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chterin 여자시인 Jul 09. 2022

내가 불행하면 타인에게 관심을 둔다

드라마 [안나] - “이젠 기회를 노리지 행운을 믿지 않아”


결핍된 자들에게는 늘 기회가 고프다.

있이 살았던 자들에게 기회는 그것이 기회인지 알 새 없이 커피잔 밑에 놓인 잔받침 같이 거저로 주어지는 것일지라도 없이 살던 자들에게 그 꼭 한 번의 기회란 일생을 뒤바꿀 수 있게 해 주는 중하디 중한, 그래서 더러는 거기에 목숨을 내걸기도 하고 영혼을 내다 팔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 이 이야기 속 한 여자는 자기의 모든 것을 엿 바꿔먹듯 바꾸었다. 이제 이름도 학력도 얻었겠다, 그러니 명품 의상 대여숍에 가서 옷도 액세서리도 빌리고 미용실에 가서 헤어, 메이크업도 받고 완벽하게 조신한 양갓집 유학파 귀국자녀로 탈바꿈한다. 이 말간 얼굴에 그 누가 가증스럽다라고만 할 수 있으랴?


끼니는 차라리 더러 건너뛸지언정 기회는 한 번 왔을 때 귀신같이 알아채고 꽉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기회라는 얄궂은 놈은 진즉 입 벌리고 침 흘리고 줄 서서 기다리고 있을 다른 사람들에게로 건너뛰어 가버리고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해서 더 절박하다. 언제나 절박하고 긴박하며 조급하다. 행여 놓칠세라, 기회의 퀄리티나 지속가능성, 도덕성 이런 것들까지 세세하게 따지고 말 여유가 없다. 아니, 아무리 급했기로서니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지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노라고 하고 입 싹 한 번 씻고 가글이라도 하고 나오면 그뿐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믿고 싶었을 것이다. 늘 고파왔으므로. 이번 한 번만큼은 나도 내 입에 뭘 좀 떠 먹여 줘 보자. 나 그동안 치열하게 살았으니 그래도 이 정도 자격은 있다고 자기 합리화도 한다. 뭐라도 한다. 해야 한다. 할 것이다. 그런 심정으로 날조된 이력서를 들이밀었는데 아무런 의심 없이 너무 좋은 스펙에 입꼬리가 올라간 학원장이 연신 칭찬이다. 원래의 내 모습이었다면 거들떠도 안 봤을 거면서. 뭐가 이렇게 쉬운 걸까? 이리 쉬워도 되는 걸까? 안나가 된 첫날은 이렇게 흘러갔다.


저렇게 한껏 차려입고 앉아 순순히 속아넘어가고 있는 미래의 고용주를 보며 유미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선 행동 후 조치’가 모토가 된 지 오래다. 처음부터 세세하게 일일이 준비하고 뛰어들 겨를이 없다. 그런 건 있는 자들이나 하는 일이다. 고스펙 대비 몇 단계 낮은 일자리지만 아직 경력 쌓을 요량으로 일한다는 콘셉트로 취직부터 먼저 턱 했다. 선 취직 후 공부다. 인근 유학원 등지를 돌며 정보나 말발 등을 익힌다. 그걸 그대로 토씨 하나 안 빼먹고 카피하는데 먹힌다. 짜증 나리만큼 먹혀든다. 사람들을 홀려내는 기술이 있었구나 — 안나가 된 유미는 생각했을 것이다. 원래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을지라도 자꾸만 수월하게 손쉽게 진행되니까, 더욱더 그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 왜냐하면 인정을 받고 싶었으니까.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하던 어느 날, 한 소녀가 경쟁하는 관계에 있는 다른 학생을 언급하며 솔직히 그 학생은 실력은 별로지만 운이 좋아 그랬던 것이라고 말하자 안나는 목소리를 착- 깔고 소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불행하면 자꾸 타인에게 관심이 생겨.
나도 옛날엔 남들 때문에 불행했는데
이제는 기회를 노리지 행운을 믿진 않아.
남 생각하지 마, 오직 너만 생각해.



