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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stas Jan 19. 2024

여기가 아테네로구나

42일간의 배낭여행 9. 아테네

산토리니에서 밤 9시 15분 출발 비행기였으니 10시가 넘어 아테네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스 본토는 섬 그리스와는 전혀 다른 인상이다. 하지만 그걸 느낄 여유가 없이 정신없이 움직여야 했다. 공항철도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야 하는데 막차를 놓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행기 도착시간은 10시10분, 전광판에 확인한 공항철도 출발시각은 10시 22분이었다. 미션임파서블인가?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대중교통 이용을 경험으로라도 꼭 해보는 편인데, 전철은 길을 찾는 방식이 대동소이하다. 노선도 표지판으로 목적지 확인하고 색깔을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오차 없이 움직이더라도 표를 사는 시간도 필요했기 때문에 정말 엄청나게 뛰었는데, 내 표정과 얼굴의 땀을 보고 창구 직원도 표를 서둘러주었다. 티켓에 찍힌 발권시간 10시 20분. 요금은 9유로였고 아이는 무료라고 했다. 몇 살까지가 무료인지 물어볼 여유 따위는 없었고 아이의 교통비가 들지 않음에 감사하며 표를 받아 또 정신없이 달려 무사히 세이프, 그리고 공항철도 출발은 2분 지연 10시 24분이었다. 승객은 여행객들로 만석. 한 번 빨간 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이 시간에 전철에 아이는 하하 밖에 없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었고 하하는 곯아떨어졌다.



아테네에서 처음 묵은 곳은 오모니아역 주변이다. 여행자카페 정보에서는 우범지역으로 꼽는 곳 중 하나. 실제로 아시아마트에 가는 길에 길가에 늘어져 앉아 주사기 바늘을 꽂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치기도 했다. 도시 자체가 신화의 현장이고 유적지인 상상했던 아테네의 모습은 우리가 처음 만난 아테네인 오모니아역 주변에는 없었다. 관광객도 없고, 7층 숙소에서 내다본 거리는 오후 대여섯 시만 되어도 신기하게 한산했다. 하하의 장염도 아직 말끔히 떨어지지 않았고, 19일째 강행군을 해 온 터라 아크로폴리스 근처로 거처를 옮기기 전 하루는 숙소에서 빈둥거리기로 했다. 안경점에서 망가진 하하의 안경을 고치고, 밀린 빨래를 하고 사진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늘어지게 둘이 낮잠을 잤다.


침대에 누워 저 멀리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언덕이 낮에도 멋지고 밤에는 빛나기에 지도를 찾아보니 리카베투스(Lycabettus) 힐이었고, 다음날 가보기로 했다.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라고 한다, 해발고도 295미터. 올라갈 때는 푸니쿨라(Funicular)라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는데 이동시간은 십분 안짝. 꼭대기에는 하얀색의 작은 교회와 종탑과 올리브 나무 한그루와 아테네 국기가 휘날리고 있고, 사방으로 아크로폴리스를 비롯해서 아테네 시내 전경이 다 보였다.

탁 트인 전경에 여독이 다 풀리는 기분이 들어 뛰고 싶어 졌고, 내려오는 길은 왼쪽에 도시 전경을 두고 뛰었다. 한 20분 걸렸나? 이제야 본격적으로 우리가 아테네에 있음이 실감이 났다. 전날 마약에 절은 거리의 사람들을 보고 가라앉은 기분이 다시 업되면서 에너지가 샘솟는 것 같았다. 이게 장기 여행의 묘미지.



숙소로 돌아와 하하가 간절히 원하던 짜파게티를 점심으로 끓여 먹고 후식으로 수박까지 든든히 먹고, 짐을 챙겨 전철 두 정거장인 신타그마역 주변 두 번째 숙소로 이동했다. 신타그마 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니, 오모니아역과 두 구간 차이인데 맙소사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오모니아역 주변의 음산하던 분위기와 180도 다르고 여행자들이 가득하고 활기가 그렇게 넘칠 수가 없었다. 여기가 아테네 중심부로구나.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거리에 유적지가 가득한 곳. 걷다 보면 유적지가 나오고 또 좀 걷다 보면 나오고, 내가 서 있는 지금의 시간이 현재인지 언제인지 역사를 걷는듯한 그런 느낌, 그리고 그렇게 기대하고 고대하던 아크로폴리스를 드디어 눈앞에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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