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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남주 Aug 19. 2021

울 딸은 돈 먹는 하마였어요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돈은 자신이 하고 싶은 욕구를 채워주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돈에 대해서 자제력을 배우면서 살아야 하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     

아이를 키울 때 어느 정도 선에서 경제관념을 만들어줘야 할지에 대해서는 모든 부모님들이 고민하는 부분이 아닐까싶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프로 축구선수이니 연봉도 괜찮고 시즌을 뛰면서 승리수당도 꽤 들어오는 편이다. 지난달에는 엄빠의 커플신발에다 오빠의 운동화까지 선물을 했다. 이번 달에는 무더위를 이기자고 ‘오이도’에 소풍을 갔다. 가족들의 건강을 챙긴다고 아빠가 좋아하는 무한리필 조개구이도 대접 했다. 어릴 때 ‘돈 먹는 하마’가 지금은 ‘돈 잘 버는 하마’가 되었다고 아빠는 흐뭇해한다. 돈 먹는 하마? 지금부터 딸래미의 초등시절 돈 먹는 하마가 된 이야기를 한번 풀어보겠다.   

   

울 부부는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아이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편이었다. 그런 면에서 울 딸은 엄빠를 당황스럽게 하는 일이 많은 아이였다. 그 중에 아빠가 지어준 ‘돈 먹는 하마’의 별칭은 우리를 가슴 서늘하게 하면서도 웃기게 만들었다.     


초등학교시절이었다. 동네 축구를 하던 딸래미는 더운 여름이면 축구를 하다 목이 마르면 문방구에 가서 음료수라도 사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었다. 거기에 함께 노는 친구들에게도 한 턱 쏘는 걸 좋아했다. 돈 쓰는 데에는 아주 기분파였다. 일하느라 바쁜 엄마가 집에서 일일이 챙길 수 없었으니 스스로 찾은 방법이 온 가족의 돈이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슬쩍슬쩍 사용하는 습관이 있었나보다. 아빠는 저녁에 귀가하면 주머니에 있는 동전들을 털어 자기만의 돈 통에 던져두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돈 통을 드는 순간 묵직해야 할 통이 가벼워서 내심 놀랐다고 한다. 뚜껑을 열어보니 500원짜리는 아예 보이지 않고 10원짜리만 가득하게 남아 있는 것에 순간 뜨끔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아빠의 예민함으로 아들과 딸에게 누가 가져갔느냐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ㅎㅎㅎㅎㅎㅎ      

아무리 어린 녀석들이지만 쉽게 자백 할 리는 없었다. 아들 녀석은 돈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불편을 느끼지 않는 형이었다. 오히려 돈이 있으면 서랍에 던져두었다. 딸래미가 필요할 때 슬쩍 꺼내가는 것도 용납할 정도였다. 울 부부는 확실히 딸래미가 한 것인 줄 알지만 정직하게 살 기회를 주고 싶었다. 아빠는 밤잠을 설칠 정도로 고민에 빠졌다.  

    

‘예쁜 딸래미를 도둑〇으로 키울까봐’ 걱정하는 신랑에게 한마디 던졌다.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게 많았던 나의 경험과 동네에서 함께 자란 선배언니의 경험이었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한 목마름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그 때 안 해봤기 때문인 것 같다는 것과 도벽이 있었던 동네 선배 언니의 아버지는 도둑질을 하다 들킬 때마다 두들겨 패기도 하고 나무에 매달아두기도 하는 엄벌을 했다는 예를 들어주었다.  그 때 선배언니는 무서워서 잠시는 멈출 수 있었지만 그 버릇을 끊어내지는 못했다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야단치는 것 보다 아이의 마음 자락에 있는 하고 싶은 욕구를 채워주는 게 훨씬 지혜로운 방법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었다.  

    

며칠 고민을 하던 신랑이 내린 결정은 돈 통에 모으는 것은 딸래미를 위한 것이라고 내어주는 것이었다. 아빠가 예쁜 딸이 더울 때 음료수라도 사 먹으라고 넣어 뒀던 거라고 설명을 하면서 언제든 필요하면 가져가서 음료수도 사먹고 지금처럼 친구들에게 쏘는 것도 할 수 있도록 여유 있게 넣어두겠다고 했다. 그 후 아빠는 딸래미의 돈 통이 비지 않게 천 원짜리랑 오천 원짜리 지폐도 가끔 넣어주면서 딸 바보 아빠의 행보를 이어나갔다. 이때부터 넣어두면 사라지는 돈을 보면서 아빠가 딸에게 붙여진 별명이 ‘돈 먹는 하마’였다. 끊임없이 돈을 먹어대는 딸래미를 귀엽게 불러보는 애칭이었다. 

    

시간이 흘러 스물을 넘긴 딸래미가 그 때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어린 마음에 아빠의 화내는 모습이 무서워서 말을 못했는데 아빠가 자신을 위한 돈 통으로 만들어주어서 감동 먹었다고 했다. 그 후로 어떤 것에도 남의 것에 욕심내는 마음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했다. 잔재주로 가족들의 돈을 슬쩍하던 것이 공식적으로 쓸 수 있도록 받았기 때문에 진짜 자기 돈이 되는 순간을 만난 행운이었다.  

    

아이들의 행동을 어른들의 고정관념으로 가두지 않고 본질에 근접했던 교육방식이 결국 좋은 결과를 내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뭐든 하고 싶어 하는 딸래미는 꼭 나를 닮았다.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았다. 하고 싶은 건 많지만 경제적인 여건이 안 된다는 이유로 제재를 많이 받았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목마름이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많은 비용으로 쓰이는 현실이었다. 비용지출에 대한 나의 상처가 나를 닮은 딸에게 관대해 질 수 있는 담금질이었다고 생각한다. ‘안 된다, 나쁜 것이다’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본질을 보았던 시간. 아이의 욕구를 이해했던 생활방식에 스스로 가족들에게 빚 갚음을 하는 시간이라면서 한 턱 쏘는 이벤트를 자주하는 딸래미의 행동이 대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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