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류지수는 여자축구선수다. 축구경기에서 이기려면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활약이 단연 최고다. 딸아이가 축구를 하기 전에는 골 먹는 건 무조건 골키퍼가 잘못해서인 줄 알았다. 골을 넣는 건 필드 선수지만 골 막는 건 골키퍼의 몫인 줄 알았으니까. 승리의 영광은 골을 넣은 선수에게 가고 패배의 원인은 골키퍼에게 쏠린다는 부담감으로 보고 있었기에 걱정을 많이 했다. 축구를 몰라도 너무 몰랐던 과거의 내 모습이다.
지수가 처음 축구선수를 시작했을 때 축구를 하고 싶어 하는 동년배 친구들이 많았다. 당시 선수 출신이 아닌 지수를 선수로 받기에는 내키지 않은 감독님이 골똘히 생각한 포지션이 골키퍼였다. 축구는 공을 차고 공격하고 싶은 욕구가 많은 종목이기에 골키퍼는 안 하려고 한다. 골키퍼의 역할은 뒤에서 선수들의 전체 움직임을 파악하고 소리쳐주고 격려해야 하고 골이 오면 막아야하는 숙명이기 때문에 피하고 싶은 포지션이다. 제일 약한 포지션이기도 하기에 지원자도 없는 편이다. 누구든 골 넣고 세리머니 하는 공격수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니까 당연한 이치다. 축구를 좋아하지만 축구 못하는 사람이 맡는 포지션으로 오해도 많이 한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축구경기를 보면 공이 우리진영으로 오면 벌써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예민해서 경기 내내 가슴 졸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공이 오는 각도가 보이고 선방하는 장면에서는 짜릿함까지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골키퍼의 포지션으로 활약하는 딸래미 덕분이다.
축구에서 골키퍼를 하려면 유리한 조건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체력은 기본이다. 요즘은 당연히 운동을 좋아하니까 체력은 기본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다.
첫 번째 조건으로는 뭐니 뭐니 해도 큰 키다. 키가 작으면 ‘만세 골’을 먹기 쉽다. 상대편에서도 골키퍼의 키가 약점이라면 ‘만세 골’을 많이 유도하는 전략이 나오게 되어있다. 축구를 시작 할 때 또래에 비해서 키는 월등히 컸기에 감독님이 추천하신 것 같다. 지금도 골키퍼 중에서 키는 밀리지 않는다.
두 번째는 잔발 사용이 유리하다. 중 고교 시절에는 감독님과 한명의 코치 샘이 선수들을 지도하는 시스템이었다. 감독님과 골키퍼전문 코치님과 필드전문 코치님이 지도해야 좋은데 학교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 필드코치님만 있었다. 골키퍼는 외부로 훈련을 가야하니 엄마가 훈련장으로 픽업해서 다니는 매니저 역할을 담당 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서울에서 멀리 시흥까지 골키퍼 훈련을 다닐 때 훈련 량도 중요했지만 기구를 활용한 다양한 훈련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잔발 사용이란 게 빠르게 민첩하게 움직여서 상대의 공을 막아내는 중요한 기술임을 보게 되었다. 콘을 세워두고 앞으로, 옆으로, 사이로, 건너뛰기가 아주 빠르게 움직이려면 잔발의 움직임이 필수였다. 춤꾼인 딸래미에게 잔 발 사용은 배우기 쉬운 것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힘든 과정이었다. 세상에 쉬운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실히 배웠다.
세 번째는 평정심과 담대함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상대선수가 치고 들어 올 때 나가서 막아야 할지 뒤로 물러나서 막아야 할지를 판단하는 것이 평정심이다. 판단과 함께 나가야 할 때 담대함이 없으면 쭈뼛거리게 되고 골을 먹기 십상이다. 지지난해 합천 선수권에서 팀이 결승까지 올라갔을 때 생방송으로 중계했었다. 딸 바보 아빠의 응원은 남달라서 울산에 있는 친구들의 단톡 방에 방송 줄을 공유했었다. 진땀을 빼는 경기였는데 딸래미가 과감하게 나와 선방을 하고 뒤로 물러서는 장면을 보고 친구 왈 “지수는 와 저렇게 무식하게 나가노?” 보는 내내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단다. ㅎㅎㅎㅎㅎㅎ 그 때 그 담대함으로 팀이 선수권 대회에서 10년 만에 ‘우승기’를 가져 올 수 있었는데 말이다. 실업 1년차에 GK(최고의 골키퍼)상을 받으면서 부끄러웠다고 하지만 선수에게는 이런 담대함은 꼭 필요한 마음가짐인 것 같다.
11명이 원 팀인데 필드에 뛰는 10명의 선수 뒤에서 문을 지켜야 하는 골키퍼는 전체를 보고 리드를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다. 얼마 전에 인텨뷰를 하면서 “경기 중에 뒤에서 선배들에게 소리를 치기도 하는데 부담감은 없느냐”는 질문에 “경기장 안에서는 선후배가 따로 없다. 할 말은 다 한다. 심했다고 생각하면 경기가 끝난 뒤에 사과를 한다.”고 했다. 경기를 뛰는 자세에서 막히지 않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요즘 선방을 잘 하고 있는 모습이 많은 활력을 받고 있다. 팀이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류지수 골키퍼의 슈퍼세이브’동영상이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골키퍼는 인텨뷰를 잘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올 시즌에 벌써 두 번째 인텨뷰까지 하는 걸 보면 골키퍼로써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선방하는 유튜브와 인텨뷰 내용을 함께 공유해본다.***
https://n.news.naver.com/sports/kfootball/article/139/0002151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