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극한직업
치킨집 사장님으로 산다는 것
“여보,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아니야, 오빠. 조금만 더 참아. 조금만 더.”
“싫어, 싫다고!”
치킨을 주문한 지 한 시간이 넘도록 도착을 하지 않자 참았던 나의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왔다. 이상하게도 치킨을 주문하자마자 급격하게 배가 더 고파왔고 마치 시계가 멈춘 것처럼 기다림의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는 아내의 만류에도 나는 치킨집에 전화를 하고야 말았다. 분명히 배달 앱에서는 60분 내에 도착을 한다고 알람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배달을 주문한지 62분이 지났는데 치킨이 오지 않은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사장님, 배달 앱에서 안내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치킨이 도착하지 않아서 전화 드렸습니다. 뭐가 잘못된 것인가요?”
“아, 손님! 죄송합니다. 이제 막 나왔습니다. 금방 출발하겠습니다!”
“아니, 아직까지 출발도 안 했다는 말씀인가요?”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이 축구 하는 날이라 그런지 주문이 너무 많아서요.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다. 오늘은 바로 축구 국가대표 한일전이 열리는 날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정말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국가대표 경기이고 그것도 민족의 자존심이 걸린 한일전이기에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렸던 경기가 아닐 수 없었다. 직접 경기장을 찾을 수 없다면 집에서라도 응원을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응원 도구인 치킨이 필요한 날이었기에 아내와 나는 일찍 퇴근한 후 치킨을 시키고 축구를 볼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경기 시작이 다가오는 시간까지 치킨이 도착하지 않았고 침착하게 기다리지 못하는 나에게 아내는 실망의 눈빛을 보냈다.
“와, 오빠. 진짜 진상이다. 60분 안에 배달 온다고 했는데 2분 더 지났다고 전화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 해?”
“아니지, 여보. 60분 내에 도착한다는 것은 40분에 도착할 수 있고 50분에 도착할 수도 있는 것이야. 아무리 늦어도 60분을 초과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에 60분이 경과하면 혹시나 주문이 잘못 들어간 것은 아닌지 아니면 다른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
“오빠, 치킨집 사장님 입장은 조금이라도 생각해 봤니?”
기분 좋게 시켰던 치킨은 그렇게 우리 부부의 사이를 갈라놓기 시작했고 치킨이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단 한 마디도 섞지 않았다. 한일전이 시작하기도 전에 거실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 앉았고 아내와 나의 사이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처럼 싸늘해졌다.
‘띵동’
“죄송합니다. 배달이 너무 늦었죠?”
“네. 늦으셨네요.”
“빠르게 온다고 왔는데, 주문이 많이 밀려서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치킨집 사장님의 당부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예상보다 늦어진 배달 때문에 배고픔에 허덕일 손님의 마음을 미리 예상했던 것일까. 배달 기사님의 빠르고 정중한 사과에 더 이상 책임을 물을 수 없었고 나는 아무 말없이 치킨을 받아 들고 거실로 향했다. 그 순간, 싸늘해져 있던 우리집 거실에 갓 튀긴 따끈따끈한 치킨의 향기가 퍼져 나갔고 얼어 있던 우리의 마음도 조금씩 치킨의 온기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오빠, 오늘 같이 바쁜 날에 치킨집 사장님도 배달하는 분들도 얼마나 힘들겠어? 그리고 우리처럼 치킨을 기다리는 사람이 오늘 얼마나 또 많겠니? 이 모든 사람들이 전화해서 컴플레인 한다면 안 그래도 바빠서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스트레스 받을지 생각해 봤어? 저 분들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남편이야. 일이 많고 바쁜 것보다 오빠처럼 상대방 입장은 생각 안 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 더 저 분들을 힘들게 하는 거야. 입장을 한번 바꿔서 생각을 해봐.”
향긋한 치킨 냄새 덕분에 흥분이 가라 앉아 보이는 나를 보고 아내는 조심스럽게 타이르듯 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아무 말없이 아내의 말을 들어주었고 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축구가 시작될 시간은 다가오고 배는 고픈데 치킨이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잠시 이성을 잃었던 것이다. 치킨을 들고 오자마자 사과부터 하는 배달 기사님은 오늘 하루 동안 몇 번의 사과를 하셨을까? 나는 늦게 도착한 치킨에 대한 분노가 아닌 하루 종일 수고하시는 배달 기사님께 수고하신다는 말을 건냈어야 했다.
