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하의 정규분포
불을 끄고 자기로 했는데, 15분 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끝내 잠에 들지 못했다.
그래서 일어나서 내일 써야 할 보고서 준비를 미리 하기로 결심한 지금 시간은 1시 33분. 1시 15분쯤에 자려고 누웠었는데 남들에게는 자기에 이른 시간은 아닐 것이다.
연희동으로 이사 와서 한동안 일주일에 두어 번을 빼면 불을 켜고 잤다. 저녁에 자서 새벽에 일어나고, 새벽에 자서 아침에 일어나고, 아침에 자서 낮에 일어나는 일이 잦아서 일어날 때 조금이라도 잘 일어나려면 불을 켜고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불을 끄고 잔 날이면 어김없이 제시간에 깼다가도 잠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 오늘은 결과가 어땠든 중간고사 시험이 끝났고, 남은 건 3장짜리 논문 보고서인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아서 일찍 자려고 누웠다. 시험도 없고 연습도 없어서 홀가분할 며칠 동안 미뤄놨던 <문나이트>를 볼까, <완다비전>을 다시 볼까 하다가 유튜브에서 요즘 자주 보는 영화 리뷰 유튜브 영상들을 보다 보니 시간은 이미 새벽 한 시였다. 좀 일찍 일어나 보고서를 쓰기 위해 읽어야 하는 논문을 훑어보다 도서관에 가려고 했는데 결국 자는 데에 실패했다. 사실 이게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항상 일찍 자서 일찍 일어나 뭔가를 하려는 계획은 성공한 적이 없었다. 일찍 자는 데에 실패하거나, 일찍 일어나는 데에 실패하거나 항상 둘 중 하나였다.
문득 아까 1시 15분에 알람을 맞추면서 내 휴대전화 알람 앱을 보다가 어떤 생각이 들었다. 내 알람 앱에는 새로 설정해야 하는 알람이 없다. 00시 00분부터 23시 50분까지 10분에서 15분 간격으로 매 시간 알람이 설정되어 있다. 휴대전화를 쓰는 몇 년 동안 알람이 하나씩 추가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지우지 않고 새로운 알람만 계속 추가하다 보니 더 이상 알람을 새로 설정할 일이 없어졌다. 그냥 있던 알람 중 하나를 켜기만 하면 되니까.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언제든 시간이 되면 자고 일어나는 게 일상이어서 그런지 이렇게 됐다.
그러니까, 정말 규칙적인 사람이 있다고 치고 그 사람이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난다고 하자. 그럼 그 사람이 아침 7시에 일어날 확률은 100%에 수렴할 것이고, 나머지 시간에 일어날 확률은 0%에 가까울 것이다. 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내가 일어날 시간의 확률분포는 표준편차가 하염없이 높은 분포일 것이다. 7시, 8시, 10시, 14시... 가끔은 더 일찍, 혹은 더 늦게 일어나니까. 어쩌면 내가 자는 시간은 시험 이후에 다시는 펼쳐보지 않은 통계 교재에 있는 어떤 법칙처럼 어느 정도 n이 크다면 정규분포를 이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정말 해보기로 했다.
난 사실 끈질기게 무언가를 1년 동안 해본 적은 없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도전하기로 했다. 지금부터 1년 동안 나의 기상 시간을 조사해서 어떤 분포를 이루는지 보기로 했다! 무슨 이런 허튼짓이 다 있냐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근데 정말 궁금하다. 누군가는 ‘그런 건 굳이 하지 않아도 애플워치를 사면 알아서 해줄 것이다'라고 하겠지만... 난 애플워치가 없다. 올해 생일 선물 겸 어버이의 날 선물로 엄마한테는 선물로 드릴까 하는데 일단 난 애플워치가 지금도 없고 가까운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혹시 이런 내가 불쌍하다면... 728,000원 정도는 감사히 받도록 하겠다. 애플워치 시리즈7 40mm GPS+셀룰러 애플케어플러스 포함 기준 금액이다.)
지금 시작한 지는 3일 정도 되었는데, 3일 동안의 기상시간이 각각 7시 45분, 11시 30분, 14시 12분이다. 벌써부터 이런 데이터라니 미래가 아주 기대된다. 하하. 아직은 빈칸이 더 많은 표에 365일 후에는 얼마나 많은 기상 시간들이 채워져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다들 기대해주시길! 아마 가끔씩 중간 점검 차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글을 쓸 것 같다.
우리 인생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