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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백 Jul 18. 2021

품위 있는 삶을 사는 염세주의자

미드 <House M.D.> 시즌 4 에피소드 15, 16

미국 드라마 ‘House M.D.’의 주인공 그레고리 하우스. 그는 과거에 받은 수술로 인해 걸을 때마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다리 통증 때문에 마약성 진통제를 사탕처럼 먹는 인물이다. 괴팍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가 해고당하지 않고 의사로 일할 수 있는 것은 어느 드라마 속 클리셰가 그렇듯 그가 탁월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가 일하고 있는 병원에서 진단의학과는 그를 위해, 그에 의해 존재하는 분과일 정도로 그는 병명을 알 수 없는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에 뛰어나다.


어느 날 그는 한 버스에 탄 채 사고를 당했고, 지난 4시간의 기억이 증발한 상태로 깨어난다.  하우스의 친구 데이비드 윌슨은 사고가 일어난 날 당직이었기에 집에 없었고, 바에서 술을 마시다가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는 하우스의 전화를 윌슨 대신 그의 집에 있었던 애인 앰버가 받았다. 하우스를 데리러 왔다가 도통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는 하우스 때문에 함께 술을 몇 잔 마신 앰버는 그와 함께 버스를 탔다가 사고를 당했고, 이웃 병원에서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다. 그녀가 신원 미상의 환자로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하우스와 윌슨은 그녀를 자신들의 병원으로 옮기지만, 그녀는 사고 이후에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인해 계속 장기 부전을 일으킨다. 심장이 멈춰가던 그녀의 목숨을 어떻게든 연장하면서 그녀가 가진 병과 치료법을 강구하던 하우스와 진단의학과 팀, 그리고 윌슨은 최후의 방법으로 하우스가 잃어버린 사고 날 4시간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그의 뇌에 전기를 가하는 치료를 하게 되고, 하우스의 기억을 통해 이들은 자신들이 앰버를 구할 수 없으며 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왔을 때부터 그녀를 구할 수 없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억을 되살리는 치료를 하다가 발작을 일으켜 혼수상태에 빠진 하우스를 뒤로 하고, 윌슨과 병원의 동료들은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앰버를 깨우고 작별인사를 한다. 우연에 불과하지만 치명적인 사고가 일어났고 자신들이 그녀를 구할 수 없었다는 사실, 그녀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 마취를 중단시키고 그녀에게 인사해야 한다는 사실에 애인인 윌슨은 절망한다. 결국 깨어난 그녀는 병원 동료들 그리고 윌슨과 작별인사를 하고 윌슨이 그녀에게 키스하면서 그녀의 심폐 기능을 돕던 장치의 전원을 끄자, 마치 기계의 전원이 꺼지듯 그녀는 눈을 감는다. 이렇게 하우스의 머리(House’s Head, 시즌4 에피소드 15의 제목)와 윌슨의 심장(Wilson’s Heart, 시즌 4 에피소드 16의 제목)은 앰버를 떠나보내게 된다.


앰버가 죽고 나서, 혼수상태에 있는 하우스는 온통 흰색만이 가득한 곳에 선 버스 한 대에서 그녀와 함께 그 버스에 타고 있다. 하우스는 ‘삶은 무작위적이어선 안되기 때문’에, 염세적인 약물 중독자는 버스 사고로 죽어야 하고 한밤 중에 불려 나온 젊고 선량한 사람들은 무사히 집에 돌아갔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두가 죽기 마련(Everybody dies.)이고 삶은 무작위적이다. 그렇기에 슬퍼하는 애인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난 앰버는 버스에 남아 있고, 애인을 잃은 윌슨이 자신을 싫어할까 봐 두려운 하우스는 버스에서 내려야 한다. 


흔히 생각하는 사후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장면에서, 나는 영화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2011)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잠시 죽음의 상태에 놓인 해리는 위에서 설명한 ‘House M.D.’의 장면과 비슷한, 흰색으로 뒤덮인 킹스크로스 기차역에 닿게 된다. 그곳에서 이전에 죽은 호그와트의 교장 덤블도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덤블도어는 ‘죽은 자를 측은히 여기지 말고, 살아남은 자들은 측은히 여겨라. 그 누구보다 사랑 없이 사는 사람들을 측은히 여겨라’라는 말을 남기고 기차역에서 해리와 헤어지고, 해리는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 분명 다른 작품이지만, 난 ‘살아남은 자’와 ‘사랑 없이 사는 사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하우스를 측은히 여길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시리즈 전체의 마지막 에피소드(시즌 8 에피소드 22, Everybody Dies)에서 말했듯, 하우스가 다리에 장애를 얻게 된 후로 그의 삶은 고통밖에 없었으며 그러한 반작용으로 주변 사람들을 상처 주며 살아왔다. 고통뿐인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달고 살며 애써 살아남아 얻은 거라고는 또 다른 고통뿐이지만, 버스에서 내린 그는 그에게 다가올 또 다른 수많은 고통들을 기다리며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는 치료의 실패로 인해 좌절하고 나서 품위 있는 죽음을 원한다는 환자에게 품위 있게 살 수는 있어도 그렇게 죽지는 못한다고 말하고(시즌 1 에피소드 1, Pilot), 자신의 삶이 끝났다고 생각해 생명 유지를 포기한 환자를 법적 책임을 무릅쓰고 살리는(시즌 1 에피소드 9, DNR) 사람이니까.


‘House M.D.’를 이제 와서 추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의심의 여지없이 명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지만, 시대적 배경 때문인지 잘못된 인물 설정 때문인지 이 드라마에는 소위 말하는 빻은 말들이 5분에 한 번씩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9년 한 해 동안 여덟 시즌으로 날 위로해준 하우스가 있기에 염세적인 내가 지금까지 살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게는 의미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지팡이를 잃고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하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가던 그가 버스에서 등 떠밀려 내렸듯이 인생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던 나의 등을 떠밀었다. 살아남은 자로서 받게 되는 측은함을 받아들이며, 죽음 대신 품위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 여전히 염세주의자인 나는 그렇게 살기로 했다.




+ 하지만 그가 8년 동안 방영한 백 개 넘는 에피소드들에서 한 빻은 말들은 닮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그의 의학적 능력과 전 분야를 아우르는 뛰어난 지식은 닮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닮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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