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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백 Jun 14. 2021

우정

은 어떨 때는 과거에서 날 벗어나게 해 준다


내가 삶을 살아왔던(어쩌면 지금도 살고 있는) 방식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보자면,

나는 좋은 삶을 살던 사람만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나는 항상 좋은 삶을 살고 싶어 하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처럼 좋은 삶을 바라는 사람은 애초에 좋은 삶을 살 수 없다고 단정 짓고 살게 되었다.


이런 삶의 방식이 언젠가부터 근거(?)를 가지게 됐는데, 그건 바로 심리학에서 배우는 애착 형성 개념 때문이었다. 지금 수강하고 있는(놀랍게도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기말고사가 9시간 남았지만... 공부는 안 하고 이러고 있다.) 발달심리학 수업에서도 애착 형성에 대해 배우고 있는데, 이 개념에서 배우는 중요한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영아기에 주 양육자(일반적인 경우 엄마)와 형성하는 애착이 이후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크게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으로 나뉘고, 불안정 애착은 세부적으로 저항 애착/회피 애착/혼란 애착으로 다시 나뉜다.


난 이 개념을 1학년 때 들은 심리학 교양 수업에서 듣고는, 난 안정 애착 유형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양 수업 교수님께서는 두 사람이 관계를 맺을 때 한 사람만 안정 애착 유형이어도 그 관계는 잘 유지가 되지만, 둘 다 불안정 애착 유형을 가진 경우에는 쉽게 갈등이 생긴다고 하셨다. 그럼 나는 안정 애착 유형인 사람과 있을 때 관계가 잘 유지될 텐데(이때 나는 좋은 삶을 사는 것이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좋은 사람이라면 난 나 같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그런 기회가 내게 잘 오지는 않겠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난 항상 누군가를 대할 때 겉으로는 친해지고 싶어 해도 마음속으로는 거리를 두려고 했다.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은 했지만 사람들이 날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극단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날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사는 게 더 마음 편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런 마음이 남아 있어서 누가 날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하루 종일 생각이 많아지기도 한다.


이게 우정이랑 무슨 관련이 있냐 하면, 이제부터 조금이나마 날 괜찮게 만들어준 친구 얘기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과에 입학한 동기였던 이 친구는 새내기 때부터 친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친해진 건 2학년 때부터였다. 2학년 봄 학기 때 중도 휴학을 한 나는 다른 동기들이 수업 듣느라 바쁠 때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만 누워 있는 삶을 보냈는데, 이 친구는 마침 매주 목요일에 4시간 우주 공강이 있었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매주 바람도 쐴 겸 이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는 게 그 학기의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여름 계절학기도 같이 듣게 되고, 이후에도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이 놀러 다니면서 지금까지 친한 친구로 남아있다.


이 친구랑 한창 친해질 때만 해도 난 내 인생을 한참 비관적으로 바라보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나보다 좋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부러웠다. 하루는 내가 사람들을 보며 생각해 온 그대로를 그 친구에게 말했다. '난 사람들이 다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해.' 그러자 그 친구는 진심으로 슬퍼하고 화를 내면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언니를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언니가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뭐가 돼.' 그 말을 듣고 난 정말 놀랐었다. 부모님도 내게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나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알지도 못하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해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내가 우울할 때면 편지를 써주기도 하고, 내가 아무 말 없어도 같이 있어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말하는 감자에서 우정에 대해 얘기한 바에 따르면 이 친구는 오랫동안 나를 '봐준다'라고 생각하고 항상 내 곁에 있어줬다. 난 그 친구가 써준 편지에 답장 한 번 쓰지 않았고, 가끔은 바빠서 약속을 취소하고, 최근에는 그 친구 집을 스터디 카페처럼 이용했지만 여전히 내가 전시회를 보러 가자고 하면 나와 함께 전시장에 가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친구다. 


다시 애착 형성으로 돌아와서, 1학년 교양 수업 때는 얕게 배웠던 개념을 이번 학기 발달심리학에서 비교적 깊게 배우면서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애착 역사는 운명인가?' 애착은 발달 역사에서 중요한 요소이고, 때로는 운명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안정적인 애착을 영아기에 형성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두운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왜 1학년 때 교수님은 이 사실을 안 알려주셨는지 모르겠다. 내가 못 들은 걸 수도 있지만.) 살면서 생애 이후의 애착이 어릴 때 형성한 애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심지어는 꼭 애착이 아니더라도 다른 요건이 좋아지면 안정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내가 지금 100% 안정하고 편안한 상태인지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예전보다 편안한 사람이 되었다. 물론 그런 변화에 영향을 미친 요소는 다양할 것이다. 평생 같이 살던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고, 적지만 내 힘으로 돈을 벌고 있고, 가끔은 어릴 적 내가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을 해내기도 하니까. 하지만 생애 이후에 형성한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내 심리적 상태의 변화를 야기했다고 한다면, 그 어떤 사람은 그 친구일 것이다.


그 친구 덕에 과거에 갇혀 살면서 나의 과거는 죽도록 싫어하던 내가 요즘은 휴대전화 갤러리를 뒤져보며 추억 여행도 하고 있고, 예전에 찍은 사진을 다시 보면서 '이때 찍은 사진 되게 예쁘네'라고 생각하면서 즐겨 찾는 항목에 추가하기도 한다. 과거의 내 모습을 꼴 보기도 싫어해서 중고등학생 때 찍은 사진 하나 가지고 있지 않는 내가 이렇게 바뀌었다. 아마 이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전에 그 친구에게 보여줄 텐데, 그 친구가 이 글을 2년 전 써준 편지의 답장의 프롤로그 정도로 생각해준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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