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오면서 내게 늘 마음속 좌우명처럼 자리했던 말이 있다.
“남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지언정, 적어도 피해는 주지 말자.”
그 생각이 너무 오랫동안 몸에 밴 탓인지, 자연스레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점점 버거워졌다.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순간 그 사람에게 부담을 지우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해결하는 쪽을 택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켜도 추가 반찬은 직접 가져오는 것이 더 편했고, 어떤 문제가 생기면 전문가에게 의뢰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먼저 해보는 것이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그런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우리가 결혼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을 때 자연스럽게 ‘셀프 결혼’을 하자는 의견에 닿게 되었다.
내가 정의한 셀프 결혼이란?
‘노웨딩’. 흔히 말하는 결혼식을 생략하고, 우리의 방식대로 결혼을 채워 넣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 구상한 그림은 소박했다. 직계 가족에게만 조용히 식사 자리를 마련해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후에는 우리 둘이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 작은 서약식을 하자는 계획이었다. 남들이 보기에 다소 낭만적일 수도 있고, 반대로 어른들의 눈에는 “과연 결혼식이 온전히 너희만의 것이냐”라는 물음이 따를 수도 있는 방식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는 해도, 부모 세대에게 결혼식은 단순한 행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자식이 잘 자라 좋은 사람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는 사실을 주변 지인들에게 알리는 일종의 ‘의례’이자 ‘사회적 공유’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감정과 가치까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 결국 결혼식이라는 행사다.
우리의 계획을 주변의 이미 결혼한 친구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우리도 처음엔 스몰웨딩, 노웨딩으로 생각해봤어. 그런데 결혼은 둘이 하는 게 아니야, 최소 여섯 명이 하는 거지. 결국엔 돌고 돌아 남들 하는 방식으로 하는 게 제일 편하더라.”
말의 뉘앙스에는 묘한 체념과 현실 감각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아도 노웨딩을 실천한 사람, 스몰웨딩을 진짜 ‘스몰’하게 끝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세상은 분명 바뀌었다고 하는데, 왜 실제 사례는 이렇게 없을까?’ 그 질문이 자꾸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나도, 그리고 이 사람도 성인이 되자마자 부모님으로부터 물리적·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해 10년 넘게 혼자 지내며 살아왔다. 그만큼 몸과 마음이 이미 독립적인 상태였고, 자신의 생각과 신념 역시 흔들림 없이 단단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결혼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우리가 선택한 방식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태도를 갖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양가 부모님을 여러 차례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고, 오랜 시간의 대화 끝에 결혼식은 하지 않되 가족끼리 모여 조용히 식사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가족식은 가족들이 모이기 가장 편한 시기인 10월 추석에 하기로 했고, 결혼식에 해당하는 ‘의식’은 신혼여행지에서 둘만의 방식으로 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신혼여행지는 이탈리아의 소도시 마테라였고, 우리가 처음 만난 지 정확히 2주년이 되는 날, 그곳에서 둘만의 서약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계획에는 한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결혼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나눈 시점은 2025년 1월 어느 날이었고, 당시 우리는 각자 원룸과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살 공간은 6월 즈음에 구해야 했는데, 그 이유는 각자의 임대 계약이 그때 종료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혼인 전에 동거를 시작하는 것이 과연 어른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가 고민이었다. 게다가 집을 구매하게 될 경우 공동명의로 해야 할 텐데, 혼인신고도 하기 전에 계약서에 함께 도장을 찍는 것이 과연 순리에 맞는 일인지, 순서가 뒤바뀐 것은 아닌지 마음 한켠에서 계속 걸렸다.
형식보다 ‘우리 방식’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결국 두 사람만의 사건이 아니라 가족들과 사회 속에서 여러 절차와 감정이 얽혀 있는 일이었다. 그 사실이 우리의 계획을 더 섬세하게 만들기도 때로는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