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 자체로 소중한 이유는 갑자기 오는 합격 때문이다
2024년 10월의 마지막 날, 브런치에 합격했다.
"축하드립니다"
처음에는 잘못 읽은 줄 알았다.
'내가, 브런치를 합격했다고?'
솔직히 합격을 기대하고 지원하지 않았다. 글을 정말 잘 쓰시는 분들도 몇 번 떨어졌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기왕 탈락할 거면, 빨리 몇 번 해보고 감을 찾자는 마음에서 일단 질러본 거였는데. 1수 만에 브런치에 합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사실 내가 이렇게 놀란 것은, 내 인생에 합격이라는 게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 합격이라는 단어는 아직도 낯설다. 살면서 나는 불합격과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 순간이 더 많다.
몇 개 예시를 들자면, 학창 시절은 늘 불합격의 연속이었다. 늘 영어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국제중에도, 외고에도 떨어졌다. 커다란 안경을 쓰고 숱 많은 검정 머리에, 영어를 좋아하니 그래도 어느 정도 공부를 잘할 것 같은 느낌을 풍기지만 생각보다 3등급이 많은 성적표는 '반전'이었다.
아, 여기의 정점은 대학 입시다. 자,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4수해본 사람 있나? (있다면 반갑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취업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경쟁률이 높은 곳을 피하기 위해 내 목표에 대한 합리화를 시도한 적도 많다. 처음으로 합격시켜 준 곳에 바로 덥석,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출근하겠다고 했고.
아무리 불합격의 결과가 익숙해도, 불합격을 확인한 다음의 느낌은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다. 마음이 아주 조금이라도 베이기 마련이다. 이 상처를 덜 받기 위해, 나는 늘 불합격을 디폴트값으로 놓았다. 그래서, 나는 합격과 늘 어색한 사이다. 친해지고 싶지만 너무 예뻐서 내가 다가가기 어려운 같은 반 친구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어쩌다가 그 친구가 먼저 다가와주면 어버버거리게 된다. 당황스럽다. "네가 왜? 나 같은 애랑?" 그러면 그 친구가 말한다. "나 항상 너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때 내가 느끼는 건 기쁨이 아니라 일종의 안도감이다.
'그래? 너도 나와 같았어?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다.'
갑자기 찾아온 합격은 나에게 안도감을 준다.
내가 그 자체로 나쁘지 않다는.
이런 종류의 '합격'이 살면서 몇 차례 있었다. 그런 종류의 합격 중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의 첫 번째 합격은 바로 초등학교 6학년 때, 영어 학원에서 주최한 영어 에세이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것이다. 사실 대회에 제출하는 에세이인줄도 모르고 냈었다. 그야말로 얼떨결에 받은 이 상은 내 인생의 첫 '대상'이었다.
'대상'. 전국 단위의 대회가 아니어도, 대상이라는 단어는 뭔가 내가 마땅히 잘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때 문화상품권으로 받은 7만 원을 어디다 썼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무척이나 소중했다.
그 이후 다른 글쓰기 대회에서도 '대상'을 운 좋게 타본 적이 (딱 한 번 더) 있다. 물론 금액도 7만 원보다 몇 배로 컸다. 그렇지만 아직도 내게 저 7만 원만큼 소중한 돈은 없다. 7억을 준다고 할지라도.
내가 기억하는 또 다른 합격은, 4수라는 고생 끝에 들어간 대학교에서 맞이한 첫 학기에 수석 장학생이 된 것이었다.
사실 수석을 한 것은 1학년의 첫 학기라, 많은 학생들에게 노는 것도 중요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와 잘 맞는 영문학과여서인 것 같기도. 나는 학과를 선택할 때 딱 1초 고민했다. 아니, 그 1초는 사실 고민한 시간이 아니라 클릭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영문학은 원래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오래전부터 속해 있었다.
이렇게 나에게 맞는 옷을 처음으로 입은 기분이어서, 대학 시절은 하루하루가 편안했다. 더 이상 수능이라는 맞지 않는 옷에 온몸을 구겨 넣지 않아도 되었다. 나에게도 편안하고 남들이 보기에도 '착붙'인 옷이라고 여겨지는 '테일러드 수트'를 입은 기분.
