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윤 : Language of facial expressions》
작가의 방
첫번째 방 | 푸른 표정의 언어, 정지윤 Jeong Jiyoon
푸른 화면 속 모노톤으로 표현된 익숙하면서도 낯선 인물들과 표정.
독창적인 표현 방법으로 주목 받고 있는 정지윤 작가의 회화입니다.
정지윤 작가는 주로 수집한 사진 이미지에 드러나는 감각적 특성을 포착하여 캔버스에 옮겨냅니다. 큰 틀에서 보자면 작가가 담아내는 주제는 '일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수집한 사진 이미지 속, 주로 인물들의 얼굴이나 제스처(gesture)에 관심이 많습니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주로 적막한 분위기를 자아내거나 낯설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이것들은 사실 너무나도 평범하고 익숙하면서 친근한 우리의 일상입니다.
정지윤 작가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진이 지시하는 내용보다 그것의 조형성입니다.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은 순간'이란, 어떤 이유에서든 그 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진이 담고 있는 감정, 서사, 기억 등의 요소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사진을 구성하고 있는 대상의 포즈, 표정, 그리고 상태에만 관심을 둘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니라 익명의 파운드 이미지를 그림의 재료로 삼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를 극대화시키는 방법론으로 모노톤을 사용합니다. 원본이 가지고 있던 '색'을 날려버리고 푸른 단색을 이용하여 화면을 재구성하는 겁니다. 색이 배제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원본을 왜곡해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상황'으로 화면을 밀어내게 됩니다. 즉 작가에게 화면이 지닌 서사란 중요치 않으며, 하나의 그림을 보고도 다양한 감상과 해석이 가능함을 긍정하는 자신의 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지윤의 작업에서는 특유의 뭉개지고 흘러내리는 물성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감상자는 더욱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느낌을 받게 됩니다. 작가는 작업을 행할 때 명암대비를 적절히 조정해놓고 화면을 빠르게 그려나가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붓질을 리듬감 있게, 또는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방식에서 유화 물감의 특성상 뭉개지거나 흘러내리는 물성들이 자연스레 나타납니다. 단순하고 감각적인 표현으로 하여금 대상에 익명성을 부여하고 더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작업은 물감을 흩뿌리는 드리핑(dripping) 기법을 통해 마무리됩니다. 이 마지막 제스쳐를 통해 추상성이 가미되고, 이는 작업이 표상하는 바가 이미지의 '재현'이 아닌, 붓질이자 회화 그 자체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회화가 가질 수 있는 고유한 특정성을 가져가는 동시에, 관습적 해석으로부터 벗어나 '읽어낼 수 있는' 가능성의 자리를 부여합니다.
푸른 모노톤은 작가 정지윤을 대표하는 키워드나 다름없습니다. 그는 다채로운 색에서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감정들을 배제하고자 했습니다. 일관된 색상의 모노톤으로 표현함으로써 감상자가 본인의 색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컬러사진보다는 흑백사진에서 그 조형성이 더욱 두드러지듯이, 회화 역시 제한된 색감을 사용할 때 그 조형성이 극대화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노톤으로 명암의 대비를 적절히 조정하면 더욱 단순하고 절제된 붓질이 가능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특징들을 이용하여 시작한 그의 모노톤 회화는 이제 작가의 키워드 중 하나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정지윤 작가는 현재 네 번째 개인전 《Language of facial expressions》를 열었습니다. 명암의 적절한 대비와 자유롭게 움직이는 붓질은 대상에 기대기도, 밀어내기도 하며 일렁이는 표면을 만들어냅니다.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내적 감정의 언어를 직접 마주해보시기 바랍니다. 전시는 ERD갤러리에서 11월 27일까지 진행됩니다.
글 | 아트맵 에디터 이지민
자료 | 정지윤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