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스트레스로구나.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대학교 4학년 시절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졸업을 앞둔 취준생은 불확실한 미래와 취업의 압박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힘들고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나에게 곁에 있는 친구처럼 힘들고 지친 정신과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이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프리미어리거 박지성 이었다.
당시 함께 취업준비를 하던 친구들과 주말마다 다가오는 박지성 선수의 경기를 손꼽아 기다렸고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컴퓨터 모니터 앞에 모여 앉아 박지성 선수의 활약을 다시 보곤 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자격증 시험에 불합격하거나 큰 마음을 먹고 도전한 토익시험을 망쳤더라도 주말에 우리를 기다리던 박지성 선수를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었기에 우리는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이렇게 유럽축구에 대한 관심이 대중화되면서 우리는 맨유를 좋아하는 친구 그리고 첼시, 리버풀 아스날 등을 좋아하는 친구로 나뉘며 주말 새벽마다 자취방에 모여 앉아 박지성 선수의 경기를 포함한 유럽축구에 푹 빠져 사는 축덕들이 되었고 월화수목금토일 축구 이야기만 하면서 취업준비를 했다.
이처럼 스포츠를 통해 우리가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비단 그 시절 만의 일은 아니었다. 90년대 말 IMF 시절 대한민국 전체가 모두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때 우리 곁에는 박찬호 선수와 박세리 선수가 있었다. 내가 중학교 시절이었던 그 당시 박찬호 선수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수업을 하다 말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모두 애국심으로 하나되어 박찬호 선수의 활약에 취해 숨죽이며 경기를 지켜보았고 박찬호 선수는 정상급 활약을 통해 우리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 선수가 맨발 투혼으로 우승하는 모습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끓어오르는 애국심에 또 한번 불을 지피기 충분 하였다. 그 후로 축구공과 야구방망이만 들고 다니던 친구들이 골프채를 들고 다니며 골프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대한민국에 박세리 키즈라는 용어를 등장시켰다.
90년대 말 박찬호 선수와 박세리 선수가 지친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로해 주었다면 2000년대 중반 극심한 취업난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취준생을 비롯한 국민들을 위로해 준 것은 바로 대한민국의 박지성 선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곧이어 대한민국의 국민 여동생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며 수많은 오빠와 삼촌들의 가슴속 깊이 숨어있던 애국심에 불을 당겼고 대한민국 전역에 피겨 열풍을 불러왔다. 그 후 류현진 선수 손흥민 선수 등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세계무대에서 큰 활약을 하면서 우리는 그때 마다 애국심에 취해 대한민국을 자랑스러 했고 힘들고 지친 삶을 대신 위로 받으며 스포츠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자소서, 학점, 자격증, 토익 그리고 축구와 애국심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뜻밖의 소식이 하나 메일로 날라 왔다. 지원했던 회사 인사팀에서 보낸 메일이었는데 서류에 합격하였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것이 아닌가. 맙소사. 순간 잘못 본 것인 줄 알고 몇 번을 더 열어 보아도 분명히 서류가 통과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저희 회사의 인재상에 부합되지 않아 어쩌고 저쩌고.. “ 로 시작하는 메일만 주구장창 받아 왔기에 처음 받아 본 서류 합격 소식은 스스로를 감싸 안고 칭찬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 되었다.
부푼 꿈을 안고 인생의 면접을 보러 가던 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필기시험을 마치고 인성면접을 볼 차례가 다가왔다. 태어나서 처음 받는 면접이라 정신이 몽롱했지만 그건 대기실에서 얼떨떨 하게 앉아 있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로 보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들어간 인생의 첫 면접실은 차분하고 조용 했다. 면접관은 다섯 명 있고 함께 면접을 보는 지원자는 세 명 이였다. 면접관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이 몹시 진지 하였기에 긴장감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그리고 시작된 면접.. 각자 자기 소개를 하고 본인의 꿈을 이야기해 보라고 했는데 보통 대한민국의 취준생이라고 하면 자기소개, 미래의 꿈, 자신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입사 후 포부 정도는 취업준비를 하면서 달달 외우고 다녔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물어보든 토시하나 틀리지 않게 또박또박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렇게 사전에 준비했던 질문이 이어지자 성공적인 면접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 하나 이어졌다.
“스스로의 멘토가 누구인지 말해보고 왜 그렇게 생각 하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
멘토? 선생님? 누구를 이야기해야 하지?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충분히 미리 예상할 수 있었던 질문 이였지만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하고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질문이기에 몹시 당황했다. 다행히도 지원자 세 명 중 첫 순서가 아니었기에 첫번째 지원자가 말하는 동안 컨닝을 하기 귀에 귀를 기울였다.
