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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타 Oct 23. 2021

스포츠 도박은 모든 것을 잃게 만든다.

내기 축구의 위험함

돈보다 중요한 우리의 우정


모처럼 여름을 맞아 아내의 특별 허락을 받고 지리산 펜션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 학생때는 남녀가 섞여 아슬아슬한 감정을 서로 공유하는 MT가 그렇게 즐거웠지만 유부남이 되고 나서부터는 오직 남자들끼리 떠나는 여행이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남자들끼리의 여행에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저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 없고 눈치 볼 필요 없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유를 찾아 지리산까지 왔으니 시원한 계곡에서 수영을 하고 밤새 음주가무를 즐길 생각에 모두가 들떠 있었다. 


“우리 물놀이 하기 전에 축구 한판 어때?”

“좋지!”


시원한 계곡물에는 적당한 공놀이로 땀을 흘린 후 들어가기로 한 우리는 수영복 대신 축구공을 꺼냈다. 비록 운동장은 없어도 축구공만 있으면 어디서든 공은 찰 수 있다. 펜션 앞마당 양쪽 끝에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간이의자로 임시 골대를 만들어 우리만의 축구장을 완성했다. 골키퍼는 따로 없고 골라인은 펜션만 벗어나지 않으면 된다. 그러다 보니 골대 뒤에서 드리블을 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우리 재미 삼아 내기하는 건 어때?”

“좋지, 진 팀이 나중에 저녁 차리기!”

“콜!”


평화로운 공놀이가 진행되는 와중에 갑자기 내기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휴가철 친구들과 펜션에 여행을 따나 본 사람이라면 저녁 차리기가 얼마나 많은 노동이 필요한 것인지 잘 알 것이다. 패자는 경기가 끝난 후 8인분의 저녁을 준비해야 하고 승자는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소파에 누워 TV를 보면서 맛있는 저녁을 기다릴 수 있다. 모두에게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하는 충분한 동기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내기 축구를 몹시 지양한다. 저주받은 축구 실력으로 인하여 승리에 대한 환호보다 패배에 대한 아쉬움이 익숙하고, 그럴 때마다 같은 팀 동료들에게 미안해지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중요한 내기 시합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두려움이 밀려온다. 하지만 이미 엄청난 동기 부여에 열정이 충만한 친구들에게 하지 말자고 말을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다.


“슛! 슛!”

“패스! 패스! 마이 볼!”


저녁 준비를 하기 싫은 무리들의 목소리가 펜션을 넘어 지리산 계곡까지 울려 퍼졌다. 모두가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해 뛰었고 나 또한 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젖 먹던 힘을 짜내 뛰었다. 그렇게 전후반 10분씩의 시간이 거의 다 흘러 갈 때쯤 2대2로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팀의 공격수가 갑자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빙의하여 엄청난 개인기와 함께 모두를 따돌리고 극장골을 성공시켰다. 

정말 아쉬운 패배였다. 우리가 못해서 진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잘한 경기였다. 그 누구도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비록 저녁을 준비해야 하지만 나 때문에 패한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그걸로 만족했다. 승자는 환호를, 패자는 아쉬움을 삼켰다. 


“우리 만원 빵 한 게임 더 어때?”

“좋지!”


패배의 아쉬움과 저녁 준비를 해야 한다는 슬픔에 빠진 친구들이 이번에는 갑자기 돈 내기를 하자고 했다. 이대로 마무리하기에는 저녁에 소화가 되지 않을 것 같다면서 말이다. 처참하게 짓밟힌 것도 아니었고 정말 한 골 차이로 아쉽게 패해서인지 더욱 더 공을 놓을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친구끼리 돈 내기라니? 만약 나 때문에 진다면? 저녁 준비야 나 혼자 다 해도 상관없지만 돈 내기는 다른 문제다. 나는 완강하게 반대를 했지만 이미 축구공은 다시 펜션 앞마당을 향하고 있었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다시 3대0으로 완패했다. 저녁 준비에 돈도 만원씩 내야 했다. 첫 경기가 끝나고 아쉬움에 가득 차 있던 우리 팀 친구들의 얼굴에서 이제는 분노의 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여행의 즐거움과 설렘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2만원 빵 한 게임만 더 하자.”


