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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디블라썸 Jul 06. 2021

무심하고도 다정한 우리 사이

담벼락 애옹이


뺨에 딱 좋아하는 온도의 공기가 살랑거리던 봄밤,

낯선 울음소리가 새벽잠을 깨웠다.    

       


“ 애-----옹  애-----옹 애------옹  ”


          

분명 그동안 들어왔던 길고양이 울음소리와는 확실히 달랐다. 날카롭게 들리다가도 이내 힘없이 약해지는 소리, 끊길 듯 말 듯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이상한 울음소리였다.           


휴대폰 플래시로 비추면서 창문 밖을 내려다보니 역시나 고양이의 반짝이는 눈이 보였다. 우리 집과 옆집 담벼락 사이에 자리 잡고 이 새벽에 왜 저렇게 구슬프게 울고 있는 걸까?


담벼락 높이가 애매했기 때문에 실수로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지 못하는 건지, 그냥 은신처로 선택한 것인지, 짝을 찾는 소리인지 사실 명확히 분하기 어려웠다.      



5년 전 주택으로 이사한 후 길고양이들을  자주 마주쳤지만, 사료나 물을 챙겨주거나 살뜰히 관심을 주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이 둘을 챙기고 재택근무를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빠듯한 내게 다른 생명체의 안위를 챙기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벅찬 것이었다.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절대 정을 붙이지 말자는 다짐을 늘 되새겼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처럼 종종 우리 집 담벼락이나, 마당 한편에 있는 동백나무 그늘 아래, 재활용 쓰레기를 쌓아둔 창고 옆 작은 공간에 귀여운 친구들이 불쑥 찾아오곤 했다. 사실 그때마다 너무 반갑고 예뻐서 마음속으로 혼자 행복한 비명을 질렀지만 애써 내 마음을 숨기고는 보고도 못 본 척, 하지만 절대 쫓아내거나 미워하지는 않는 방식으로 책임감 있는 좋은 이웃이 되려고 노력해 왔다.    

       



무관심한 듯 편안하게 공간을 내어주는 내가 싫지 않았던지 길고양이 친구들도 자주 우리 집 마당을 찾아주었다. 장마 때 창고 옆 공간에서 비를 오래 피한 후 감사의 표시로 새끼 쥐를 사냥해 물어다 주기도 하고 (제발 이러지 마...) 마당에서 낙엽을 쓸고 있는 내 뒤에서 나른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며 꽤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친구들이다.      







"애----옹  애----옹 "



의문의 울음소리는 잦아들었다가 아침이 되어서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엌 창문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휙휙 앞발을 휘저으며 남편과 내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마치 여기 좀 봐달라는 것처럼 말이다.    


  

’ 지금 내 친구가 곤란한 상황이야 인간!! 여기 좀 보라고. ‘ 이런 느낌이었을까?



고양이는 도도하고 차가운 친구들이라 생각했는데, 위험에 빠진 친구를 위해 인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에 새삼 놀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애옹거리며 우는 친구는 단순히 그곳이 좋아서 머무는 게 아니라 못 나가고 있는 게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동물 구조대, 구청, 길고양이 관련 단체에 부지런히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지만, 주택가에 사는 건강한 길고양이를 구조하는 일은 자신들의 업무가 아니라고 했다. 도움이 될까 싶어 담벼락 사진을 찍어 전송했지만, 이 정도 높이는 가뿐히 뛰어넘을 거라고, 못 나오는 게 아니라 안 나오는 거 같으니 걱정하지 마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일반화하는 건 아니지 않나. 인간군상도 수없이 다양한데, 고양이도 그렇수 있지. '라는 생각이 스쳤다. 운동신경이 상대적으로 둔할 수도 있고, 유난히 겁이 많은 고양이도 있을 수 있는 건데...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르자 이젠 그냥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경계심 가득한 눈빛의 애옹이

고양이가 자리 잡은 통로는 마당 쪽 창고의 작은 구멍과 이어진다. 먹이로 나오게 유인해서 창고 문을 통해 나가게 하는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어떤 식으로든 먼저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 애옹아-”라고 다정하게 불러보았다. 울음소리를 그대로 따서 애옹이라는 이름을  지어놓고 보니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그 와중에 웃음이 났다.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작은 친구는 창고로 이어지는 구멍 입구에 먹이를 살포시 내려놓고 아무리 기다려봐도 경계를 절대 풀지 않았다. 고양이 동상이라도 된 듯 꿈쩍도 하지 않다가 1시간 이상 기다려서 겨우 창고 밖으로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내 발소리에 놀라 다시 제자리로 후다닥 들어가면서 작전은 허무하게 실패했다.     

 


설상가상 비까지 내리기 시작하니 마음이 더 급해졌다. 퇴근한 남편과 함께 대안을 생각하다가 스티로폼 상자들을 테이프로 연결해 계단을 만들었다.  계단을 스스로 밟고 올라가 담벼락 위로 잘 탈출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응원의 마음을 담아 창문을 통해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놓고,     



“ 애옹아- 먹이 놔둔 거 든든히 먹고 계단 잘 밟고 오늘 밤엔 꼭 잘 나가야 해! 너 고양이잖아 할 수 있어! 파이팅!! ”


 인사를 건네고 아이들과 손도 흔들어 주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애옹이가 머물던 자리부터 살폈는데 다행히도 계단을 잘 활용해 탈출한 모양이었다. 혹시 몰라 꽉꽉 채워뒀던 먹이통과 물을 담아뒀던 통도 싹싹 비어 있었다.      


뿌듯함과 왠지 모를 허전함이 함께 하는 기분이었다. 그저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애옹이는 어떤 보은을 계획하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의식의 흐름에 우리 부부는 서로를 마주 보고 한참 웃었다.     



“ 저번 그 친구처럼 새끼 쥐 같은 거 말고 로또 번호 같은 거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아 그치 ? ”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이후로 애옹이는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


오늘은 자주 마당에 놀러 오는 다른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부탁해 봐야겠다.


“ 은혜를 어떻게 갚을 건지 모르지만 너무 고민하지 말고 그전에 한 번 놀러 오라고 해 ”라고 말이다.



장마가 오기 전에 창고 옆에 우연히 박스도 떨어 트려 놓고, 무심하게 툭- 폭신한 뽁뽁이도 던져 놔야겠다.

작은 이웃들이 절대 내 호의를 눈치채지 못한 채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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