 매듭을 풀고, 다시 포옹하기까지의 메시지를 음악 속에 넣어 아름답게 포장했다. 리본을 풀고 박스를 열었을 때의 벅참과 감동은 꽤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울려 퍼지는 클래식은 따뜻한 눈물을 곁들인 미소로 여운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작가의 이전글 [Review] 인생의 찬란함을 그린 기쁨의 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