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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빈 Dec 05. 2024

영화 마틸다 : 영웅의 해피엔딩은 나약해지는 것이다

마틸다가 가르쳐주는 self-love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결말을 가진 영화가 있다. 늘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해왔던 어린 아이가, 드디어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 처음으로 제 나이처럼 행복해한다. 


영화 <마틸다> (1996) 는 요즘 많은 사람들도 알고 있는 '내면아이'의 치유를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무엇보다, 단순한 치유로 끝나지 않고 내면아이가 드디어 제대로 크기 시작하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마틸다는 로알드 달의 동화가 원작으로, 책도 무척이나 사랑스럽지만 영화의 매력도 만만치 않다. 초능력을 가진 천재 소녀 마틸다가 멍청한 어른들로부터 자신과 친구들을 지켜내는 유쾌한 복수극.


책이 좀 더 복수극 쪽에 초점을 맞추어 블랙코미디적인 매력이 있다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져 캐릭터별 서사가 더 잘 보이고, 특히 마틸다의 '영웅적 서사'가 잘 드러난다. 마틸다는 자기 자신을 넘어, 자신처럼 상처받는 이들까지도 구하기 때문이다.



마틸다가 무찌른 빌런 1 : 외로움


영웅에겐 빌런이 있기 마련이다.


마틸다가 인생에서 만난 첫번째 빌런은 '외로움'이다. 마틸다는 아동학대, 그 중에서도 정서적 학대에 시달린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마틸다를 오히려 문제아 취급하는 마틸다의 부모는, 아이들은 말을 듣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며 독립적 사고를 억압한다. 

마틸다는 엄청난 외로움을 느끼지만, 그 외로움을 곧 '고독'으로 수용한다. 마틸다는 자신이 가족과 다르다는 것을 담담하게 인정하고 수용하며, 가족을 바꾸려 하지도 않고 자신을 가족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자기수용의 자세와 함께 마틸다는 자신만의 '리추얼'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깨우친다.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이건 '대부분의 30대에 들어가기 시작한 어른들도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마틸다의 리추얼은 다음과 같다. 아침마다 요리를 직접 해서 신선한 꽃을 꽂은 꽃병 앞에서 먹고, 좋아하는 책을 읽기 위해 직접 걸어서 도서관에 간다. 그리고 수레에 책을 한가득 담아와 집에서도 책을 마음껏 읽는다. (아, 그리고 자신만의 시그니처 패션 스타일을 창조하기도 한다.)


마틸다가 고독에서 행한 리추얼은 마틸다를 외로움 속에서 질서를 세우고 통제감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이 자기 효능감을 키우는 리추얼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하며 마틸다는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간다. 


리추얼과 함께 마틸다를 외로움 속에서 구해준 건 바로 책이다. 마틸다는 책 속 이야기와 상상력을 통해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고 굳게 믿는다. 일종의 비블리오테라피(bibliotherapy)인 셈이다. 시네마 테라피처럼, 자신의 경험을 책 속 등장인물과 동일시함으로써 정서적 치유를 경험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책 속 인물들과 연결하며 재구성하는 것. 마틸다가 외로움과 맞서 싸운 방법이다.



마틸다가 무찌른 빌런 2 : 가스라이팅


이렇게 마틸다는 일찍이 정서적 독립을 통해 자기 자신의 부모가 된다. 내가 어릴 때 필요한 어른이 되어주는 것, 나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렇게 스스로를 양육해가며, 내면의 힘을 기르던 마틸다가 두 번째로 만나는 빌런은 '가스라이팅'이다.


마틸다는 마침내 그토록 고대하던 학교에 등교하지만, 첫 날부터 트런치불 교장의 폭력적인 언행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의 자존감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모욕감을 느낀다. 그리고 여리고 유약하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름다운 미스 허니 선생님 역시 트런치불이 조장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틸다의 내면의 힘은 곧 초능력으로 발현되어, 유쾌한 반란과 복수극을 벌이는데 성공의 열쇠가 되어준다. 그렇지만 마틸다는 단순히 초능력 덕분에 트런치불에게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틸다가 트런치불에게 맞설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잊지 않는 '자기 존중'의 자세다. 그간 부모로부터 자신을 지킨 덕분인지, 마틸다는 뛰어난 자기존중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 마틸다는 외부의 목소리와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잊지 않는다. 자기존중은 나를 무시하는 상황에서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목소리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큰 힘이 된다.


