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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백 Dec 22. 2021

너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정말 많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후기

이 글에는 다음 영화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파이더맨> 전 시리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전 시리즈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어벤져스> 거의 전 시리즈



예상 가능한 전개와 예상할 수 없는 결말


이 영화의 서사를 파악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가장 서사 구조가 비슷하다고 느꼈던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을 가져와 이야기해보겠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이하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가 우주의 절반을 날려버린 이후, 아마 다음 영화에서 다뤄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타노스를 무찌를 것인가’, 혹은 ‘어떻게 우주의 절반을 원래대로 되돌릴 것인가’였을 것이다. 실제로 인피니티 워 개봉과 엔드게임의 개봉 사이, 많은 사람들이 해당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예상했다. 그때 가장 높은 가능성과 함께 거론된 것이 ‘시간여행’이었고, 엔드게임에서는 실제로 주인공들이 시간여행을 통해 인피니티 스톤을 다시 모아 사라진 우주의 절반을 되살리게 된다. 또한 이전 영화에서 결국 자신의 목적을 이룬 빌런 타노스를 어떻게 처리할까도 팬들 사이에서 큰 이슈였는데, 이것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도 무색하게 이 문제는 비교적 단순하게 해결된다. 영화의 초반부에 남은 어벤져스가 타노스를 찾아가 토르가 그의 목을 잘라 죽이는 것으로. 하지만 예상 가능하고 단순한 전개로만 영화가 구성되었다면 마블의 영화는 지금과 같이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시간여행으로 인해 과거의 타노스가 주인공들이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린 현재로 오게 되고, 타노스에게 손쉽게 다시 여섯 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지만 주인공들은 힘을 합쳐 인피니티 스톤과 세상을 지키게 된다.

기존의 히어로 영화들이 대부분 문제 발생 - 내적 혹은 외적 갈등 - 주인공의 각성 - 문제 해결이라는 서사를 차용했다면 현재의 마블 영화는 다르다. 끊임없는 시리즈를 생산해내는 MCU는 다음 영화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이전 영화의 결말부(혹은 쿠키영상)에 남겨놓고 사람들이 즐겁게 그 문제의 해결 방식을 논하게 한다. 이미 마블에서 출간된 수많은 코믹북과 현대 소셜 미디어의 미친 정보력을 감안하면, 누구도 단 한 치의 예상을 할 수 없는 줄거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이들은 모두가 예상 못할 반전을 꾀하는 대신, 어떻게 해결할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던 문제들을 빠르게 해결하고 거기서 한 단계 나아가 새로운 문제를 만들고 그것마저 해결하는 방식의 서사를 사용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전 영화를 보고 줄거리를 예상하던 팬들이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는 즐거움을 느끼는 동시에 새롭게 펼쳐지는 스토리를 통한 즐거움까지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다시 노 웨이 홈으로 돌아와 이야기하자면, 이전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하 ‘파 프롬 홈’)에서 대두되었던 문제는 ‘정체를 들킨 피터가 앞으로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나갈 것인가’일 것이다. 노 웨이 홈의 초반부에서 피터와 그의 지인들은 스파이더맨의 정체가 탄로남과 동시에 일상 생활이 큰 위협을 받는다. 이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했던 해결책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이었다. 물론 실제 영화에서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이 직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지만, 닥터 스트레인지가 마법 주문을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겨남과 동시에 기존의 문제, 즉 피터의 정체가 탄로났던 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된다. 메이 숙모가 죽고 나서 데일리 뷰글 편집장이 방송에서 피터를 공개 저격하는 것이 이후 그 문제가 드러나는 부분의 전부다. 또한 엔드게임과 다르게 이번에는 사람들이 멀티버스가 열릴 것이고 이전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빌런과 주인공들이 출연할 것이라는 것까지 예상할 수 있었다(그리고 예고편도 이를 어느 정도 뒷받침해줬다). 사실 상 발단에서 대략적인 절정 단계까지 사람들이 예상 가능한 줄거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예상 가능했던 이 모든 부분들을 뒤로 하고, 노 웨이 홈은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마지막까지 해결되지 않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다시 한 번 모두를 놀라게 했다.

