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내 사랑>
그녀는 본능적으로 색을 찾는다. 단조로운 어딘가에 색을 입히고 꽃을 피운다. 관절염으로 절음뱅이가 되었어도,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집을 오빠가 마음대로 팔아버렸을 때도, 에버렛의 집에 가정부로 일하러 가서 이유 없이 뺨을 맞았을 때도 그녀는 색을 찾았다.
보육원에서 자라 혼자 사는 게 익숙한 에버렛은 친절히 사람을 대하는 법을 모른다. 가정부를 하겠다며 불쑥 찾아온 모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모진 말을 해대고 그녀의 뺨에 손을 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집에 꿋꿋이 남아있는, 컴컴하던 집과 자신에게 점점 색을 입혀주는 그녀에게 눈길이 가기 시작한다.
생선을 주문했던 손님이 모드의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모드는 화가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모드의 그림이 꽤 수입을 내자 에버렛은 모드를 돕는다. 걸음이 불편한 모드를 대신해 청소를 하고, 파리가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방충망을 설치해주기도 한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철조망만 세우던 에버렛에게 모드는 사랑한다 고백한다. 자신보다 성숙하고 솔직한 모드의 고백에 에버렛은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먼지가 가득 쌓여있던 자신의 옆자리를 내준다.
손님에게 생선을 가져다주고 집에 오는 길에 어느샌가 에버렛은 손수레에 모드를 앉혔다. 다리가 불편한 모드에게 에버렛이 해줄 수 있던 가장 따듯한 행동이었고 그런 행동은 에버렛의 서투른 진심을 보여줬다. 하지만 서툼은 세월이 흘러도 익지 못하고 모드에게 상처를 냈다. 죽은 줄만 알았던 딸이 살아있음을 알게 된 모드는 에버렛에게 울며 말하지만, 모드에게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에버렛은 화만 낸다. 에버렛에게 실망한 모드는 자신의 그림을 알아봐 주었던 손님에게 찾아가고 그림을 그리게 하는 원천이 뭐냐는 손님의 질문에
“액자 속이 저의 전부예요.”
라고 말한다. 몸이 불편해 항상 제약이 있던 그녀에게 그림은 인생의 전부였다.
모드가 세상을 떠나고 에버렛은 홀로 집에 남겨졌다. 소파에 앉아있는 그의 뒤로 집 안은 꽃과 새로 가득하다. 밖에 내놓았던 '그림 팔아요.'가 적힌 팸플릿을 들고 집에 들어온 그가 문을 닫자 여러 마리에 알록달록한 새들이 보인다. 외롭지 말라고, 예전처럼 어둡고 가시 박힌 사람이 되지 말라고 모드가 에버렛에게 자신의 온기를 전해줄 수 있는 그림들을 남겨놓은 것 같았다.
모드가 바보 같고 멍청한 에버렛을 사람답게 만들어놓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모드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에버렛이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는 알 수 있었다. 내 사랑. 제목처럼 운명같이 다가온 사랑은 많은 걸 바꿔놓는다. 식사할 때 모드가 곁에 앉는 것도 불편해하던 에버렛은 많이 바뀌었다. 모드를 개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개들보다도 모드가 더 소중해졌다.
이 영화는 나에게 사랑 이야기로 다가오지 않았다. 에버렛에게 의지하지 않고 죽기 전까지 그림을 그리다 죽은 모드가 색과 그림을 사랑하는 이야기로 보였다. 모드의 전부였던 그림을 나 역시 사랑하게 됐고 그래서 영화가 끝나자 눈물이 났다. 연약하고 금방이라도 꺾여나갈 것 같은 풀꽃이었지만 누구보다 강한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모드가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