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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타 Sep 11. 2021

항상 용기를 내어 친절을 베풀어라.

올드 트레퍼드 방문기

해외축구의 아버지


“다시 태어나면 박지성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10년 전. 우연히 TV를 틀다가 박지성 선수의 절친으로 알려진 에브라 선수가 인터뷰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박지성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에브라는 한국에 가면 박지성의 이름을 딴 길도 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게다가 무려 4차선 도로라는 것에 더 놀랐단다. 


“한국에 왕이 있고 그 위에 신이 있으면 저 위에는 박지성이 있다.”


어쩜 이렇게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역시 에브라는 박지성의 절친이 맞나 보다. 박지성은 나에게 신보다 더 높은 존재이며 삶의 활력소였다. 에브라가 한 말처럼 왕은 물론이고 신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박지성과 비교할 수 없다. 박지성 경기가 있는 날은 무척이나 성스러운 날이기 때문에 그날 밤 컨디션을 위해 무리한 활동을 하지 않고 최대한 낮잠을 자기 위해 노력했으며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도 최대한 자제했다. 만약 박지성이 선발 명단에서 제외가 되는 날이면 온몸에 힘이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반면 박지성이 맹활약하거나 골을 넣는 날이면 일주일 내내 핸드폰이 마르고 닳도록 영상을 다시 보았다. 

영상 속의 박지성은 나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준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마치 꿈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올드 트레퍼드 경기장에 박지성이 서있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지고 가슴 속에 애국심이 불타오르며 마치 내가 박지성과 아주 가까운 친척이라도 된 것처럼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박지성을 자랑하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또한 영상에 나오는 맨유의 홈구장 올드 트레퍼드를 보면 마치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운동장처럼 근거 없는 소속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무엇이든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할 것 같았던 우리의 캡틴 박지성도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가 다가왔고 결국 은퇴를 했다. 박지성이 떠난 뒤로 많은 후배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했지만 박지성이 나에게 주었던 그 잊지 못할 순간들만큼 나에게 해외축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워줄 순 없었다. 박지성이 떠난 뒤로도 나는 맨유의 경기를 꼭 챙겨 보았고 올드 트레퍼드만 보면 박지성의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꿈의 구장’이라는 별칭답게 올드 트레퍼드는 나의 젊은 시절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담겨 있는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오빠, 그런데 저기 가봤어?”

“아니?”


그러고 보니 매일 여자친구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박지성의 위대함과 올드 트레퍼드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정작 나는 저 곳에 직접 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이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시골 촌놈이었던 터라 TV에 나오는 유럽의 경기장들은 모두 내가 갈 수 없는 다른 세상의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학생 때는 돈이 없었고 취직을 하고 난 후로는 시간이 없어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래, 결심했어!”


달력을 펴고 여름 휴가 일정을 확인했다. 휴가 일정 앞뒤로 지금까지 아껴왔던 소중한 나의 연차들을 모아 붙이면 주말을 포함하여 10일은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났다. 일정까지 확인하고 나니 심장이 뛰고 콧구멍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올드 트레퍼드에 간다니···.   


그렇다면 비행기는? 숙소는? 경기 티켓은? 경기장은 잘 찾아 갈 수 있으려나?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았다. 여행 한번 제대로 다녀보지 못한 시골 촌놈에게는 여행을 준비하는 것부터가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다. 아, 여행은 돈과 시간만이 문제가 아니구나. 부지런하게 준비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구나. 큰 깨달음을 얻고 한달간 여행 준비에 매진하였다. 서점에 가서 여행 관련 책도 찾아보고 매일같이 인터넷으로 후기를 검색하다 보니 걱정했던 것들이 하나씩 해결되기 시작했고 점점 준비가 되어 갈수록 설레는 마음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며칠만 있으면 올드 트레퍼드로 떠난다. 나는 떠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잠시 후 히드로 국제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좌석 등받이와 발 받침대, 테이블을 제자리로 해주시고 꺼내놓은 짐 또는 노트북 등 큰 전자기기는 앞 좌석 아래나 선반 속에 다시 보관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목소리의 안내방송과 함께 영국에 도착했다. 외국에 처음 나와봐서 그런지 공기부터 한국과는 다른 것 같아 콧구멍으로 숨도 크게 쉬어 보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려가며 외국 처음 나가보는 시골 사람 티를 팍팍 냈다. 그리곤 잠시 후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아, 이것이 말로만 듣던 시차적응이라는 것이구나.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져 버렸다. 