이때 안나는 안나의 탈을 쓴 채 유미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드러냈다. 옛날엔 발레 교습소에서 내 험담을 하던 그 계집애나 비겁하게 배신 때리고 남들 다 보는 앞에서 날 져버린 음악 선생 그 새끼나 전학 간 학교에서 문제학생은 안 받는다고 거절하던 새 담임이나 뒷조사 끝에 공항에서 전화로 펜치 준 남자 친구 엄마와 유유히 날 뒤로하고 기어이 비행기에 혼자 올라탄 남친도, 날 종처럼 부려먹던 개망나니 현주도, 게으르고 무식하면서도 남들 하는 대로 다 하고 살자니 평생 그 꼴을 못 벗어난다고 윽박지르던 마레의 사장도 전부 다. 내 인생에 노를 저으려고 차례차례 등장했던 빌런들일 거라고. 그래서 불행했는데 이제는 그런 거 아무렴 어때? 기회를 노리지 행운 따위 불확실한 것에 목매지 않아. 난 나만 생각해. 그래서 싹 다 갈아엎고 주도면밀하게 법원에 개명신청도 냈고 하나씩 이유미의 흔적을 지우고 이안나로 새로 태어날 작업을 마친다. 보는 내내 안쓰러웠던 것은, 이 모든 것을 유미는 자기가 똑똑하게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어딘지 서툴고 위태로웠다.


과연, 이 말은 맞는 말 같다. 내가 불행하면 남을 부러워하게 되거나 시기 질투를 일삼게 된다. 과해지면 험담도 하고 중상모략도 일삼는다. 배척하고 따 시키고 난리를 부릴 것이다. 이 구역에서 내가 제일 잘 되어야 하는데 못되니까 남들은 어째서 저렇게 잘 풀리나 배알도 꼴려온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이유는 사촌이 땅을 사서라기보다 땅을 산 자가 사촌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관계없는 사람들이면 몰라도 내 주변에 나보다 썩 나을 것도 없어 뵈는 것들이 나만 따돌리고 잘되는 것 같으면 자꾸 남 탓만 하게 된다. 그러니 남과 비교할 생각 하지 말고 오직 자신의 능력을 믿고 묵묵히 노력하며 착실히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나만의 때가 올 것이다. 그때 나는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것이다. 기회를 노린다 하더라도 몸을 낮추고 도약할 때를 기다리거나 귀인이 되어줄 사람을 찾을 것이나 그마저도 현실적이라 스케일은 작다. 스케일이 작은만큼 위험부담도 작고 ‘로우 리스크’에는 ‘로우 리턴’으로 드라마틱한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존법이다.


이런 조언을 해주면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풍문으로 상담을 하고 끼워 맞춘 지식을 재포장해서 다시 판매하고 그랬는데 덜컥, 그 깜깜 야매 짓이 먹혀들었단다. 담당하던 학생들은 하나둘씩 이름만 대면 아는 외국의 유명 미대에 합격하게 된다. 어느새 안나는 소위 말하는 입시 미술계의 일타 강사가 되어 자리를 잡게 된다. 이름만 들어봤던 그 예일대 미대에 붙었다는 소식을 전해오던 담당 학생의 전화를 받던 때에 안나는 짝퉁 명품 의류 매장에서 옷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의 그 헛헛함. 어쩌면 헛헛함 보다도 더 컸을지도 모를 짜증. 어이없음. 현타가 오는 것을 느꼈을까? 글쎄 뭐가 이렇게 쉽지? 상대적 박탈감도 들었을 것이다. 이게 먹히는 거였다면 나도 진작에 이렇게라도 한 번 해볼걸 그런 생각도 들었으려나. 오직 자신만 생각하라던 조언이 이런 식으로 먹혀들다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불평불만이 늘 많았지만 간이 작아서 막상 실행 스케일은 후미졌다. 그러다 보니 얻어지는 결과들도 조금씩 조악했다. 딴에는 그런 것들이 자랑스럽지 못해서 뭔가를 조금 이루어 놓긴 했는데 어디 가서 시원하게 자랑질도 못했다. 안 했다. 쪽팔려서. 다른 누구에게 보다도 스스로에게 양에 안차고 창피했다. 자주 수치감을 느끼는 편이고 수치의 덫에 걸리는 날이면 그날 밤은 양 볼을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귓바퀴에 와 고여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귓가에 그대로 말라붙은 눈물자국이 허옇게 각질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누군가 나타나서 내가 먼저 말하기도 전에 내 마음을 캐치해서 내 모든 고난을 다 해결해 주면 좋겠다는 허황된 꿈을 매일 꾼다. 그런 소망을 가졌다. 아직도 이 소망은 유효한 듯하다.


