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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실 Nov 22. 2021

새로운 세상

넷플릭스 <지옥>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기 위해 착하게 살려했던 7살 때와 달리 지금은 대가 있는 선행은 없으며 마찬가지로 대가 있는 악행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권선징악은 이 세상에서 제일 의미 없는 사자성어 중 하나이다. 착하게 살아도 누군가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죄를 지었어도 호화롭게 살다 편안히 죽음을 맞이한다. 한 때 신은 왜 죽음에 대해 원칙을 세워놓지 않은 걸까 궁금했다. 아니면 인간은 절대 이해하고 깨달을 수 없는 신만이 알 수 있는 원칙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애써 외면하지만 계속해서 떠오르는 생각 하나도  있었다. 죽음에는 아무 이유가 없다는 것. 이 이유는 이해할 수도 가늠할 수도 없어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어쩌면 당장 내일 내가 선택될 수도 있는 거니까.


*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옥

넷플릭스 제공

 갑자기 인간 앞에 천사가 나타난다. 천사는 인간에게 지옥에 갈 날과 시간을 고지하고 사라진다. 천사가 고지한 날이 되면 사자 셋이 나타나 인간을 잔인하게 해치며 고통을 준다. 그리곤 인간을 새카맣게 태워 죽인 뒤 사라진다. 고지를 받고 만약 고지 날 전에 자살을 해도 사자는 영혼을 찾아내 더 심한 고통을 준다. 고지는 누구도 어떤 상황에서도 피할 수 없다. 이 불가사의한 일을 미리 파악하고 예견했던 사람이 있다. 새진리회에 정진수(유아인) 의장이다.

 새진리회는 죄를 지은 인간을 심판하기 위해 신이 개입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새진리회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너희는 더 정의로워야 한다." 새진리회는 괴생명체가 나타나 인간을 죽이는 행위를 시연이라 표현한다. 새진리회의 말에 따르면 시연은 죄를 지은 사람에 한해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법에 반하는 죄를 짓지 않은 사람도 시연을 당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갓난아기도.

 명백한 죄가 없는 사람이 시연을 당하는 이유를 새진리회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진수 의장은 은밀히 범죄자를 찾아내 불에 태워 죽인 후 시연을 당한 것처럼 꾸며놓기도 한다. 새진리회는 오로지 죄를 지은 사람만 신의 시연을 받는다 주장하지만 그 시연은 신뿐만 아니라 사람도 행하고 있었다.

넷플릭스 제공

 고지를 받은 사람은 죄인이라 불리고, 가족들까지도 죄인의 가족이라며 피해를 당한다. 이에 새진리회와 대척점에 선 단체인 소도가 생겨난다. 소도는 정진수 의장과 새진리회를 비난하던 민혜진(김현주) 변호사가 만든 단체이다. 소도는 삼국시대 이전에 삼한 지역에 존재했던 곳으로 죄인이라도 이곳으로 도망치게 되면 잡지 못하는 신성한 지역이라 한다. 소도 단체는 죄인으로 시연을 당한 사람의 가족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 고지를 받은 사람의 죽음을 위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새진리회 의장도 고지를 받게 되면 자신들을 찾을 거라고. 지금 이 일들은 지진처럼 재난 중 하나일 뿐이라고.


신의 실수

 고지를 받은 갓난아기가 나타난다. 새진리회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죄만 인정하고 있는데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고지를 받았다는 건 새진리회 교리에 큰 걸림돌이 되는 일이었다. 새진리회는 아기가 시연당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막으려 하고, 소도는 새진리회를 무너트리기 위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시연 장면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상황을 괴롭게 보던 부모는 아기에게 사자가 찾아오자 어떻게든 시연을 막기 위해 애쓴다. 사자에게 맞서던 아빠는 무뤂을 꿇은 채 아기를 품에 꼭 안은 엄마를 같이 끌어안았다. 사자들은 그 상태 그대로 시연을 시작했고 고지를 받지 않은 엄마와 아빠가 죽게 되었다. 이는 그동안 새진리회에서 주장한 신의 절차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아이가 살아있던 것이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 상황을 믿지 못한다. 그리고 한발 늦은 새진리회가 아기를 뺏어가려 하자 지켜보던 사람들이 말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죄를 지은 사람만이 시연을 당한다 주장하던 새진리회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아기를 데려가지 말라고 강력히 주장하던 한 시민을 새진리회 사제가 막무가내로 구타한다. 자신이 신이 된 마냥 인간들이 만든 법 위에서 군림하던 새진리회는 바로 앞에 있던 경찰에게 체포되고 만다.


전지전능

 연상호 감독의 작품 <지옥>을 다 본 후 몇 개월 전에 본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속 문장이 생각났다. 능력주의 논쟁을 설명하던 중 구원에 대한 내용이었다.

 신앙이 독실한 사람은 교리를 따르고 선행을 함으로써 구원을 얻어낼 수 있는가. 아니면 오직 신이 각자의 생활 태도와 상관없이 구원받을 사람을 자유롭게 선택하는가?

 이 문장이 <지옥>이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천사와 사자들이 등장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세상이 혼란에 빠진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걸 예견했던 사람이 나타나고 그 사람은 선행을 함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말한다. 고지는 어떤 삶을 살았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듯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측할 수 없는 죽음에 선택당하지 않기 위해 선행을 함으로써 구원이라는 대가를 얻고자 한다.


인간들의 세상

 인간에겐 자율성이 있다. 설령 우리가 신이 만들어놓은 지구에 사는 거라 해도 아무것도 없던 땅에서 세상을 일구어   인간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어찌할  없었던 죽음은 공포로 다가왔고 우리는 신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쌓인 , 간접적인 경험으로 죽음은  인간의 삶을 바탕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구원받길 원하는 인간은 합리화를 선택했다. 신이 아닌 자신들이 죽음의 원인을 오로지 선과 악으로만 구분하는 원칙을 세우고 멋대로 사람을 심판했다. 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이 죽음에 관여하는지도   없다. 하지만 인간들은 결국 새로운 세상을 탄생시켜 놓았다.



  세계관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 들었다. <지옥> 세계관은 신선하면서도 이해가 어렵지 않았다. 또 자칫 유치하고 진부할 수도 있는 소재를 세련되고 흥미롭게 꾸며나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폭력적이어서 보기 힘들었다. 단순히 잔인함을 넘어서 정신적인 고통이 느껴질 만큼 인간들과 사자들의 모습이 악랄했다. 그리고 악랄한 악역에 맞설 선인이 너무 약해서 더욱 그렇게 느꼈다. 새진리회와 화살촉에 대항하는 소도 단체가 조금 더 조직적이고 강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히어로 같은 인물을 넣지 않은 이유는 <지옥> 속 세상 자체가 지옥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루하다고 느낀 사람들도 생긴 것 같기도 하지만... 또 원작을 몰랐던 사람은 잠실 롯데몰과 코엑스몰에 하고 있는 <지옥> 마케팅만 봐서는 판타지 요소가 많은 액션물이라 생각했을 것 같다. 실제로는 스토리가 더 사회적이고 철학적이었다. 이런 이유들로 <지옥>이 호불호가 갈리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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