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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타 Oct 23. 2021

아임 프롬 코리아

스스로 지킨 나의 정체성

아 유 프롬 차이나?



런던에 오면 무조건 가보아야 할 곳을 미리 정리해 두었다. 웸블리 스타디움, 스템포드 브릿지, 런던 스타디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로프터스 로드 스타디움, 화이트하트레인 스타디움 등등 런던에는 정말 수많은 경기장이 있다. 이 모든 곳을 하루만에 다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선 발만 찍고 오는 한국식 관광을 할 예정으로 가장 먼저 숙소에서 가까운 스템포드 브릿지로 출발하였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오셨나 봐요? 저희 사진 좀 찍어 주실래요?”


스템포트 브릿지에 도착하자 마자 엄마와 딸로 보이는 한국사람들을 만났다. 나를 보자마자 한국사람인 것을 알아보고 스템포드 브릿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나는 이번 여행 중 많이 들었던 단어 중 하나가 ‘니하오’다. 내가 ‘헬로우’라고 먼저 인사하면 대부분은 ‘하이’, ’헬로우’로 답을 해주지만 ‘니하오’라고 답하는 경험을 꽤 했다. 그래서 나는 내 얼굴이 중국사람처럼 생긴 것은 아닌지 마음의 상처를 조금 받고 있었는데 한국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한국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어 너무 기뻤다. 


“스타디움 투어 하러 오셨나봐요? 저희는 미리 예약해서 20분 후 입장인데.”

“스타디움 투어요?”


경기가 없는 날에는 스타디움 투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내가 참 한심스러웠다. 진작 이럴 줄 알았으면 경기가 없는 날 시간대를 미리 계산해서 여러 경기장을 투어하고 올 계획을 세웠을 텐데···.  지금이라도 얼른 가서 스타디움 투어를 문의했더니 두 시간 후에나 가능 하다고 했다. 시간이 금과 같은 일정이었으나 스타디움 투어가 너무 궁금한 나머지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점심을 먹어야 했기에 근처 식당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햄버거 피자 간판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난 한국에서도 햄버거나 스파게티 그리고 피자를 1년에 한 번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먹을까 말까 하는 완전 토종의 입맛이라 순대국밥이나 된장찌개를 먹어야 식사가 가능한 무척이나 재미없는 사람이다. 영국여행 중 절반은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고 지금처럼 이동 중에 식사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햄버거나 핫도그로 간단하게 허기만 채우곤 했다. 만약 이 타이밍에 주위에 한국 식당이 짜잔 하고 나타난다면 사막 한 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 들텐데···.  

그렇게 나는 오아시스를 찾지 못한 채 스템포드브릿지 바로 앞에 있는 한 햄버거집을 찾았고 베이직 버거 하나와 콜라를 주문했다. 


“헬로우. 나이스 투 미츄! 웨얼아유 프롬? 차이나?”


손님이 한 명도 없어서일까. 아니면 동양인이 반가워서일까. 나를 보고 직원이 아주 반갑게 인사를 건내 주었다. 다만 제일 마지막 단어가 몹시 거슬렸다. 중국인과 한국인이 구분이 잘 되지 않는 것인가? 얼굴과 차림새만 보아도 중국인 한국인 구분은 크게 어렵지 않은데 서양인에게는 그냥 다 똑같아 보이나 보다. 


“아임 프롬 코리아.”

“코리아? 오! 유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


한국에서 왔다고만 했는데 직원은 나를 맨유의 팬으로 확신을 했다. 박지성의 효과가 이정도 구나.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그리고 난 무엇이라 대답해야 할지 생각에 빠졌다. 맨유 팬이 맞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곳은 첼시의 홈구장이 있는 런던이다. 첼시 팬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첼시 팬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지?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지나갔다. 


“노, 아이 라이크 첼시! 비코즈 아이 러브 삼성.”


맞는 대답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대답을 하고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을 사랑하는 것이야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고 당시 첼시의 유니폼에는 자랑스러운 삼성의 로고가 마킹되어 있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첼시의 팬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했다고 생각 했다. 햄버거 가게 직원도 나의 눈빛을 보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시간 후 스템포드 브릿지에 입장했다. 20명씩 시간을 나누어 가이드와 함께 투어를 했는데 선수들의 라커룸에 앉아보고 잔디도 직접 밟아보며 경기장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만 하더라도 이렇게 잔디를 밟아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하지 못했기에 조금은 흥분한 표정으로 혼자 팔을 뻗어 셀카를 마구 찍어댔다. 


“사진 찍어 드릴까요?”


혼자 짧은 팔을 뻗어 애써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 처량해 보였는지 옆에 있던 젊은 부부가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땡큐를 외치며 부부의 도움을 받아 스템포드 브릿지의 구석구석에서 인증샷을 남겼다. 젊은 부부는 독일에서 왔으며 둘 다 축구를 정말 좋아하기에 같이 영국여행 중이라고 했고 어제는 웸블리 스타디움을 투어 하고 왔다고 했다. 아, 그래. 나도 오후에는 웸블리에 가봐야 겠다. 

부부가 같이 축구를 즐기고 이렇게 여행 다니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고 한편으로는 정말 부러웠다. 나도 나중에 결혼하면 가족과 함께 축구여행을 다녀야지. 정말 아름다워 보이는 환상의 커플이다. 


“아 유 프롬 차이나?”


