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결혼 준비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했을 때, 답은 명확했다.
살 집을 구하는 것.
그래서 우리는 먼저 지도를 펼쳐놓고 서로의 출퇴근 동선, 선호하는 지역과 절대 피하고 싶은 지역을 하나씩 좁혀 나갔다.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곳은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다. 조건을 하나씩 걸러내고 또 걸러내다 보니, 신기할 정도로 단 하나의 동네만 남았다.
이 동네를 선택된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는 둘 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보다는 조금 한적한 분위기를 좋아했고, 광화문 러닝을 좋아해서 광화문까지 15분 내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나는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직장과의 접근성도 중요했고, 덤으로 주변에 전통시장도 있고 예쁜 카페들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소한 바람까지 더했다.
그래서 “일단 전세라도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부동산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이상한 기류를 느꼈다.
부동산마다 매물이 거의 없다고 했고, 시장 분위기가 완전히 ‘매도자 우위’로 돌아선 것처럼 모두가 굉장히 고압적이었다.
여섯 군데를 전화해도 보여줄 만한 매물조차 없었다. 그나마 한 곳과 어렵게 약속을 잡았는데, 매번 앞선 손님이 이미 계약했다는 말만 돌아왔다. 심지어 어느 부동산은 보러 가기로 한 매물이 약속 한 시간 전에 ‘집도 보지 않은 사람이 바로 계약금부터 넣었다’며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 뭔가 심상치 않다. 전세 들어가려다 큰일 나겠는데...? 이거 지금 매수해야 하는 분위기 아닌가?”
그 자리에서 서로의 자산 현황을 갑작스럽게 공개했고, 만약 영끌한다면 어디까지 가능할지 현실적인 계산을 했다.
그렇게 추운 밤길을 걸으며 부동산에서 바람맞고 돌아가던 중, 우연히 한 부동산 앞에서 아주머니가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아줌마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답지 않게 훅 들이밀었다.
“사장님, 혹시 집 없어요…ㅠㅠ?”
아주머니는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일단 안으로 들어오라며 자초지종을 물었다.
우리에게 신혼부부냐고 묻고는,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계속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더니 본인의 인생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셨다.
“내가 여기서 수십 년을 한 터줏대감이야. 내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와. 이상한 매물 잡지 말고, 내가 추천해 주는 곳 한번 보러 가자.”
사장님이 추천한 곳은 우리가 단 한 번도 고려한 적 없던 곳이었다.
순간적으로 ‘아, 이렇게 사기를 당하는 건가…?’ 싶었지만, 직접 함께 가주겠다길래 속는 셈 치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아주머니는 가는 길에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집을 볼 수 있는지 물었고, 밤 9시였음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집을 볼 수 있었다.
그 단지은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컨디션이 훨씬 좋았고, 예산 범위 안이기도 했다. 다만 살짝 언덕 느낌이 있고, 내부 전체를 싹 인테리어 해야 한다는 점에서 선뜻 결정하긴 어려웠다.
결국 그날은 그렇게 마무리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와 많은 생각에 잠겼다.
다음 날 토요일,
나는 출근을 하고 여자친구는 그 아파트의 다른 매물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다른 부동산을 찾았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이미 4팀이 줄을 서 함께 투어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전달받는 순간, 부동산 시장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나는 점점 더 조급해졌다.
여자친구는 또 다른 매물을 보았고, 꽤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럼 그냥 바로 계약금 쏴!”라고 했지만 부동산 사장님이 “남자분이 보지도 않은 집을 계약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만류했다. 그러던 와중에도 실시간으로 다른 손님이 집을 보러 왔고, 계속 계좌 달라고 조르는 여자친구에게 사장님은 우리에게 우선권을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여자친구를 돌려보냈다고 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자, 나는 결국 돌아오는 월요일 회사 점심시간에 시간을 내어 직접 그 집을 보러 갔다. 마음에 드는지 확인할 틈도 없이, ‘지금 아니면 못 산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바로 가계약금을 쐈다.
그렇게 우리는 전세를 알아보다가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채, 단 일주일 만에 예상도 못 했던 아파트를 매수하게 되었다.
늘 모든 일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움직이던 ‘파워 J’인 내가 이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했다는 것도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