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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타 Sep 11. 2021

부부라서 행복해요

미국 여행 중 얻은 깨달음과 축복

동상이몽


“오빠, 우리 미국은 한번 가봐야 하지 않을까?”

“무슨 말이야? 웬 미국?”

“그냥 가보고 싶어, 미국!”

“흠···.”


갑작스럽게 미국 바람이 들어간 아내가 여행을 제안했다. 미국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가야할 특별한 이유도 딱히 없었지만 그래도 세계 GDP 1위 선진국에는 한번 다녀와 봐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발동된 것이라 한다.


“그래, 여보. 좋은 생각이야. 그러면 미국 어디로 가야 할까?”

“오빠, LA가 좋겠어.”

“LA?”


얼마 전 개봉한지 몇 년이 지난 영화 라라랜드를 뒤늦게 보고 온 아내가 왜 미국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LA를 배경으로 만든 로맨스 영화 라라랜드는 감수성이 풍부한 수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고, 영화가 상영된 이후 ‘라라랜드 투어’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LA 여행이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난 영화 라라랜드를 보지 않았다. 평소 나의 성격상 따뜻한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담긴 로맨스 영화는 끝까지 보지 못하고 중간에 잠이 들거나 손발이 오그라들 때쯤 극장을 탈출하기도 한다. 나는 주로 조폭을 소재로 한 범죄 스릴러와 같이 영화가 상영하는 내내 손에 땀이 나면서 긴장감에 가슴이 쫄깃해는 영화를 좋아한다. 특히 이런 범죄 스릴러 영화를 극장에 혼자 가서 보는 것을 무척 즐긴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영화를 같이 보는 경우가 드물다.


아무튼 나는 그러한 이유로 영화 라라랜드를 보지 못했기에 라라랜드 투어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예상을 해보면 남녀의 달콤한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데이트 코스나 카페, 아니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투어 등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아내가 제안한 미국 여행의 의도를 파악했지만 나는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 나 또한 LA에 가야 하는 이유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인즉, 데이비드 베컴, 스티븐 제라드와 같은 슈퍼스타들이 몸을 담았던 LA 갤럭시를 비롯하여 1994년 미국 월드컵의 결승전이 열린 로스볼 스타디움 등의 축구 역사뿐 아니라, 미국의 수많은 선진 스포츠 인프라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빠, 그럼 우리가 각자 가고 싶은 곳을 한번 적어보자.”

“오케이.”


우리는 각자 A4 용지 하나씩을 들고 서로 가고 싶은 곳을 적어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서로 가고 싶은 곳이 많이 다를 것이라는 것을···. 그것을 잘 알기에 우리는 불필요한 말다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처음부터 상의 없이 각자가 원하는 곳을 일단 적어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되었다.


“엔젤스 플라이트,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 유 아 더 스타 벽화, 게티센터 박물관, 유니버셜 스튜디오, 스모크하우스 레스토랑, 헐리우스 사인, 허모사 비치, 블루보틀, 그랜드 센트럴 마켓, 그리피스 천문대, 조슈아트리 국립공원···.”


역시 예상대로 아내가 가고 싶어 하는 곳 중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쇼핑몰처럼 보이는 곳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평소 조금 힘들어하는 쇼핑만 하지 않는다면 목적지가 어디든 같이 다니면서 사진 찍고 추억을 만드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로즈볼 스타디움, 스텁허브 센터, 뱅크 오브 캘리포니아 스타디움, LA 메모리얼 콜리세움, 다저스타디움, 에인절스타디움, 스테이플스 센터···.”


이번에는 아내의 예상대로 나의 A4 용지에 적힌 것은 모두 경기장이었다. 나는 사실 미국의 스포츠 리그에 대해서는 많은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꼭 경기를 관람하고 와야겠다는 의무감은 없었지만,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미국의 선진 스포츠 인프라는 경험해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은 강했다. 특히 엄청난 역사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 LA 메모리얼 콜리세움이나 로즈볼 스타디움은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꼭 다녀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같은 LA를 가는데 가고 싶은 곳은 왜 이리도 다를까.