직장을 다닐 때에도 기를 쓰고 이름 난 큰 회사에 들어가서 그중에서도 이름난 일들을 하는 부서로 욕을 처먹어 가면서도 낯짝 두껍게 조직 내 지원을 해서 그 자리를 꿰찼던 적이 있다. 내 낯짝은 얇디 얇은 표피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두꺼운 척 하기는 죽을 맛이었다. 거기서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었는데 그때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자꾸만 어긋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던 업무, 결국 그럴듯한 이름의 ‘시다바리’ 역할밖에는 주어지지 않고 그렇다고 실력은 일천한데 꼴에 눈은 높아서 시키는 그런 일은 하기 싫고 그렇게 우울증 약을 먹고 패닉을 겪고 남들 앞에 내가 진짜로 하는 업무들을 내입으로 말할 자신이 없어서, 아니 그러기 싫어서 나는 일부러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그때 얻은 그런 식의 자기 현실과 이상의 불일치에서 오는 자괴감으로 인한 대인기피는 퇴사를 해서 지내고 있는 아직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웬만하면 사람들을 만나서 특히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 아닐 때에 사람들 앞에서 내 입으로 내가 원치 않는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 지금의 내 상태를 말하고 싶지 않다. 전문성이 없는 데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너무 괴로웠고 도저히 받아들이기 싫은 일들도 잘하는 것처럼 포장해서 말하는 것이 넌덜머리 났다 그래서 차라리 함구했다. 행동은 점점 더 어색해졌고 괴리감은 더욱더 커졌다.


나는 안나처럼 저렇게 해 낼 재간이 없었다. 어디서 패치워크로 짜깁기한 것들을 감쪽같이 사람 홀리게 둔갑시킬 재간이 없었다. 간혹 그게 조금 가능할법한 토픽들이 있곤 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서서는 엄청난 자괴감과 정직하지 못하다는 죄책감에 숨을 헐떡이며 죽을 둥 살 둥 울어재꼈다. 울다가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안나처럼 되기엔 너무 감정적이었다. 안나는 벌써 세상을 다 살은 느낌이 든다. 삶에 감흥을 잃은 여자. 바싹 말라버린 잿빛이 드리워진 말린 장미 같은 여자. 그 와중에도 줄기 따라 돋아난 가시들의 끝에는 아직 날이 서 있는 여자. 그래서 안나는 해낸 것을 나는 못해내고 기어이 퇴사나 하고 이러고 지내는 모양이다. 안 해내서 결과적으로는 참 다행인데 또 내 마음은 내심은 뭐라도 하나 작게라도 내지르고 끝냈더라면 응어리는 덜 졌을까 싶기도 하다. 역시 이래서 간장종지만 한 그릇을 가지고 콩알만 한 간을 하고서는 뭘 추진하려고 하면 안 될 것 같다.


내가 자신의 삶에 자신 있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이 없으니 자꾸 헛헛하고 부족한 마음에 타인의 삶을 기웃거리고 부러워하거나 질투하고 있다. 아주 막돼먹은 습성인데 떨치기가 힘이 든다. 하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그 와중에도 나는 안나가 내린 것 같은 저런 식의 선택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도 아주 자랑스럽지는 못한 것이, 내가 특별히 더 도덕적이거나 깨끗해서라기 보다 그저 담이 작은 쫄보이기에 그렇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의 결과물이다. 겉으로는 ‘난 그래도 안나처럼 하진 않았어’ 하면서 저 정도 나락으로는 떨어지지 않았다고 대외적으로 으스대고 싶지만 까놓고 보면 으스댈 것이 별반 없기에 나는 입을 달고 있으면서도 그저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고 모습을 숨기고 글줄로나마 소심하게 이렇게 한 귀퉁이에 이 사실을 써 두려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참을 수 없는 쓸모없음의 괴로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