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을 수 있는 것들
2000년 하고 20년을 맞이한, 그 어감대로 감회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냥 하자. 두려움은 지긋지긋하다. 온실 속에서 벗어나자.' 매번 새해를 맞이할 때 다짐하는 여느 다짐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래도 다짐은 해야 했다.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너무 괴로워서. 그런데 이번 연도는 인류의 생각과는 다른 곳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바야흐로 '거리 둠의 연도'였다.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 역병의 근원지를 응시하는 것은 이제 불필요한 행위가 되었다. 우리가 어느 곳으로 향해야 하는지를 도모해야 할 때다.
거리에서 마스크가 넘실거린다. 어머니는 시청에서 일하신다. 이번에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하신다. 수달인데 마스크를 쓰고 있다. 어머니가 웃으면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회사에 전화가 왔는데,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 수달이 마스크를 썼는데 왜 코까지 안 올리고 턱스크를 하고 있냐고." 민감한 사항이긴 하지 괜찮은 지적이다, 생각했다. 수달마저 숨 쉬는 게 힘든 시기라니.
기대는 실망을 불러들인다. 참 싫은 말이다. 못됐어. 2020년이 그랬다. 20이 두 번이라니. 이거 참 상징적이네! 모두가 밝은 새 10년을 바라보았겠지. 필자도 그러했다. 전환점이 될 수 있었던 이번 해는 내 삶의 역사상 가장 민감한 해가 되었다. 사람들이 거리를 두어야만 하는 상황이 닥쳤다. 거리에 사람들이 적어졌다. 단골집 음식점이 문을 닫았다. 내 주말을 책임지던 영화관도 문을 닫았다. 맨 얼굴로 집 밖을 나서는 것이 묵시적으로 금기시되었다. 저마다 사람들이 거리를 잰다. 지금 거리를 두지 않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작별을 준비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역병과의 보이지 않는 사투 그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 분들의 부르튼 손과 얼굴의 사진을 본 기억이 났다. 며칠 전부터 팔꿈치의 미약한 통증이 다시 느껴졌다. 언제까지 갈까. 언제까지?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본 것이 과장 없이 1년은 되어가지 않는가. 맨 얼굴을 보는 것이 어색해질 때 즈음에 내 인생의 걱정거리가 또 하나 쌓인 기분이었다. 코로나 아니어도 해결해야 할게 많은데 왜 굳이 하나를 보태는 것이냐. 원망에 빠지려는 찰나 어머니의 말씀을 되새겼다. "너희들 젊은 나이에 좀 더 잘 보내야 할 텐데." 얼마 전 수능이 기억났다. 20학번으로 대학교에 입학한 사촌 동생도 떠올렸다. 우린 어떤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거지?
내가 하루가 기다려지던 때가 언제였는지 20년의 막바지가 다 되어가서야 이번 연도를 뒤적거려 보았다. 해가 뜨는 것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졌던 때는 마스크에 가려져도 내가 읽을 수 있는 표정들을 생각할 때였다. 기대는 실망을 불러들인다는 이 관념 때문에 나는 기대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곤 했다. 주변 사람들을, 내 시험성적을, 내가 좋아하는 저 친구와의 인연을 기대하지 않기로 곧잘 생각하곤 했다. 한데 이 선택이 주변 사람들을 상처 받게 하는 줄 몰랐었다. 나에게서 거리를 두게 될 줄 몰랐던 것이다. 내가 마음 편히 만나는 친구가 나에게서 눈치 보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마음이 미어진다. 난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난 워낙에 상처를 받고 그것을 딛고 일어나는데 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나만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래, 나만 생각할 때가 아니다. 우리가 거리를 두는 이유는 결국 다시 가까워지기 위함임을 나는 굳게 믿는다. 그래서 지금은 남을 생각해야 한다. 내 향유를 위해서 남들의 불편함을 무시해서는 안되니까. 다른 사람들은 멍청해서 친구들이랑 노래방안가나. 난 마스크 밑에 가려졌음에도 읽을 수 있는 표정들을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내하겠다. 하지만 손해는 아니지. 우리 모두 그 시대를 통과하고 있으니까. 함께 버텨내자. 버텨. 그리고 그 날이 오면 마스크 벗고 문을 열고 나가는 본인의 모습을 그려보자. 길거리에 맨얼굴이 낯설지 않을까? 지나가는 사람과 눈 마주쳐 피식 웃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하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