또 다시 마음에 상처를 받아버렸다. 도대체 왜 중국사람과 한국사람을 구분을 못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정말 중국사람처럼 생긴 것인가? 우리는 투어가 끝나고 쿨 하게 헤어졌다. 

 

위 아 프롬 차이나.


스템포드 브릿지 투어를 마치고 바로 웸블리로 향했다. 아무리 시간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웸블리는 반드시 가보아야 하는 곳이다. 잉글랜드 축구대표팀의 홈 구장으로 영국 축구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라 웸블리를 가지 않는다면 영국에 축구여행을 왔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 했다. 웸블리 역시 스타디움 투어가 운영 중이었고 운이 좋게도 별도 대기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하이, 나이스 투 미츄, 웸블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다들 어디서 오셨나요?”


젊은 남성 가이드가 우리를 웸블리 내부로 인도했고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되기 전에 각자 소개를 부탁했다. 


“위 아 프롬 차이나!”


가장 먼저 어떤 동양인이 중국에서 왔다며 손을 번쩍 들었다. 10명 남짓한 일행들이 다같이 단체로 중국에서 여행을 왔다고 했는데 딱 보아도 대륙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짧은 스포츠 머리에 우리 아버지가 쓰고 다닐 만한 올드한 선글라스를 끼고 하나같이 약간 물이 빠진 늘어난 남방을 입고 있었다. 나 역시 패션과는 거리가 먼 패션계의 무지렁이지만 대륙의 패션은 이런 나조차 감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위대해 보였다. 

중국 단체 관광객에 이어 옆에 있던 젊은 부부는 프랑스에서 왔다고 했고 또 다른 4인 가족은 독일에서 왔다고 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학생들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자, 이제 소개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웸블리 투어를 해보겠습니다. 따라오시죠.”


응? 뭐지? 저기요. 저 아직 소개 안 했는데요?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서 왔는지 소개를 시켜 놓고 나만 건너 뛰었다. 지금 뭐하자는 거지? 동양인이라고 차별하는 건가? 그럴리가. 아까 중국 단체 관광객은 소개를 했는데 왜 나만 빼는 거지? 

아···.  잠시 정신줄을 부여잡고 생각을 해보니 혹시 중국 단체 관광객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처음에 ‘위 아 프롬 차이나’에 내가 빨려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가이드는 모두 소개를 마쳤다고 생각 했던 것이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찝찝한 기분과 함께 손끝과 발끝에 소름이 쫙 돋았다. 손을 번쩍 들고 애국심과 자존심을 가득 담아 강력하게 항의를 하고 싶으나 영어로 조리있게 말할 자신도 없고, 이미 경기장 안으로 이동하는 중이었기에 용광로처럼 들끓어 오르는 분노를 속으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영국 축구의 성지고 나발이고 투어 시작부터 정신이 몽롱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울고 싶었다. 정말이지 낳아 주신 부모님과 조상님을 뵐 면목이 없었다.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옷을 입고 올 걸···.  아니면 ‘I Love Seoul’ 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왔어야 하나. 경기장을 투어 하는 내내 머릿속에는 ‘내가 왜 중국사람처럼 보였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단체 사진을 찍겠습니다. 저, 사진 좀 찍어 주세요.”


투어가 진행되던 와중에 단체로 온 중국 사람들이 가이드에게 단체 사진을 요청했다. 가이드는 카메라를 받아 들었고 중국 관광객들은 등산모임에 온 아버님들처럼 나란히 한 줄로 포즈를 취했다. 그 순간 나를 힐끗 쳐다보는 가이드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넌 왜 줄 안서냐?’라는 신호가 분명했다. 기회는 지금이었다.


“전 중국사람 아니에요!!! 아임 프롬 코리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는 나의 정체성을 세상에 알렸다. 가이드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서 온 다른 관광객까지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우렁차게 이야기했다. 나는 중국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마치 축구 동영상에 일시정지를 누른 듯 영국축구의 심장 웸블리 스타디움의 그라운드에는 몇 초간 정적이 감돌았고 모든 사람들은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오! 리얼리?”


씩씩거리며 이야기하는 나를 보고 살짝 놀라는 것을 보니 내가 중국 관광객이라고 오해했던 것이 확실했다. 그 순간 답답했던 나의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난 더 이상 중국 관광객들과 패키지가 아니다는 생각을 하니 그제서야 웸블리 스타디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 거대하고 웅장한 경기장과 최신식 시설 하나하나가 그제서야 위대해 보였다. 

웸블리 투어를 마치고 가이드는 나에게 ‘안녕히 가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해주었다. 그만큼 한국 관광객이 많이 온다는 뜻일까? 그러면 뭐하나. 한국사람, 중국사람 구분도 못하면서···.  그래도 그 인사 한마디에 기분은 조금 풀렸다.


어느덧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스타디움 투어라는 예상치 못한 매력에 빠져 버려 많은 곳을 둘러보지 못해 아쉬움이 너무 가득했다. 마지막으로 아스날의 홈구장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가서 공원을 산책하듯 경기장을 두 바퀴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 갔다. 숙소로 돌아 가며 이번 여행의 기억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았는데 즐거웠던 기억보다 아쉬운 점이 더욱 머리에 많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음에 또 영국에 온다면 두 가지를 꼭 준비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경기장 별로 정해져 있는 스타디움 투어 시간을 사전에 확인해서 모든 경기장을 다 둘러 볼 수 있도록 미리 계획을 꼼꼼히 세워야겠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한국사람처럼 보일 수 있도록 패션에 신경을 더 써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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