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로수발러 Mar 18. 2024

나는 가난한 K장녀입니다

(1)출생편

 나는 k장녀다. 여동생이 있고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남동생이 있다. 90년대 생이라면 공감할 아들을 낳기 위해 낳은 딸들, 그리고 제일 좋다는 형제 비율. 


 나는 장녀가 싫다. 사회생활이든 어떤 조직에 들어가도 늘, “첫째 같아요“라는 말을 듣곤 했다.

책임감이 가득하고, 앞장서서 하고 상대방을 챙기는 모습이 내 성향이고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이 싫다. 또 한편으로 부끄럽다. 도대체 나의 삶은 얼마나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모든 면에서 이렇게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지.


 물론 여유로운 부모님 아래 풍족한 지원과 많은 사랑을 받았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가난한 집의 성숙하지 못한 부모밑에서 자라 실질적인 가장이였다.

항상 엄마가 없으면 "너가 엄마야, 가장이야"라는 말을 듣고 자랐고, 실제로 동생들의 잘못으로 내가 혼낸적도 많았다. 또한 가난한 부모들의 특징으로, 나로 인해, 우리 세 명의 출생으로 인해 항상 돈이 필요했었고 우리들은 부모들의 돈 주머니였다.(사실 학원 한번 제대로 보내 준 적 없었다.)


 요새야, 그런 부모들의 교육방식이 잘못이고, 일종의 심리적 폭력이라고 가르치지만 90년대인 나때만 해도 대부분 그렇게 자랐다. 그래서인지, 나의 삶은 늘 불안감과 긴장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우연히 좋은 기회로 좋은 학교에 들어갔지만 나는 그때부터 빈부격차를 느꼈다. 항상 내 집은 작고 붐볐고, 누군가를 데려오지 못했다. 친구의 집은 큰 아파트에 멀쩡한 자기 방이 있으며, 늘 넉넉했다. 그 아이의 걱정과 나의 걱정은 농도가 달랐다.

그 걱정의 농도가 지금도, 다르다. 친구는 늘 탄탄대로였다. 대학을 잘 가지 못해도, 늘 풍족한 용돈으로 여유로운 취준생활과 결혼을 준비했고, 나는 늘 조금더 돈을 벌기 위해서 그리고 이 책임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지금도 친한 친구들 중에는 여유로운 K-장녀들도 많다. 항상 삶은 즐거우며, 본인의 취향을 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취향을 지금도 모른다. 기껏해야 내가 초콜릿을 좋아하고 커피를 좋아한다 정도이지, 그 이상의 취향과 취미는 사절이다. 취미 또한 돈이 드는 일이였다. 내가 브런치의 처음 입문한 비서 이야기 조차, 내가 비서라는 일을 선택했던 것은 생계의 문제였다. 그 이상의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간혹 인터넷을 보다 보면, 나와 같은 K-장녀 특히 가난한 생계형 장녀들이 많은 것 같아 이 글을 적고 싶어졌다. 


이렇게 나의 노력과 수많은 고민들이 현재에도 이어진다. 여전히 부모님은 아들을 찾고, 따로 사는 아들은 간혹 연락만 해도 치킨 한마리만 시켜줘도 세상 효자가 된다. 반면 나는 집안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신경써도 당연한 것이 된다.

모 연예인이 성공한 후에 어머니를 데리고 해외 여행을 갔는데, "아들과 함께 오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원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쉽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 그 상처는 매우 오래가는 법이다. 


나 말고도 정말 열심히 사는 장녀들은 많을 것이다. 혹은 차녀이더라도 이러한 차별을 겪으면 자란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어린시절을 반추해보면서 k장녀의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덧붙이자면 30살이 넘은 지금 나는 이제야, 나 혼자서의 삶을 살아보고자 한다. 

작가의 이전글 왜 꼭 다 내잘못으로 느껴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