물론 앞서 말한 엔드게임과 노 웨이 홈의 서사가 완벽하게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이전의 히어로 영화는 초반부에 문제가 등장하고 결말부에 문제를 해결한 후 영화와 영화 사이에서는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을 거라고 상상되는 주인공이 있었던 것과 달리, 마블의 영화는 계속해서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새로운 갈등을 미리 던진다. 이런 방식을 계속 사용하는 것을 보면, 마블은 팬들이 다음 영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끈질기게 추측하는 것에도 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우릴 놀라게 해줄 자신이 있는 것 같다. 이 기나긴 MCU를 쉽게 끝내지 않겠다는 것은 더욱 더 당연하고.




결국 우리가 원했던 것은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


앞서 말한 대로 노 웨이 홈에서는 이전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출연한 빌런들이 등장한다. 스파이더맨 1에서 등장한 그린 고블린, 스파이더맨 2에서 등장한 닥터 옥토퍼스, 스파이더맨 3에서 등장한 샌드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등장한 리자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 등장한 일렉트로가 그들이다. 우리는 이들과 맞서 싸우는 세 명의 스파이더맨을 기대했고 그 기대는 반은 맞았지만 반은 틀렸다.

빌런들을 손쉽게 잡아 가둘 수 있었던 닥터 스트레인지는 피터에게 이들을 각자 자신의 세계로 돌려보내자고 하지만, 피터는 이를 거부한다. 대신 이들을 능력과 광기를 얻기 전으로 되돌린 후에 각자의 세계로 돌려보내 이들이 죽거나 좌절했던 기존의 결말과는 다른 결말을 쓰고자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빌런들의 패배와 죽음을 봐왔는지 돌이켜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스파이더맨의 빌런들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빌런들이 히어로들과의 싸움 끝에 패배했다. 그 패배가 죽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결국 이들의 목표는 좌절되었고 히어로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축하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패배시키고 좌절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은 아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매체에서 나타나는 악당의 사악한 모습에 쉽게 잊고 만다. 어벤져스가 수많은 빌런들을 죽였던 이유는 그들이 죽어 마땅해서가 아니라, 최후의 해결책이 죽음이었을 뿐이다. 만약 타노스의 비관적이고 삐뚤어진 마음을 고칠 수 있는 치료제가 있었다면 이들은 굳이 타노스를 죽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특히 아무리 히어로라고 해도 악행을 저지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쉽게 정당화할 수 없다. 이것을 의식해서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MCU의 많은 빌런들 중 죽은 빌런들은 인간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어벤져스>의 치타우리족,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울트론,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의 타노스 등).

필요하지 않은 죽음 대신 치료를 택하는 것. MCU의 피터 파커가 그 선택을 하고 그 이후 나타난 또 다른 피터 파커들이 그에 동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들에게 자신이 죽였던 빌런들은 친구의 아버지, 존경하던 박사, 거리를 지나가면서 만났던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스파이더맨 영화들 속 빌런들은 그 누구 하나 자의로 악당이 된 사람이 아니다. 이들은 실험의 실패, 불의의 사고와 같은 이유로 빌런이 되었다. 이런 빌런들의 죽음은 스파이더맨들에게 죄책감으로 남았기에, 두 번째 기회가 놓인 지금은 다신 첫 번째와 같은 결말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기존의 히어로들과 같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히어로답다. 모든 걸 부수고 악당을 죽이고 난 후 세 스파이더맨이 어깨동무를 하고 슈와마를 먹으러 가는 게 아니라, 빌런들마저 원래의 그들로 되돌린 후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 이것이 우리가 원했던 것이고, 현실세계에서도 가능한 해결책이다.