“오빠, 우리 같은 곳으로 여행 가는 거 맞지?”

“응.”

 

부부의 역할


말로만 듣던 미국이라서 그런 것일까? 공기부터가 다른 것 같은 설렘이 공항에서부터 밀려왔다. 호텔에 가서 짐만 풀고 바로 뛰쳐나올 계획을 세우고 푹신한 침대에 아주 잠시 몸을 던졌는데 아내와 나는 그대로 씻지도 않은 채 열 시간을 자버렸다.

예상치도 못한 긴 겨울잠 같은 시차적응을 하고 보니 지나간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이럴 시간이 없는데! 나는 정신을 차린 후 곧바로 아직 시차적응이 끝나지 않은 아내를 깨워 부랴부랴 LA 메모리얼 콜리세움으로 향했다.


“오빠, 도대체 거기가 뭐하는 곳이길래 이렇게 난리야?”

“난리?”


사실 LA 여행을 준비하기 전까지는 이 곳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여행을 앞두고 LA 메모리얼 콜리세움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니 이 곳이 얼마나 위대하고 뜻 깊은 곳인지 알게 되었다.


“잘 들어봐, 이 곳은 말이야. 미국 스포츠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야. 원래는 세계 1차대전 참전 군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곳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2회나 선정된 곳이고, 1932년과 1984년에 하계올림픽 주경기장으로 선정된 데에 이어 2028년 또 한 번의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사용될 예정이야. 이 곳에서 폐막식도 열린다지, 아마?”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


이렇게까지 설명을 해 줬는데도 아내는 이 경기장의 위대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난 도대체 그게 왜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아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여보, 이렇게 역사적인 곳에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이 훗날 우리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인지 상상이 되지 않니?”

“응, 차라리 그리스피 천문대 가서 사진 찍는 게 추억에 더 남겠다.”

“이 곳에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경기도 두 번 열렸는데 2006년 2월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1대0으로 승리한 경험이 있고, 2014년 1월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서도 1대0으로 승리를 했지.”

“응, 그렇구나.”


쇠기에 염불을 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비록 아내가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경기장으로 향하는 내내 준비해 온 지식을 총동원하여 아내에게 설명을 했고, 내가 이 곳에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였는지 아내가 알아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아내의 모습에 나는 무척 서운했다.


“여보, 이럴 땐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공감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게 부부의 역할이지!”

“부부의 역할?”


나는 무척 기분이 상했지만 화를 내지 않았다. 여행의 시작부터 분위기를 망칠 순 없었고 혹시나 나중에 쇼핑을 가자고 하면 나도 똑같이 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오빠, 그래서 오늘 무슨 경기가 있는 거야?”

“아니, 우리는 스타디움 투어를 신청해서 보고 올거야. 1시 30분부터 가이드 투어가 있는데 현장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대.”

“스타디움 투어?”


스타디움 투어라는 것이 아내에게는 생소했나 보다. 나는 그동안 해외에서 스타디움 투어를 많이 해 보았지만 아내와 함께 하는 것은 이번 여행이 처음이다. 축구 경기도 없는 곳을 왜 들어가서 구경하는지 이해를 못 할 수 있지만 한번 그 매력에 빠져 보면 헤어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줄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내일부터 로즈볼 스타디움 투어, 다저스타디움 투어, 에인절스타디움 투어 등 많은 경기장을 투어해야 하기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내부 공사 중으로 당분간 투어가 중지됩니다.’


내 눈을 의심했다. 경기장 주위에는 개미 한 마리도 없이 조용했고 도무지 매표소가 보이지 않아 경기장 외벽을 두 바퀴나 돌고 나서야 A4 용지에 조막만 하게 적혀 있는 문구를 발견한 것인데, 혹시나 내가 영어가 짧아 잘못 해석했을까봐 스마트폰으로 번역기를 돌려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재 내부 공사 중이라 스타디움 투어를 하지 않는다니···.