그럼에도 트런치불의 가스라이팅은 개인의 힘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거대한 권위'로 작동한다. 그래서 마틸다는 외로움을 극복했듯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믿으며 실제로 '연대'하기 시작한다. 마틸다는 희망과 용기를 주변에 확산시킨다. 주눅들어 있던 허니 선생님과 친구들은 마틸다를 보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결국 마틸다의 진정한 초능력은 단순히 물건을 자유자재로 옮기는 염력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사랑과 연대를 확산시키며 나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을 구해내는 힘인 셈이다. 

마틸다는 외로움과 가스라이팅으로부터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과 같았던 친구들을 구해내며 트런치불과의 접전 끝에 승리한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해피엔딩


마틸다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허니 선생님과 함께 살게 된다.


마틸다는 뮤지컬로도 만들어진 작품인데, 뮤지컬에서 마틸다를 연기했던 임하윤 배우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에 마틸다는 초능력이 없어졌을 것 같다고. 


"엄청 당당하고, 어른스럽고, 그런 마틸다인데 마음 깊숙한 곳에는 누구보다도 아이스럽고 여릴 것 같아요. 아마 마틸다는 평범한 아이처럼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길 원할 것 같은데 허니 선생과 같이 가족이 되잖아요. 사랑을 듬뿍 받아서 초능력이 없어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임하윤 배우는 마틸다가 "원래부터 용기가 많이 있는 아이는 아닌 것 같다"고도 말했다. 


맞다. 원래부터 용감하고, 원래부터 어른스러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늘 담담해보이는 마틸다는 내심 친구를 바라며 우는 어린 아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생겨난 초능력을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것. 즉, 늘 강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 내가 완벽하려 애쓰지 않아도 편안한 것. 그게 진정한 해피엔딩일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독립을 의미한다. 이는 곧 거친 세상에서 나를 지켜야 한다는 뜻이며 이 과정에서 외로움이 동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가족과 집을 찾아 헤맨다. 여기서만큼은 어른이 아닌, 어리고 나약한 나로 있어도 되는 곳. 


영화 <마틸다>는 초능력을 가진 천재 소녀가 멍청한 어른들에게 복수를 하는 유쾌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결국 원치 않게 일찍 어른이 된 외로운 소녀가 자신의 집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마틸다는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행복한 결말을 가진 영화다. 혼자인 줄 알았던 아이가 드디어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처음으로 아이다운 웃음을 짓는 것.

마틸다와 미스 허니는 똑같이 가족에게서 상처받은 경험이 있다. 용기내어 스스로를 보여주며 함께 내면의 트라우마를 퇴치하는데 성공하고, 서로에게서 비로소 안정적인 애착을 경험하며 진정한 사랑을 배운다. 그리고 서로의 내면아이를 돌봐주며, 진정한 의미에서 그 아이를 '성숙'시킨다.


마틸다는 어떻게 스스로의 영웅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만의 리추얼을 통해 성장하며, 결국 스스로를 외로움과 가스라이팅으로부터 구하고, 나 뿐만 아니라 타인의 내면아이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영화 마틸다에서 배우는 나의 내면아이를 치유하는 법


첫번째는 고독 속에서 리추얼을 만드는 것.

내면의 힘을 길러주는 기본 리추얼을 만든다.


두번째는 가스라이팅으로부터 나를 지킬 것.

나를 작아지게 만들고 나를 무시하는 수많은 '트런치불'들에 속지 않고 그 무엇보다 나를 존중한다.


세번째는 (가장 중요) 외로움을 믿지 않는 것.

나와 같은 사람들을 찾을 것이라고 믿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과 만나 연대하고, 나를 온전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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