스파이더맨, 이제 다시 시작


앞으로 예정된 스파이더맨 영화가 세 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영화를 보기 전에는 ‘더 이상 할 얘기가 남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이 다음 세 편의 영화는 피터 파커의 힘겨운 대학 생활과 대학원 생활을 다룰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그리고 노 웨이 홈을 보고 나오면서, ‘아주 영리하게 원점으로 돌려놓았군’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피터 파커를 아는 모든 유니버스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세상에 오는 것을 막기 위해 피터 파커는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 자신의 존재를 없애버리고, 이렇게 기억이 지워진 사람들에는 영화 초반부에 피터 파커가 자신이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랐던 MJ, 네드, 해피까지 있었다. 이렇게 그 누구도 피터 파커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음에도 그가 다시 세상을 구하러 나가는 마지막 장면은 그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스파이더맨이 맞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지금까지 MCU의 스파이더맨이 크게 비판받은 지점은 그가 홀로서기를 하기에는 어리고 미성숙한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다. 똑같이 능력을 얻고 빌런들을 때려잡으면서도 생활고에 허덕여 월세마저 밀리는 피터 파커는 없었다. 대신 스타크가 만들어준 멋들어지고 많은 기능들이 있는 수트와 네덜란드에 낙오되어도 비행기를 타고 찾아와주는 해피까지 있었기에 그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당신의 친절한 이웃’보다는 ‘당신의 친절한 어벤져스의 일원’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렸다. 하지만 이제 피터는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에 나왔던 토비 맥과이어의 피터 파커가 살았을 법한 단칸방에서 자신이 재봉틀로 만든 수트를 입고 세상을 구한다. 그 어떤 지원도, 멘토도 없다. 그럼에도 피터가 여전히 스파이더맨으로서 세상을 구하는 이유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피터 파커를 잊었어도 스파이더맨만은 기억하고 있어서일 수도, 메이 숙모의 말대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MCU의 스파이더맨에서는 지금까지 스파이더맨에 나왔던 부분, 예를 들면 피터가 유전자 조작 거미에 물리는 장면이라거나 벤 삼촌의 죽음을 보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이 개봉했을 때 이런 부분은 꽤나 영리하고 획기적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이미 두 버전의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에서 다뤘기에 모두가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너네가 다 알고 있으니 이 부분은 생략하겠다’라고 말한 듯이 깔끔하게 없어진 앞부분 대신 어벤져스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부분이 그 빈 자리를 채웠던 것은 MCU이기에, 그리고 세 번째 스파이더맨 시리즈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벤 삼촌의 죽음을 메이 숙모의 죽음으로 다시 보여주고, 3부작 중 세 번째 영화의 결말에 들어서야 우리가 알던 익숙한 스파이더맨이 보였다. 그렇기에 드디어 이 이야기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피터 파커와 스파이더맨의 이야기였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영화에 들어선 MCU의 스파이더맨의 서사가 지금 끝나기에는 아쉽다는 생각까지 들게 해준다. 그렇기에 앞으로 나올 스파이더맨 영화에서도 이 결말에서 이어지는 피터 파커와 스파이더맨의 이야기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너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정말 많아

영화를 처음 보고, 이번 영화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 문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을 죽음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스파이더맨과 그린 고블린, 스파이더맨과 닥터 옥토퍼스)과 당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멋진 사람이라는 말(스파이더맨과 일렉트로)은 그들의 영화에서는 발화되지 않았지만 몇 년이라는 시간과 다른 유니버스를 타고 스파이더맨과 빌런들이 만난 지금에서야 주고 받아질 수 있었다. 그리고 네가 했던 선택이 고통스럽지만 틀린 선택이 아니라는 것(피터1, 피터2, 그리고 피터3), 당신이 가진 허리 통증이 당신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피터2와 피터3), 너는 어메이징 하다는 것까지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어느 세상의 스파이더맨도 들을 수 없었을 말이다. 이 영화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인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이 MJ를 구하는 장면은 피터3가 자신의 세상에서 끝내 구하지 못한 자신의 연인 그웬에게 전하고 싶은 마지막 메시지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더 이상 죄책감을 가지고 살지 말라’는 말을 건넨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전할 수 없었던 수많은 말들을 나누었던 이번 영화는 다시 전할 수 없는 말들을 남긴 채 모두가 흩어졌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또 다른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잊어버린 소중한 친구들에게 피터 파커는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그리고 결말 이후 또 다른 세상의 피터2와 피터3은 외롭게 혼자 남은 피터1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여전히 하지 못한 말들은 많다. 스파이더맨 영화는 이 말들을 전하기 위해 계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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