“저의 멘토는 저의 아버지입니다. 평소 근엄하신 성격의 저의 아버지는 저에게 항상 많은 가르침을 주셨고 어쩌고 저쩌고 ..... “
교과서를 읽는 것처럼 술술 이야기를 잘 하는 것으로 보아서 분명 미리 준비했던 모범 답안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이렇게 술술 이야기를 잘 해야 할 텐데... 이런 걱정이 들려고 하는 순간 순식간에 순서가 다가왔다. 그리고 주위에 멘토가 될 만한 위대한 사람 한 명을 빨리 떠올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평소 존경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짧은 시간 동안 생각 했다. 그리고 무의식 중에 대답을 해버렸다.
" 저의 멘토는 조제 모리뉴 감독입니다."
" 그 사람이 누구죠?? "
“ 하.. 그것이… “
평소 위대하다고 생각 했던 사람을 떠올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대답이 당시 인터밀란을 이끌고 있던 조제 무리뉴 감독이였다. 멘토를 이야기 하라고 하니 나이가 어느정도 있어야 한다는 황당한 생각에 박지성 선수 같은 젊은 사람은 왠지 안될 것 같고 평소 존경하던 축구 감독이었던 무리뉴 감독이 순간 떠올랐던 것이다. 스페셜 원이라는 별명과 함께 본인만의 확실한 리더십으로 가는 곳 마다 큰 업적을 남기는 무리뉴 감독을 평소 존경하였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면접장에서 멘토를 묻는 질문에 무리뉴 감독의 이름이 불쑥 튀어나와 버리다니... 당시 FC 포루투를 유럽 정상에 올려 놓았을 뿐 아니라 첼시를 EPL최고의 자리에 올려 놓은 후 이탈리아 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그는 분명 나의 우상 이였지만 면접관들은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순간 면접장은 적막에 휩싸였다. 그리고 나와 나란히 앉아 있는 지원자들의 웃음을 참는 소리가 조금씩 들리는 것으로 봐서 그들은 무리뉴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 분위기를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지 순간 고민을 하다가 결국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편하게 축구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 평소 축구를 너무나 좋아했던 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축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방금 말씀드린 무리뉴 감독은 본인만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전세계 축구 팬들을 열광시킨 시대의 명장입니다. 저는 그에게 리더의 덕목은 무엇이며 본인이 추구하는 바를 어떻게 밀어붙여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회사에 입사하여 꼭 무리뉴 감독과 같은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
지금 생각해 보면 순간적인 위기를 잘 모면했다고 여겨 질 만큼 훌륭한 대답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당시 얼음과 같이 싸늘해진 면접장의 분위기를 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 했다. 무리뉴 감독이 누군지 모른다는 표정의 면접관과 면접 보러 와서 왠 축구 이야기를 하느냐 라는 황당한 표정의 면접관의 미소만이 그 분위기를 잘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나의 순서가 끝나고 다음 면접자의 답변이 이어졌다.
" 저의 멘토는 안철수 교수님 입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컴퓨터 백신을 만드신 그는 평소 나의 우상 이였으며… "
분명 다음 지원자도 준비를 해온 듯이 매끄럽게 답변을 해 나갔다. IT회사에 면접을 보러 온 사람 답게 그 분야에 성공한 사람을 예로 들어 모범 답안을 만들어 온 것처럼 보였다. 반면 당황한 나머지 지구 반대편에서 활약 중인 외국인 축구감독을 멘토로 삶고 있다고 대답한 지원자와는 얼마나 비교가 되었을까? 당시 10년 후 무리뉴 감독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프리미어리거 손흥민 선수의 감독이 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면접장의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을까?? 아.. 차라리 히딩크라고 대답 할 걸…
그리고 이어진 질문부터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사회 경험이 없었던 20대의 어린 나이에 굳은 표정의 면접관 앞에서 당황한 나머지 한번 흐트러져 버린 멘탈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질문이 이어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은 체 면접을 마쳤다.
면접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와서 같이 면접을 보았던 지원자들과 친구가 되어 버렸다. 그들은 나에게 무리뉴 감독이 자신의 멘토라는 답변이 처음에는 무척이나 황당하게 들렸으나 정말 기억에 남는 훌륭한 답변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또한 그에게 배운 리더쉽을 회사에서 발휘하고 싶었다는 나의 이야기에 너무 인상 깊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 인지 위로 하자고 하는 이야기 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고 나서 보니 많은 위로가 되는 걸 보면 그들의 말이 진지하게 들렸었나 보다. 그리고 지금 면접관 들도 이들과 같은 생각을 하며 나의 면접 점수를 다시 올려 주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황당한 기대심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면접을 모두 마치고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소주와 함께 회포를 풀었다. 그리고 나머지 친구들도 모두 축구 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축구이야기를 하였다. 이렇게 면접 대기실에서 처음 만난 우리는 낮에는 경쟁자였지만 저녁에는 축구로 하나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박지성 선수 이야기를 하며 애국심으로 다시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를 상대한 면접관 분들이 무리뉴 감독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사실에 다들 입을 모아 탄식을 했고 그들은 그날 저녁 우리의 안주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몇 일 후 우리는 모두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