여행을 오기 전 홈페이지에서 티켓을 예매해 두려고 하였으나 여러 블로그에서 투어 티켓은 현장 발매가 가능하고 인원 제한에 걸리더라도 자유투어가 가능하니 걱정할 것 없다는 정보를 미리 확인했었기에 별도로 사전 예매를 하지 않았다. 또 무엇보다 우리가 여기 몇 시에 도착할 수 있을지를 확신할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문제는 티켓이 아니라 경기장이 내부 공사 기간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오빠, 그냥 돌아가자.”

“무슨 소리야. 이 곳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순 없어.”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전긍긍하다가 매표소 문을 쿵쿵 두드려 보았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더 세게 쿵쿵쿵 두드렸고 그제서야 빅마마스러운 중년의 여자분이 경계의 눈빛을 하고 문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저 혹시 스타디움 투어 할 수 없나요?”

“No.”

“그럼 잠시만 들어가 볼 수도 없을까요?”

“No.”


단호했다. 짧고 굵은 대답보다 그녀의 얼굴 표정이 절대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해 주었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순 없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 간다면 평생의 한으로 남을 것만 같았기에 측은지심을 유발해 보기로 했다.


“아임 프롬 코리아. 저는 한국에서 전 세계 경기장을 투어하기 위해 미국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또 언제 이 곳에 다시 올 지 모릅니다. 한 번만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나의 간절한 마음이 잘 전달되었던 걸까? 그녀는 이번에는 ‘No.’ 라는 대답 대신에 잠시 사무실로 다시 들어갔다. 나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알아보러 가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그녀보다 덩치가 더 산만한 보안요원과 함께 다시 나타났다.


“후 아 유?”

“저···. 경기장 투어를 할 수 있을까요?”

“No.”

“네, 알겠습니다.”


나는 두려웠다. 그녀는 내 말을 이해를 못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를 쫓아내기 위한 것인지 몰라도 덩치 큰 보안요원을 대동하여 우리를 돌려보냈고 나는 빠른 수긍을 하고 발길을 돌렸다. 너무 서러웠지만 덩치 큰 보안요원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바라보며 걸었다. 여기까지 와서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슬펐고 아내 앞에서 고개 숙인 내 자신이 창피했다.


“오빠, 그래도 이 역사적인 곳에 왔으니까 추억은 남기고 가자. 우리 저기로 가서 경기장을 배경으로 같이 사진 찍고 가는 건 어때? 아까 보니까 경기장 정문에 올림픽 오륜 마크도 있던데! 거기서도 찍으면 되겠다. 내가 예쁘게 찍어 줄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순 없잖아.”


아쉬움과 창피함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나에게 아내는 방금까지 없었던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비록 경기장은 들어가지 못했지만 실망한 나를 위한 아내의 관심과 배려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나를 또 한 번 부끄럽게 만들었다.

경기장에 도착하기 전 부부의 역할을 운운하며 아내에게 잔소리를 했던 나 자신이 창피하고 후회스러웠다. 진정한 부부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은 아내가 아니라 나였음을 알게 되었다.


아내의 배려 속에 우리는 경기장 외곽을 돌며 올림픽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았고 경기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잊을 수 없는 우리만의 추억을 완성하고 돌아왔다.


부러운 부부


미국여행 6일차가 되었다. 진정한 부부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라라랜드 투어부터 쇼핑까지 여기저기 끌려다니다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꼭 가야 할 곳이 남았었다. 그곳은 바로 미식축구의 성지라고 불리는 로즈볼 스타디움이다.

이 곳은 1994년 미국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곳으로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 첫 월드컵 결승전 장소였다. 당시 브라질이 이탈리아를 승부차기 끝에 물리치고 네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하지만 난 이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려주지 않았다. 어차피 관심도 없을뿐더러, 관심 없는 이야기에 공감을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부부의 역할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오, 오빠. 이거 엄청 재밌는데?”


