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멘지 Dec 18. 2023

월경 없는 삶 (1)

임플라논 하게 된 계기와 후기

임플라논의 존재는 첫 애인을 사귀면서 병원에 피임상담을 가면서 알게 되었다. 이쑤시개 만한 녀석을 팔 안쪽 살에 이식하면 피임률 99%에, 생리통을 줄여주고, 운이 좋으면(?) 월경도 안 한다는 말에 혹 했지만, 호르몬제를 장기간 복용하던 사람들의 부작용을 종종 듣게 되면서 인위적인 호르몬 조절이 꺼려지던 때였던 지라, 일단 콘돔만을 피임방법으로 택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콘돔만을 피임 방법으로 택하는 지인은 항상 섹스 후에 콘돔에 물을 채워서 확인을 한다길래, 나와 F도 확실한 피임을 위해 항상 섹스 후 콘돔의 상태를 확인했다. 하지만 나의 월경주기가 늦어지는 때면 서로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렇게 심리적 압박을 계속 받는다면, 호르몬제를 투여하는 것보다 이 압박이 건강에 더 해로울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시술을 결정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내겐 월경이 정말로 사라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월경이 생식의 기능을 주기적으로 상기시켜 주듯, 영양학적으로 불균형한 것이 없고, 신체적으로 건강한 현대의 20대 생물학적 여성이 월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틀린 공식 같았다.  내가 자발적으로 생물학적 성 기능적으로 불충분한 상태를 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별 다른 생각 없이 3개월을 보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한국의 한 산부인과에 앉아서 시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는 임플라논 시술이었고, 원인은 월경통이었다.


난 19, 20살에 월경통 때문에 퍽하면 응급실에 실려갔다. 학교에서, 택시에서, 친구들이랑 밥 먹고 나서. 멀쩡하게 있다가 식은땀이 나면서 토하고 실신하길 반복했다. 진통제를 4개씩 삼켜도 효과 없는 이 개 같은 상황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잠에 드는 것이었다. 잠에 들어야만 아랫배에서 폭탄이 터진듯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응급실에서도 수액을 1리터씩 맞고 쓰러져 잠에 들었다. 엄마는 본인의 경험도 유전적 속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건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던 건지 "결혼하면('섹스'의 우회적 표현) 생리통이 사라질 수도 있다"라고 했는데, 엄마 말이 맞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간이 흘러 성경험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자궁엔 변화가 전혀 없었고 난 여전히 이지앤식스의 열혈 고객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말이 내게 신빙성이 있게 들렸다면, 난 굳이 날 구원해 줄 남자와의 섹스를 기다리지 않고, 이미 페니스와 비슷한 무언가를 찾아내 나를 구원시키지 않았을까?) 하지만 수년의 고통으로 난 노련해졌다. 몸과 정신을 너무 무리하지 않으면 월경은 내게 참을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주었다.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지 않고, 좋은 사람들과 정신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 세상의 고통스러운 소식으로부터 나를 멀리하면 자궁이란 녀석이 난동을 좀 멈췄다.


근데 한국에만 가면 나의 루틴이 말을 듣지 않았다. 19살의 고통이 나를 다시 찾아왔다.




(2)화에 계속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한 달짜리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