다음 날 아침 부푼 가슴을 안고 맨체스터로 향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스완지시티의 경기 일정에 맞춰 축구팬들이 가장 많이 투숙한다는 호스텔을 예약해 두었고, 티켓 중계 사이트를 통하여 호스텔 로비에서 티켓을 수령하기로 약속을 해 두었다. 이정도면 여행 한번 다녀보지 못한 시골 사람 치고는 나름 철저한 준비 아닌가? 

그런데 맨체스터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계속 초조한 마음과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경기 티켓이 무사히 호스텔에 도착해 있을까? 만약 경기 티켓이 도착해 있지 않으면 어쩌지? 여기까지 와서 사기라도 당하면 나는 누구에게 도와 달라고 해야 하지?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혼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경기 티켓을 수령하기로 했는데요.”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KIM입니다.”

“KIM··· KIM··· KIM은 없는데요?”

“What?!”


세상에···. 불길한 느낌은 왜 항상 틀린 적이 없을까. 이것도 끌어당김의 법칙 중 하나인가? 기차를 타고 오면서 계속 우려했던 것처럼 정말로 호스텔에 경기 티켓이 보관되어 있지 않았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경기 시작 시간은 앞으로 네 시간 밖에 남지 않았는데···. . 


“정말 없나요? 다시 한번만 찾아봐 주세요. KIM 아니면 한국 이름처럼 된 다른 이름이라도 없나요?”

“No···. 일단 보관된 물건 중 경기 티켓은 없어요. 티켓을 어제까지 맡겨둔 분들이 몇 분 계셨는데 다 찾아 가셨어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지구 반대편에서 사기를 당했단 말인가? 어쩌면 좋지? 우선 한국에서 티켓을 중계해준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예약할 당시에 메일로 진행을 했기 때문에 고객센터로 전화를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상담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상담가능 시간은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7시, 주말 및 공휴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이런 젠장할. 하필 오늘이 또 주말이라 고객센터 연결이 되지 않았다. 큰일이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제발 꿈이었으면···. 도무지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 약속했던 티켓이 호스텔에 맡겨져 있지 않다고 빨리 좀 확인해 달라고 고객센터에 메일을 보냈다. 그러면 무슨 소용이 있나? 어차피 주말이 지나고 메일을 확인할 텐데···. 경기 시작 시간은 이제 세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길 잃은 고양이처럼 호스텔 로비에 앉아서 혼자 구시렁 구시렁거리며 마치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폭발할 사람처럼 전전긍긍 대고 있으니 로비에 있던 여직원이 무척이나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저···. 죄송한데 한 번만 더 찾아봐 주세요. 분명히 이곳에 티켓이 맡겨져 있다고 했거든요. 전 한국에서 온 KIM입니다.”

“내가 없다고 말했잖아. 내가 티켓이 있는데 없다고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니? 로비에서 이러지 말고 저기 휴게실로 가.”


내가 제대로 해석을 한 것이 맞다면 로비 여직원은 나에게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영어는 존댓말이 우리나라말처럼 명확하지 않은 것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이 직원은 지금 처음과는 다른 신경질적인 반말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마치 내가 티켓을 빼돌린 사람 취급을 한 것으로 생각되었나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직원이 화가 날 만도 하지만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상태였다. 축구를 보기 위해 지구 반바퀴를 날아왔는데 티켓이 없어 경기를 못 보게 생긴 상황에서 눈이 안 뒤집힐 수 있겠는가. 호스텔 여직원의 신경질적인 태도는 끓어오르는 나의 가슴에 휘발유를 쏟아 부었다. 


“헤이! 너 방금 뭐라 그랬어? 왓 디드유 쎄이? 다시 말해봐! 한 번 더 찾아보라는 것이 그렇게 어렵냐? 뭐가 잘못되었는지 확인을 해봐야 할 거 아니야!”


