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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rewriter Dec 21. 2020

2019년 12월 5일

아버지와 낚시

아버지의 취미는 낚시다. 매일 밤늦게 들어와 칼로 생선을 다듬었다. 그리곤 몇 조각 주워먹고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아버지는 지인들이 집에 놀러올 때마다 그것들을 꺼내 초장과 함께 대접했다. 제주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럽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생선 냄새가 싫었다. 생선 냄새라기보다는 바닷물이 풍기는 그 특유의 짠내가 싫었다. 현관문을 열마자마 바닷물에 젖은 신발에서 나는 짠내가 진동할 때, 그런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물론 거기에 가타부타 불평을 해본 적은 없다. 짠내가 밴 신발, 옷은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건 방 깊숙이 끼치는 냄새였다. 그것은 섬유유연제라든가 향초를 가지고 덮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었다. 냄새에 대한 예민한 감각은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도 안다. 그것을 직접 묻진 않았지만, 코를 킁킁거리는 사람을 여럿 봤다.


우리 집 앞 바다

그렇지만, 낚시는 아버지의 유일한 낙이다. 이것마저 없다면 아버지는 이 힘든 삶을 버틸 재간이 없다. 평생 막일만 한 사람이다. 넋을 놓고 바다에 앉아 있는 건 무언가를 낚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그런 당신은 허탕을 치는 날도 많았다. 아무것도 낚지 못하고 오는 날이 며칠 연속 이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바다를 꾸준히 찾았다. 아무것도 못 낚은 날에도 어김없이 짠내는 집 안을 덮었다. 싫었다. 냄새는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섰다. 코끝을 찌르는 이 냄새는 한 인간을 더럽거나 혹은 돈 없는 사람으로 단번에 낙인찍는 힘을 가졌다. 비누를 묻혀 박박 문질러도 냄새는 잘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그 비누 냄새에 은은하게 번지는 바다냄새를 예리하게 포착해냈다. 아버지가 소파에 앉은 내 옆으로 오면  나는 즉시 자리를 옮겼다.


시인으로 등단을 하고서 시상식에서 담대하게 밝힌 소감―아버지, 어머니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바로 이 바다 냄새 앞에서 무너졌다. 허나 애써 외면해야만 그와 싸우지 않을 수 있었다. 부딪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감정소모가 우리 가족 모두를 짓누르는 일이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다시 나는 우연히 아버지를 만나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 아버지는 머리를 쥐어뜯긴 채 집으로 왔다. 왼쪽 입가는 찢어졌고, 광대는 부은 상태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다. 그는 가벼운 다툼이 있었다고 둘러댔다. 머리엔 서너 개의 땜빵이 있었다. 피가 흘렀고, 아버지의 한 손에는 머리카락 뭉치가 있었다. 내가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느냐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자기가 더 많이 때렸다면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날도 아버지는 빈손으로 왔다. 아주 잠깐 아버지의 머리채가 쥐어뜯기는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누군가에가 맞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엉터리 같다고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바다에서 낚시를 하다 정말 커다란 모비딕과 대치하다 생긴 상처라고 믿기로 했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앙상한 아버지의 몸에 없는 근육을 붙여 설명하지 않으면, 나는 그저 무기력한 자식 새끼가 될 것만 같았다. 나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연고를 발라주지도 않았다. 낚시터에서 자리다툼을 했는지, 길을 가다 시비가 붙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싸움치고는 상처가 깊었다. 아버지는 여느 때와 같이 말이 없었다. 거실에 앉아 UFC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엔 바다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 이건 위선의 힘이다. 이 냄새를 말끔히 씻어주는 건 나의 알량한 ‘위선’, 아버지에 대한 ‘동정심’인 것이다. 그 가식적인 감정이 없이 나는 아버지를 대할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을 앞세워야만 아버지 옆에 앉을 수 있었다. 뽑힌 머리는 다시 자라지 않았다. 그런 빈자리가 없이는 아버지를 마주할 수 없단 게 참 슬펐다. 그런 게 없이는 웃으면서 아버지를 대할 수 없었다. 코를 막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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