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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작 Feb 14. 2021

꿈을 꾸었습니다

삐걱거리는 나무로 된 갑판 위에서 적막하게 얼어붙은 푸른 바다 너머에 새로운 땅을 바라보는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내가 서있던 갑판 위에는 많은 보석들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흘린 피 처럼 신성한 빛을 내뿜는 루비와 사람들의 검은 속 마음까지 비추는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고 어린시절 희망에 가득차 마시던 우유와 똑 닮은 색깔의 진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보석들을 밟고 서 저멀리 새로운 땅의 절벽을 바라보았습니다. 내 옆에 있던 누군가가, 혹은 선장이라고 불릴 수도 있겠네요, 내게 말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원하던 새로운 땅인데... 바다가 얼어서 갈 수 없을 것 같아요"


나는 그의 말을 흘겨들으며 단지 그곳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흥분에 벅차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조언을 새겨듣지 못했습니다. 언 바다를 타고 흐르던 드센 바람 한 두 무리는 배의 갑판을 타고 올라왔고 기이한 소리와 함께 내 왼 뺨을 햘퀴었습니다. 마치 동화 속 왕자님이 공주가 갇힌 탑으로 갈때면 늘 그의 온 몸을 햘퀴던 가시 덤불처럼 이 차가운 냉기는 내 뺨으로부터 시작해 귀를 타고 옷 속으로 들어와 온 몸을 찢으려 했습니다. 


"저 곳에 무엇이 있습니까?"


선장처럼 보이는 그 남자가 새로운 땅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나는 아쉽게도, 그곳엔 공주도 보물도 아니 어쩌면 어느것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되물었습니다. 저 날카로운 절벽과 그 듬성을 빼곡히 채운 푸른 나무들이 보이지 않냐고, 저 땅을 감싸고 있는 전율이 느껴지지 않냐고.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이 바다 너머로 보이는 새로운 땅은 내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갈 수 없잖습니까. 여기서 단지 저 전율이는 땅을 바라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게 무엇입니까?"

"차라리 이 보석들을 가지고 돌아가시죠"

"이 많은 보석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을 저런 땅보다 이 보석이 더 값진데요"


남자는 분명 맥을 집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상황에 그냥 지금까지 구한 보석들을 가지고 돌아가는 편이 좀 더 안전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보석들 말이죠. 이 보석들을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혹은 얻었거나 훔쳤는지 알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내가 꿈꾸던 시작부터 내 발 밑에 있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태어나 항해를 할 때부터 누군가가 뿌려놓은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내것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한가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갑판위에서 느꼈던 선명한 감정들이었습니다. 절벽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은 내게 희망과 함께 미래에 올 안식에 대한 기대를 주었던 반면 발 밑에 보석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불안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나는 그 생각들을 선장에게 최대한 비슷하게 설명했던 것 같습니다.


"그건 용기가 없는게 아닐까요?" 

"보석들을 지킬 능력이 안되니까 아무것도 없는 곳에 헛된 꿈을 투사하는 걸지도요"

"어쨋든 그런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빨리 결정하세요. 저는 곧 뱃머리를 돌릴 겁니다. 선생도 어차피 다시 돌아가려 하겠지만 배가 떠나면 이미 늦습니다"



결국 나는 아무 결정도 하지 못한채로 잠에서 깼습니다. 그 날은 내가 파리로 떠나기 하루 전이었습니다. 파리에 가겠다고 마음먹었던 이유는 분명 개척과 도전, 새로운 곳에서 내가 있을 자리를 찾겠다는 생각들에서였습니다. 하지만 꿈에서 그 남자가 말했던 그 말은 아주 오랫동안 생생하게 머릿속을 맴돌았고 어쩌면 이 결정이 한국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치기위한 변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다다르게 만들었습니다. 


'A.M 4:43'