호스텔 여직원과의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실랑이는 의미가 없었다. 눈이 뒤집혀 흥분한 상태에서 영어가 제대로 나올 리 없었고, 한국말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이상한 소리로 다다다 쏘아붙이는 나를 처량하게 바라보는 호스텔 직원들과 주위 사람들의 시선만 느껴질 뿐···. 그렇게 혼자 글로벌 진상을 부리다 지쳐 스스로 휴게실에 조용히 들어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경시 시작 시간은 한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경기를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올드 트레퍼드의 외관은 보고 와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경기장에 가서 표를 파는 사람이 있는지 둘러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래, 일단 경기장으로 가보자.

하지만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분명히 로비에서 티켓을 수령하기로 했기 때문에 로비를 떠나면 영영 나의 티켓을 수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사기를 당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지금 기댈 곳은 로비에 있는 여직원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제 화를 내지 말고 불쌍하게 비굴한 모드로 부탁을 한번 해볼까? 나를 불쌍하게 생각해서 제발 좀 다시 찾아봐 달라고···. . 앞 근무자에게도 좀 물어보고 아니면 경비 아저씨에게도 좀 물어봐 주면 안되냐고 부탁을 해보면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자존심이고 뭐고 가서 싹싹 빌면서 부탁을 해봐야겠다. 지금은 전략적 인내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로비로 다시 나가려던 순간, 로비의 여직원이 내가 있는 휴게실로 뛰어왔다.


“헤이, KIM! KIM! 컴온, 컴온!”


방금까지 나랑 싸우던 로비의 여직원이 나를 급하게 불렀다. 나가서 한 판 붙자는 건가? 그러기엔 표정이 무척 밝아 보였다. 무슨 일이지? 나는 여직원의 부름에 급하게 로비로 향했다. 그리고 로비에는 어떤 중년의 남자가 경기 티켓으로 보이는 종이를 들고 서있었다.


“Are you KIM? 아임 쏘리. 예스터데이, 마이 패밀리 어쩌고 저쩌고···.”


무슨 말인지 안 들렸다. 아니 별로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내 눈에는 저 아저씨 손에 들린 티켓 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 종이 쪼가리가 내가 수령할 티켓이 맞는지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궁금하지 않았다. 제발 그것이 나의 티켓이라고 말해 달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겠다. 모든 것을 용서해주겠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설명하던 아저씨는 나에게 티켓을 내밀었다.


“이즈 디스 마이 티켓?”

“예스, 아임 쏘리. 예스터데이 마이 패밀리 어쩌고 저쩌고···.”


오! 하느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조상님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착한 일 많이 하며 성실히 살겠습니다!

기쁨과 안도의 눈물을 글썽이는 나를 보고 호스텔의 여직원은 무엇인가 해낸 듯한 보람찬 미소와 함께 앞선 나의 진상을 용서한다는 눈빛을 보내주었다. 나는 호스텔 여직원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정중히 사과했고 아까 호스텔 로비에서 진상을 부릴 때부터 나의 모습을 구경하던 경비 아저씨와 청소부 아주머니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내 주었다.


“헤이, KIM! 경기가 30분 밖에 남지 않았어. 내가 차로 태워 줄게.”

“오! 떙큐 쏘 머치.”


티켓을 들고 온 중년 남성은 나를 경기장까지 태워 준다고 했다. 세상에 정말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구나. 한 시간 전만 해도 포기해야 할 것 같던 나의 계획이 모두 다시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사기를 당한 줄로만 알았던 티켓도 수령했고, 경기 시작 전 경기장에도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헤이, KIM. 웨얼 아유 프롬?”

“아임 프롬 코리아.”

“오, 코리아! 지성팍!”

“예스!”


박지성은 이미 1년 전 맨유를 떠났지만 맨유 팬들의 가슴속에는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서 박지성의 이름을 듣고 반갑게 맞이해 주는 사람을 만나니 또 다시 가슴 속에 애국심이 끓어올랐다.


