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 아빠와 두 살 딸의 제주도 한달살기 프로젝트
"대한항공 KEOOO편 곧 이륙합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9월.
한산할 법한 월요일 낮 비행기였지만 비행기 안은 거의 만석이었다.
해외여행이 막히자 다들 제주도로 몰려간다더니 사실인가 보다.
직업병 대로라면 업계 용어로 '조지는' 르포 기사를 썼겠지만 난 육아휴직 중이니까.
비행기 옆자리엔 아내가 앉아있었다.
아내와 나는 저 먼 옛날 연애시절부터 매년 한 번씩은 꼭 제주도를 찾았다.
그런데 이번엔 새로운 손님이 있었다.
바로 아기띠에 매달려 내 품에 안겨있는 두 살 딸 '흰둥이'(이 이름의 유래는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자)였다.
흰둥이 인생 19개월차.
인생 첫 비행인 흰둥이는 이제 막 활주로를 달리는 비행기 창문 밖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다행히 흰둥이는 이륙이 시작된 뒤에도 크게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라떼는 초딩 때 처음 비행기를 타봤으니 세상 참 좋아졌다.
(참고로 라떼는 아디다스를 고딩 때 처음 신었다. 두 살 흰둥이는 벌써 아디다스 운동화만 세 켤레다.)
제주도 한달살기의 첫날이 시작됐다.
우리는 출발 몇 달 전부터 흰둥이에게 우리가 제주도라는 곳을 갈 거고
그곳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하고
비행기는 "위로, 위로, 위로" 갔다가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간다는 사실을 약 392번 정도 설명해줬다.
다행히 "위로위로위로" 이륙은 괜찮았지만
"아래로아래로아래로"는 쉽지 않았다.
태풍 찬투가 막 오키나와를 거쳐 제주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비행기는 로데오를 하듯 요동쳤다.
아내와 나는 손을 꼭 잡고 바들바들 떨었다.
슬슬 엄마아빠가 뭔가 이상한 걸 꾸미고 있다는 걸 눈치챈
두 살 천재(!) 흰둥이는 마침내 고도가 내려가면서 귀가 먹먹해지자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날 데리고 뭘 하는 거냐 이것들아아아아아아)"
그제야 깨달았다.
비행기 안에서 우는 아이를 그냥 두는 개념 없는 부모들은 달래지 않는 게 아니라 달랠 수 없었다는 걸.
태어난 지 19개월 만에 최대 위기를 맞은 흰둥이는 정말 온몸을 버둥거리며 울었다.
사실 여기까진 예상범위에 있었다.
우리는 육아 치트키 '거버' 파우치(이건 요즘 엄마아빠들만 아는 용어다)가 있었으니까.
흰둥이는 거버를 입에 물자 꿀떡꿀떡 넘기며 진정되는 듯 했지만...
곧바로 아빠 어깨+엄마 팔+비행기 시트에 먹었던 걸 그대로 토해냈다.
엄마아빠의 멘탈도 함께 6000피트 고도 속으로 증발했다.
그 광경을 보고도 "괜찮다. 그냥 가시라"며 웃어줬던
스튜어디스 누나? 언니? 이모? 동생?의 프로페셔널한 웃음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겨우 도착한 제주.
이미 제주도에 유배 온 추사 김정희, 흑산도에 도착한 정약전 같은 기분이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홍보영상 속 새파란 하늘을 자랑했던 서울과 달리
제주도는 태풍이 미리 보낸 구름으로 가득했다.
비행기 착륙 직전까지도 땅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지난 주말 제주도로 미리 보낸 우리의 작고 귀여운 아반떼는 공항 주차장 저어어어어기 끝에 서있었다.
사람은 셋. 우산은 하나.
우리는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흰둥이에게만 우산을 씌운 채 미친 사람처럼 차를 향해 뛰었다.
남들이 보면 아기 납치하는 줄.
그렇게 와이퍼를 3단으로 틀어도 앞이 잘 안 보이는 비를 뚫고
한 시간 만에 도착한 숙소에 도착했다.
협재 해수욕장 근처. 중산간 한가운데 세상 뜬금없이 지어진 외진 타운하우스였지만
이곳에도 현대 플랫폼 기술의 힘은 뻗어있었다.
무려 흑돼지+문어구이가 배달되는 고깃집이 있었다. 우리가 누굽니까. 배달의 민족 아입니까.
밤이 되자 흰둥이를 재우고 우리는 서로를 토닥토닥해주며 맥주를 마셨다.
고생은 했지만 기억에 남을 제주도 한달살기의 첫날이었다며.
그때까진 몰랐다.
맨날맨날맨날맨날 밤마다 술을 찾게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