그리고 반성하고 있는 나에게 아내는 마지막 멘트를 날렸다.
“오빠 같은 손님들 때문에 한국에서 서비스업을 극한직업이라고 부르는 거야.”
대한민국 축구 선수로 산다는 것
치킨으로 인해 큰 깨달음을 얻은 우리는 조금은 서먹한 분위기에서 극적인 화해를 하고 축구를 보기 시작했다. 얼마만에 보는 한일전인데 늦게 도착한 치킨 때문에 이날의 즐거움을 망칠 순 없었다. 시원한 맥주와 맛있는 치킨을 먹으며 대한민국의 승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리라. 오늘의 승리가 우리 부부에게 언제 싸웠냐는 듯 더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빠, 건배!”
“대~한민국!”
우리는 시원한 맥주 한 모금에 대한민국을 외치며 경기 응원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치킨을 먹으며 가정의 평화를 찾아가던 바로 그 순간 일본의 선취골이 터져버렸다. 전반 15분만에 한 골을 먹다니. 뭐 그럴 수도 있지. 싱겁게 이기는 것보다 짜릿한 역전승이 더 재밌기 마련이니까.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실망하긴 일렀다. 짜릿한 역전승을 기대하며 다시 치킨을 뜯던 그 순간 10분만에 또 한 골을 실점했다. 경기 시작 30분도 되지 않아 두 골을 실점하자 우리는 소맥을 벌컥벌컥 마셔대기 시작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코로나19의 상황을 극복하고 어렵게 성사된 국가대표 평가전인데 시작하자마자 두 골을 먹고 시작하다니. 그것도 민족의 자존심이 걸린 한일전에···.
“오빠, 아직 시작인데 뭐 괜찮아. 건배, 건배!”
“그래, 그래. 시간 많은데 뭐. 세 골 넣으면 되지. 원샷, 원샷!”
주식과 축구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맹목적인 믿음’이다. 아무리 주식이 떨어져도 이상하게 내 주식은 다시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떨어지고 떨어져도 끝까지 지켜보고 추가 매수를 하며 맹목적인 충성과 믿음을 이어가다가 깡통을 차는 사람을 수없이 보았다. 마찬가지로 축구에서 아무리 골을 먹어도 우리 팀은 역전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항상 솟아오른다. 한 골을 실점하면 두 골을 넣으면 되고 두 골을 실점하면 세 골을 넣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자자, 넣자 넣자. 빠른 시간 내에 한 골만 넣으면 분위기 탈 수 있어.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정신차리고 더 뛰면 된다.”
아내는 더 이상 응원이 아닌 해설을 하기 시작했다. 해설가로 변신한 아내는 계속 혼자 중얼거렸다. 이미 뱃속으로 사라져 버린 치킨은 더 이상 아내의 입을 막을 수 없었고 축구를 보는 내내 중얼거렸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경기 종료 10분 전 또다시 어이없게 실점을 하고 3대0으로 끌려가자 실낱 같았던 우리의 희망은 분노로 바뀌었다.
“오빠, 어떻게 저걸 못 막지? 장난하자는 건가? 오늘 축구 너무 재미없다. 그냥 다른 거 보자. 진짜 경기를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제대로 된 슛도 한번 못 해보고 말이야. 내가 해도 저것 보다는 잘하겠네. 밥 먹고 하루 종일 축구만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축구를 못할 수 있지? 아, 열 받아.”
기회는 이때였다.
“여보, 저 선수들은 얼마나 힘들겠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구 선수들도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고 남편이야. 최선을 다해 뛰는데 결과가 안 좋다고 그렇게 비난하는 게 옳은 행동이니? 지금 축구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한마디씩 한다면 힘들고 지친 선수들이 얼마나 스트레스 받겠어?”
민족의 자존심이 걸린 한일전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준 선수들에게 맹목적인 비난을 하는 아내에게 분노가 아닌 격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멘트를 날렸다.
“여보, 자기 같은 사람들 때문에 대한민국 축구 선수를 극한직업이라고 부르는 거야.”
“오빠의 아내로 산다는 것도 만만한 직업은 아닌 것 같아.”
여전히 격려보다 분노에 찬 아내의 한 마디를 끝으로 손꼽아 기다렸던 대망의 한일전은 결국 3대 0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