“아임 쏘리 어게인, 예스터데이 마이 패밀리 또 어쩌고 저쩌고···.” 


아까 흥분된 상태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던 그의 목소리가 이제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제 티켓을 호스텔에 맡기기로 되어 있었는데 가족 중에 누가 일이 생겨 맡기지 못했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괜찮다고 오히려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나와의 약속을 어겨 나를 힘들게 만든 사람이 아니라 한 시간 전까지 절망에 빠져 있던 나를 구해준 은인이라 여겨졌다. 평생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준 사람과 그냥 헤어지기 너무 아쉬웠지만 경기 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우리는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한 사진을 한 장씩을 찍고 쿨 하게 헤어졌다.


꿈의 구장 올드 트레퍼드


원래 나의 계획은 경기 시간 두 시간 전에 경기장에 도착해 경기장 외관 곳곳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기 시작이 10분 밖에 남지 않아 후다닥 입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장 구경은 경기를 마치고 해도 되는 것이니까···. !

입장하는 순간 예상대로 모든 것이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우선 정말 크고 높은 경기장, 그리고 이 많은 자리를 꽉 채운 관중들이 그저 놀라운 따름이었다. 분명 호스텔까지 가면서 느낀 맨체스터는 조용하고 한적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 숨어 있다가 나온 것일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경기를 하면 어떤 기분일까? 아···. 박지성 선수가 있을 때 왔더라면 더욱 의미가 있었을 텐데···. !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오늘 맨유와 맞붙을 스완지 시티에는 또다른 자랑스러운 코리안 프리미어리거 기성용 선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기성용 선수를 응원하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시종일관 맨유의 승리를 외치기로 했다.


헐···. 기성용 선수가 맨유를 상대로 골을 넣었다. 스완지가 맨유를 상대로 선취골을, 그것도 기성용 선수가 넣다니···. 무척이나 역사적이고 자랑스러운 순간임에 틀림없었지만 나는 기뻐할 수도 박수를 칠 수도 없었다. 온 사방에서 ‘왓더뻑’이 들리는 와중에 눈치 없이 촐랑댔다가 국제 미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최대한 침착하게 기쁨을 억누르고 맨유의 실점에 실망감을 표현하려 애썼다. 하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성용과 같은 한국스러워 보이는 나에게 시선이 쏠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나는 침착하게 기성용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오직 지성팍의 팬이라고 스스로 상기시켰다.

경기는 기성용 선수의 선취골에 힘입어 스완지 시티의 승리로 끝나버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이변의 결과로 인해 경기장 곳곳에서는 계속 ‘왓더뻑’이 난무했고 나도 애써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경기장을 조용히 빠져나갔다.


경기가 끝나고 나는 경기장 곳곳을 둘러보았다. 경기장 주변에서 느낄 수 있는 올드 트레퍼드의 역사들을 살펴보고 저 멀리서 바라보는 올드 트레퍼드의 뷰까지 확인하며 그동안 TV로만 보던 꿈의 구장을 직접 눈과 피부로 느껴 보았다.

그렇게 꿈만 같던 시간을 보낸 후 해가 질 무렵 숙소로 돌아 가려고 하던 순간, 아뿔싸! 경기장을 올 때 차를 얻어 타고 와서 숙소로 돌아가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미 경기가 끝나고 두 시간이 훌쩍 지났기에 시내로 우르르 빠져나가던 행렬도 없어 나 혼자 우두커니 길에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오늘 호스텔에서 겪었던 시련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것처럼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해결할 방법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에 차분히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올드 트레퍼드로 향했고 직원처럼 보이는 분께 사정을 이야기하니 친절하게 시내까지 가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오늘 정말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 같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 착한 사람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친절함을 베풀면 다 같이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된다는 뜻일 것이다. 항상 고마워하고 용기를 내어 친절을 베풀며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나는 오늘 나의 글로벌 진상을 받아 준 호스텔 여직원을 위해 맨체스터 시내에서 작은 초콜렛을 사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여직원은 이미 퇴근하고 다른 직원이 근무 중이었고 안타깝게도 내가 호스텔을 떠나기 전까지 그 여직원을 다시 만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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