로즈볼 스타디움 투어가 시작되자 의외로 아내는 무척 즐거워했다. 스타디움 투어가 처음인 아내에게는 선수들이 쓰는 라커룸에 누워 보고 기자회견 장에 앉아 마이크에 대고 인터뷰도 해보는 체험이 신선했나 보다. 중계석으로 올라가 경기 해설자가 되어 보기도 하고 기자석에 앉아 진지한 눈빛으로 기사도 쓰는 시늉을 했다.


“오빠, 나도 한때는 아나운서나 기자가 꿈이었는데 말이지···. “


꿈 꾸는 것은 자유니까 충분히 그 꿈을 존중한다. 만약 아내가 스포츠 아나운서나 기자가 되었더라면 우리는 더욱 궁합이 잘 맞는 부부가 되지 않았을까?

경기장에서 축구를 보는 것 보다 더욱 흥미를 느낀 아내는 스타디움 투어에 무척이나 적극적이었고 우리는 잔디를 밟아 보기 위해 그라운드로 내려갔다.


“두 분 사진 찍어 드릴까요?”


어디선가 갑자기 반가운 한국말이 들려왔다. 키가 엄청 크고 몸도 좋고 무척 잘생긴 청년이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오셨나 봐요?”

“아니요. 전 미군입니다.”


미군? 한국 사람이 미군? 그게 가능한 것인가? 여러 가지 궁금증이 치솟았지만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간단하게 몇 마디만 나누었다.


“그럼 미국인이세요?”

“아니요, 한국인입니다. 하하.”

“아, 신기하네요.”

“두 분 정말 보기 좋으시네요. 저도 나중에 결혼하면 이렇게 아내와 함께 축구 여행하는 것이 꿈입니다. 부럽습니다.”


참 듣기 좋은 말이었다. 스타디움 투어를 즐기는 아내를 보고 부부가 모두 축구를 사랑해 같이 축구 여행을 다니는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반은 맞는 말이고 반은 틀린 말이지만 어쨌든 우리가 부러워 보인다고 하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잘생긴 외모만큼 말도 듣기 좋게 하는구나.


“오빠, 쟤 너무 잘생겼어···. 미군은 다 저런 걸까?”


어리고 키 크고 몸도 좋은 미군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아내는 한국계 미군의 위대함을 느끼고 있었다. 저렇게 멋있는 남자가 왜 혼자 여행을 왔을까? 아직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내 역시 많은 궁금증이 생겼지만 우리는 사진만 찍고 헤어졌다.


“여보, 쟤가 우리 보고 부럽대.”

“오빠, 저 미군이랑 여행 다닐 여자친구는 얼마나 행복할까.”

 

새로운 시작, 그리고 축복 


미국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한 지 한 달이 지나도 여독이 풀리지 않은 기분이었다. 다시 일상에 집중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쯤 아내에게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오빠, 빨리 병원으로 와봐.”


병원? 무슨 일이지? 난 병원이란 단어만 들으면 겁부터 난다. 축구를 하다가 병원 신세 지는 사람들을 많이 봐와서인지 몰라도 어렸을 때부터 병원 가는 것을 무척 싫어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갑작스러운 아내의 연락에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 갔다.


“축하합니다. 임신 5주차시네요.”


헐? 임신? 아내가 임신을 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당황해했다. 내가 아빠가 되다니? 우리가 부모가 되다니!

병원에서 여러 가지 상담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이번 미국 여행은 우리 부부에게 많은 것은 선물하였다. 진정한 부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 하는 계기가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만큼 우리는 행복한 부부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과 같은 아이를 맞이하게 되었다.


“오빠, 이제 축구 보러 못 다니겠네.”


물론 두말할 것 없이 축구보다 가족이 먼저다. 하지만 아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출산 후 취미생활을 즐기지 못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나에게는 결혼 전부터 꿈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주말마다 아이를 목마 태워 축구장 나들이를 가는 것이다. 그동안 그런 가족의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었는지 모른다.


“오빠, 아들일까? 딸일까? 딸이면 발레를 시켜 보고 싶은데.”

“아들이든 딸이든 우선 축구 교실은 보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축구 인생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앞으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만들어 갈 우리의 축구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삶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 즐겁고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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