둥근 알람시계의 빨간 초침은 째깍거리며 빠르게 달아나고 있었고 나 역시 스멀스멀 기어오는 두려움으로부터 달아나고자 침대에서 일어나 간단히 런닝복을 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새벽 봄의 쌀쌀함은 겨울과 달리 몸을 오히려 쭉 펴주는데에 안성맞춤이었고 심장부터 손과 발까지 곱게 다려진 내 몸은 새벽의 안개를 헤치며 거리를 뛰어다니기에 너무도 알맞았습니다. 2마일쯤 뛰어 어느 학교 앞 육교 위에 다달아 나는 멀리 산 밑에서 올라오는 해를 바라보았습니다. 잘 익은 밀감처럼 주홍색의 작은 태양이 산 봉우리에 걸려있을 즈음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자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행동엔 결과가 따르고 어쩌면 이 결과는 나를 지금과는 아예 다른 세계로 밀어넣기에 충분히 큰 결정일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 나는 내 자신에 완전히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내 고집과 아집은 내 머릿속을 잠식했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책임질 것이라는 무모한 다짐을 하며 애써 진실을 가리려고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파리로 떠나려던 내 결정은 분명 도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과연 도망이든, 아니면 정말 옳은 길, 운명이라든가 진리라든가 무엇으로 불리든 그 길을 어떤 이유에서 가는게 그렇게 중요할까 하는 생각입니다. 또, 어쩌면 나는 너무 많은것에 쓸데없는 의미를 부여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삶은 영화가 아니고 모든 일이 확률로 벌어진다면 인과나 논리적 연관성 혹은 핍진성보단 나열된 사건들 속에 누가 있고 그 사람이 누구인가가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그 갑판위에서 내가 바라보아야 했던 것은 절벽도, 보석들도 아니고 그 위에 서있던 내 자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내 작은 머리로 이해타산을 따지고 윤리적, 철학적인 주석들을 활용해 상황을 해석하고 나름의 네러티브를 만들어 그 협소한 이야기속에 내 자신을 끼워맞추기보단 이 무한한 현실 속에서 그저 내 다리가 제대로 걷고 있는지, 내 심장이 제대로 뛰고 있는지를 보는것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꿈 속 사내의 말이 맞았습니다. 나는 파리에서 정착하지 못했고 수개월을 보내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늘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현실과 종종 혼동하던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어떤 네러티브들을 조각해 그 속에 나를 끼워넣으려고 시도했습니다.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어떤 거대한 이유가 있는거라고... 그러니까 이 모든게 다 영화 속 이야기처럼 누군가에 의해 짜여진 각본일것이고, 그 이야기의 끝은 결국 해피엔딩 일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당연히 그 네러티브와 충돌하는 현실에 수도없이 좌절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젠 명확히 느낍니다. 내 인생은 그만큼 웅장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요. 다만, 자랑할만한 직장은 아니지만 그곳에 매일 출근하며 작은 목표들을 향해 발을 옮기고 그 걸음들 속에서 내 심장에 귀를 기울이며 때론 왼쪽으로 또 때론 오른쪽으로 마음이 가는데로 이젠 그렇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더이상 꿈꾸던 그 새로운 땅을 보지 못했습니다. 꿈에서 느꼈던 전율과 희열 역시 이후로 한번도 맛보지 못했지요. 물론 좌절감과 절망을 느낄때마다 나는 이제 기억조차 나지않는 희미한 그 땅으로 다시 떠나고 싶은 생각에 종종 잠기곤 합니다. 그 곳이 꼭 파리가 아니어도 좋고, 단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곳이면 된다고 말이죠. 그리곤 담배를 한 대 물고 제자리에 앉습니다. 내게 무엇이 남아있는지 생각해봅니다. 꿈꾸던 이상향도 이젠 희미해져 기억도 나지 않으며, 그곳을 향해 가며 느낀 그 살아있던 감정들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나를 지나쳐 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어머니, 팔짱을 끼고 서로를 마주보며 걸어가는 연인, 서먹해 보이지만 서로를 든든하게 의지하고 있는 늙은 아버지와 젊은 아들. 그리고 한 사내의 나폴거리는 코트자락을 바라보며 꿈 속의 그 남자를 떠올렸습니다. 


'그래 그 사내도 저 발마칸 코트를 입었었지'


그 남자를 다시 만난다면 꼭 말해주고 싶은말이 있습니다. 비록 나는 나만의 착각에 빠져 그 땅을 향했으나 그곳을 가면서 느꼈던 열정과 환희는 진실이었으며 갑판위에 누가 구한지도 모르는 그 보석들은 그저 내 앞에 있었을 뿐 내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아마 그것에 집착해 뱃머리를 돌렸던들 나는 그들을 갖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 명확히 알 것 같다고. 그러니까 남자여, 고맙습니다. 그때 뱃머리를 바로 돌리지 않아주어서.

보석은 아닐지라도 예쁜 돌맹이 한 두개는 구해볼테니 다시 만납시다.


꺼져가는 담뱃불의 따스함을 느끼며 다시 한 개비를 집어 올립니다. 시야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저 먼 곳, 우뚝 솟은 산봉우리를 바라봅니다. 알 수 없는 친밀감과 날 선 질감의 빽빽한 나무들이 주는 웅장함은 한 데 뒤섞여 기이한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줍니다. 아마 저 곳엔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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