점점 미쳐가기 시작했다. 이성은 이미 지리산 너머 골짜기 끝으로 사라져 버렸고 한 게임 더 해주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분위기였다. 나 또한 이대로 들어갈 수 없었다. 만약 2만원 내기를 해서 이긴다면 결과적으로 저녁 준비는 우리가 해야 하지만 만원을 벌 수 있었기 때문에 웃으면서 저녁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한 게임만 더 한다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의 정신과 육체를 점점 지배해 나갔다.


“우리 그만하고 물놀이 하러 가자.”

“그래, 돈은 안 받을 테니까 저녁만 차려.”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상할 대로 상해버린 우리의 자존심은 돈을 받지 않겠다는 친구들의 말에 한 번 더 짓밟힌 듯했다. 분위기를 감지한 친구들은 마지막 게임을 결국 수락하였고 이 게임의 결과와 상관없이 더 이상의 게임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 . 


그렇게 마지막 게임마저 패한 우리는 조용히 저녁을 준비하였다. 이성을 잃고 공놀이에 빠져 계곡까지 와서 물놀이도 전혀 하지 못했다. 패자들은 씻지도 못한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짐을 날랐다. 한여름날 마당에서 숯불을 붙이던 나의 얼굴에는 땀인지 눈물인지 구분이 않는 슬픔의 흔적들이 줄줄 흘러내렸다. 승리한 친구들은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TV를 보겠지. 나는 무엇을 위해 지리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 것인가? 슬프고 허탈했다. 


“너 고기 안 구워 봤냐? 삼겹살 그렇게 구우면 안돼. 이리 줘봐.”

“TV에 재밌는게 안 하네. 나 뭐 도와줄 것 없냐?”


잠시 후, 승리를 한 친구들이 눈치를 보며 자발적으로 하나둘씩 거들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못이기는 척 자연스럽게 다 같이 저녁을 준비하였고 모두가 하나되어 밤새 술을 마셨다. 오늘의 비이성적인 내기 축구는 새벽 늦게까지 우리의 안줏거리가 되었고 돈 내기의 무서움을 한 번 더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하마터면 돈보다 중요한 우정을 잃어버릴 뻔했다는 아름답고 뻔뻔스러운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면서 돈 내기는 없었던 것으로 우리의 뜻 깊은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건전한 취미 생활


“형, 이번 주 EPL 게임 중에 확실한 거 몇 개만 알려 주세요.”

“그게 무슨 소리야? 뭐가 확실해?”

“확실히 이길 것 같은 경기요. 스포츠 토토 하려고요.”

“너 불법 토토 하려는 거 아니냐? 나 그거 엄청 싫어 하는데.”

“아니에요. 합법적인 스포츠 토토입니다. 스포츠 토토는 건전한 오락이자 취미 생활이에요.”


지리산에서의 아픈 돈 내기 축구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친한 동생이 갑자기 안 하던 스포츠 토토를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사실 이런 질문은 익숙하다. 평소 운동을 잘 하지는 못해도 스포츠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보니 이처럼 지인들로부터 이번 주 경기 예상을 좀 해달라고 하는 문의가 자주 있다. 나는 이럴 때마다 꼭 합법인지 불법인지를 확인한다. 물론 내가 엄청난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베팅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혹시나 불법 토토를 위한 것이라면 처음부터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도박으로 인해 패가망신한 사람들을 수없이 보아 왔기에 그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길에 나의 손길을 조금이라도 닿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형은 그래도 주말마다 축구 챙겨 보시니까 잘 아실 거 아니에요.”

“야, 생각해 봐. ‘펠레의 저주’라고 알지? 축구 황제 펠레는 평생 축구만 했고 지금도 축구 보면서 분석하는 것이 직업인데도 그 사람이 이긴다고 하는 팀마다 지잖아. 축구 자주 본다고 맞출 수 있는 게 아니라니까.”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그럼 그냥 형 생각에 이길 것 같은 팀만 좀 알려줘 봐요. 돈 벌려고 하는게 아니라 그냥 재미로 하는 거니까 그냥 편하게 이야기 좀 해줘 봐요.”


