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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맵 매거진 Nov 07. 2022

푸른 표정의 언어, 정지윤

《정지윤 : Language of facial expressions》


작가의 방

첫번째 방 | 푸른 표정의 언어, 정지윤 Jeong Jiyoon




Beam, 72.7 x 72.7 cm, oil on canvas, 2022


푸른 화면 속 모노톤으로 표현된 익숙하면서도 낯선 인물들과 표정.

독창적인 표현 방법으로 주목 받고 있는 정지윤 작가의 회화입니다. 


정지윤 작가는 주로 수집한 사진 이미지에 드러나는 감각적 특성을 포착하여 캔버스에 옮겨냅니다. 큰 틀에서 보자면 작가가 담아내는 주제는 '일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수집한 사진 이미지 속, 주로 인물들의 얼굴이나 제스처(gesture)에 관심이 많습니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주로 적막한 분위기를 자아내거나 낯설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이것들은 사실 너무나도 평범하고 익숙하면서 친근한 우리의 일상입니다. 


A space for me, 60.6 x 60.6 cm, oil on canvas, 2021


정지윤 작가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진이 지시하는 내용보다 그것의 조형성입니다.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은 순간'이란, 어떤 이유에서든 그 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진이 담고 있는 감정, 서사, 기억 등의 요소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사진을 구성하고 있는 대상의 포즈, 표정, 그리고 상태에만 관심을 둘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니라 익명의 파운드 이미지를 그림의 재료로 삼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를 극대화시키는 방법론으로 모노톤을 사용합니다. 원본이 가지고 있던 '색'을 날려버리고 푸른 단색을 이용하여 화면을 재구성하는 겁니다. 색이 배제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원본을 왜곡해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상황'으로 화면을 밀어내게 됩니다. 즉 작가에게 화면이 지닌 서사란 중요치 않으며, 하나의 그림을 보고도 다양한 감상과 해석이 가능함을 긍정하는 자신의 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Seasonal smell, 60.6 x 60.6 cm, oil on canvas, 2021


정지윤의 작업에서는 특유의 뭉개지고 흘러내리는 물성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감상자는 더욱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느낌을 받게 됩니다. 작가는 작업을 행할 때 명암대비를 적절히 조정해놓고 화면을 빠르게 그려나가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붓질을 리듬감 있게, 또는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방식에서 유화 물감의 특성상 뭉개지거나 흘러내리는 물성들이 자연스레 나타납니다. 단순하고 감각적인 표현으로 하여금 대상에 익명성을 부여하고 더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작업은 물감을 흩뿌리는 드리핑(dripping) 기법을 통해 마무리됩니다. 이 마지막 제스쳐를 통해 추상성이 가미되고, 이는 작업이 표상하는 바가 이미지의 '재현'이 아닌, 붓질이자 회화 그 자체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회화가 가질 수 있는 고유한 특정성을 가져가는 동시에, 관습적 해석으로부터 벗어나 '읽어낼 수 있는' 가능성의 자리를 부여합니다. 


The little moment, 72.7 x 72.7 cm, oil on canvas, 2022


푸른 모노톤은 작가 정지윤을 대표하는 키워드나 다름없습니다. 그는 다채로운 색에서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감정들을 배제하고자 했습니다. 일관된 색상의 모노톤으로 표현함으로써 감상자가 본인의 색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컬러사진보다는 흑백사진에서 그 조형성이 더욱 두드러지듯이, 회화 역시 제한된 색감을 사용할 때 그 조형성이 극대화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노톤으로 명암의 대비를 적절히 조정하면 더욱 단순하고 절제된 붓질이 가능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특징들을 이용하여 시작한 그의 모노톤 회화는 이제 작가의 키워드 중 하나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정지윤 : Language of facial expressions》전경, 촬영 아트맵


정지윤 작가는 현재 네 번째 개인전 《Language of facial expressions》를 열었습니다. 명암의 적절한 대비와 자유롭게 움직이는 붓질은 대상에 기대기도, 밀어내기도 하며 일렁이는 표면을 만들어냅니다.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내적 감정의 언어를 직접 마주해보시기 바랍니다. 전시는 ERD갤러리에서 11월 27일까지 진행됩니다. 




글 | 아트맵 에디터 이지민

자료 | 정지윤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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