그리고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나는 6년 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금요일을 맞이했다.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기간에 들어가기 바로 전 주의 금요일이었다. 금주의 모든 수업이 끝나고 대강당을 나오자 노을을 맞이했다. 비교적 평소보다 조용한 학교, 잔재만 아스라이 남아있는 봄바람. 이 날, 노을이 아름다운 빛깔을 준비한 채 강의실에서 곧 나올 학생들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애인이 예고 없이 꽃을 준비하듯, 깜짝 서프라이즈처럼. 과 수석 역시 그런 서프라이즈 같았다.
이 두 기억이, 내 인생에 몇 안 되는, 갑자기 찾아온 합격들이다.
모두가 글을 쓰는 이유는 제각기 다를 것이다. 영화 리뷰를 쓰는 사람은 영화에 대한 자기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서, 에세이를 쓰는 사람은 일상의 편린 속 잽싸게 캡쳐한 아름다움 혹은 깨달음을 나누고 싶어서.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 두 가지다.
1. 내가 살아가는 데에 유용했던 것들을 진심을 담아 소개하기 위해 (주로 콘텐츠 큐레이션의 형태를 띠고)
2.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솔직히 말하자면, 후자의 이유가 조금 더 크다. 만약 첫 번째 이유가 더 컸더라면, 나는 네이버 블로그로도 만족했을지 모른다.
불합격의 기분은 내가 이 세상에 완전히 혼자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반면 합격은 앞서 말한 것처럼, 가까워지고 싶은 친구가 나의 존재를 눈치챈 느낌이다. 특히 갑자기 찾아온 합격은 더욱. 내가 아등바등, 애쓰지 않아도 사람들이 온전히 내 존재를 인식하는 느낌.
영화 <마틸다>의 주인공 마틸다에게는 독서 행위가 그런 존재였다.
So Matilda's strong young mind continued to grow, nurtured by the voices of all those authors who had sent their books out into the world like ships on the sea.
These books gave Matilda a hopeful and comforting message:
“You are not alone.”
글쓰기는 대상, 심사 통과와 상관없이 늘 내 인생에 합격을 주고, 나를 눈치채준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글쓰기는 기대하지 않았을 때, 어쩌면 나도 나를 저버렸을 때 찾아오는 '존재로서의 합격' 같은 존재다. 솔직한 글을 썼을 때 돌아오는 작은 '환호'. 그 속에서 나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낀다.
인정욕구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이다. 그저, 글쓰기는 나의 존재가 '썩 괜찮다'는 느낌을 준다.
합격의 안도감을 준, 그로 인해 환호의 창구를 하나 더 열어 준 브런치 팀 감사합니다.
(그리고 심사 통과라는, '찐 합격'을 주셔서도!)
*
브런치 1수 합격자가 생각하는 브런치 노하우
= 기획력
1. 특이한 자기소개 & 소재
2. 진솔한 글
내 생각엔 이 중 1번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브런치는 출판시장과도 큰 연관이 있는 플랫폼인 만큼 기획력이 글쓰기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아니, 더 중요한 수준이 아니라 모든 것이라고 느낀다.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스토리. (내가 봐도 나의 자기소개와 소재는 정말 특이하긴 했다.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구독 후 확인해 보시길! 하하하)
그리고 2번의 경우, 1번과 관련되는 것이 중요하다. 나 역시 지원할 때 내가 앞으로 연재할 소재와 관련된 블로그 글 링크들을 첨부했었다.
+) 처음의 나처럼 브런치에 당연히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 절대 그렇지 않다-!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 오리지널리티를 표현할 수 있다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
그리고 브런치에 지원하는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고민할 수 있다. 나 역시 이 방향으로 갈까, 저 방향으로 갈까 고민하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보다는, 나만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나만의 오리지널 경험에 맞춰서 지원하게 되었다. 따라서 결과에 관계없이 브런치 지원 과정 또한 나에게 도움이 되는 브랜딩 과정이니 꼭 지원을 해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