사실 알려주기 싫은 것이 아니라 정말 몰라서 알려줄 수가 없었다. 내가 잘 알면 나도 스포츠 토토를 하겠지. 그리고 아무리 예상되는 경기가 있거나 응원하는 팀이 있어도 이렇게 베팅하겠다는 사람에게 함부로 나의 의견을 이야기해 줄 수 없다. 말로는 재미로 즐긴다지만 혹여나 나의 말만 믿고 돈을 잃게 되면 그건 누가 책임진다는 말인가? 

나 또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억지로 묻고 물어 주식 종목을 추천받고 매수했다가 날려 먹은 돈만 하더라도 차를 한 대 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마다 추천해 준 사람들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는 정보를 좀 알려 달라고 사정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나의 소중한 돈을 날려 먹는 원인을 제공한 나쁜 사람으로 전락할 수 있다. 비록 스포츠 토토가 주식과 같은 자산 증식의 투자 수단이 아니라 적은 금액으로 즐기는 건전한 오락일지 몰라도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재미로 하는 거면 그걸 왜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 니가 베팅 하고싶은 대로 하면 되지.”

“형, 그 말도 맞지만 이것도 정보력이 있어야 하지요.”

“아···. 귀찮아, 정말. 그렇다면···. 리버풀 경기가 좋겠군. 올 시즌 아직 무패 잖아.”

“어휴, 형. 그 정도는 지나가는 똥개도 아는 정보예요. 그런 거 말고 다른 사람들이 예상 못하는 정보가 필요해요.”


기껏 생각해서 말해줬더니 지나가는 똥개 취급을 하다니. 사실 리버풀은 위르겐 클롭 감독이 부임한 이후 리빌딩에 성공하여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지난 라운드까지 44경기 무패 행진을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현재 강등권에 있는 왓포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있었기에 당연히 이기는 경기라 생각해서 말해줬는데 축구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는 정보라는 것이다. 그만큼 리버풀이 잘나갔구나.


“나도 그 정도 정보밖에 없어. 니가 알아서 해.”

“아···. 진짜 섭섭하네요, 형.”

“그래, 많이 섭섭해라. 안녕.”


그렇게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갑자기 호기심이 들기 시작했다. 스포츠 토토를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모처럼 이번 주 어느 팀이 이길지 한번씩 곰곰이 생각을 해보고 나니 재미 삼아 내가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 재미로 오랜만에 한번 사보자. 이건 도박이 아니라 분석을 통해 베팅을 하는 재미나는 오락이야. 그렇게 예상되는 게임을 여럿 조합해서 거금 5만원을 들여 5장을 구매를 했다. 물론 확실시되는 리버풀의 경기는 모두 포함해서 구매했다. 


며칠 후, 아침 일찍 전화가 걸려 왔다.


“형, 어쩔 거예요! 리버풀이 졌어요. 다 망했어요.”

“엉?”


전날 과음으로 인해 새벽 2시에 열리는 경기를 보지 못하고 푹 잠든 사이에 강등권에 있던 왓포드가 44경기 무패 행진을 달라고 있던 리버풀을 3대0으로 완파하였다. 세상에. 정말 축구공은 둥글구나. 지나가던 똥개도 당연히 이길 것이라 생각했던 경기였기에 스포츠 토토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911테러와 맞먹는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형, 어쩔 거예요.”

“왜 나한테 그래? 지나가는 똥개도 아는 정보라며.”

“아, 세상에. 어쩜 이럴 수 있죠. 이 경기 때문에 모두 다 물거품이 되었어요.”

“근데 너 그냥 재미로 즐기는 거라면서 왜 이렇게 아침부터 난리 법석이냐? 건전한 취미 생활이라며?”

“그건 그렇지만···.”


건전한 취미 생활에 왜 이렇게 흥분하냐고 다그쳤지만 나 또한 이변의 충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의 베팅 내역을 확인하자 역시 모두 꽝이었다. 동생이 왜 흥분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경기 하나에 5만원 내고 베팅한 나조차 이렇게 멘붕에 빠지는 마당에 베팅 금액에 제한이 없다고 알려져 있는 불법 스포츠 도박판은 지금 얼마나 난리가 났을까. 이래서 도박은 무서운 것이다. 역시 스포츠 토토는 도박이 아닌 건전한 오락으로만 즐겨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내가 스포츠 토토를 사니 리버풀의 44경기 무패 행진이 깨지는구나. 정말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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