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근무 오 개월째.
이제 이쯤 하면 루틴도 몸에 배고 나 다음으로 입사한 생활지도원이 하나둘 늘어났다.
겨우 5개월에 나 다음 입사한 사람이 벌써 3명.
그러니 내가 할 일을 알아서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 온 동료들에게도 잘하는 척 일도 알려주고,
어르신들한테 유들유들하게 말도 하고 스스로가 제법 나 괜찮은데? 생각을 할 무렵
새로 들어오신 78세 알츠하이머병 여자 어르신.
현재의 장기요양 등급으로 따진다면 1등급 정도의 중증 치매를 앓고 계셨는데
ADL(activities of daily living 일상생활동작 : 식사, 배설, 목욕, 옷 갈아입기, 보행 등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동작을 말한다.) 중 실행되는 것이 거의 없었다.
단 하나 보행 빼고는.
어르신은 일어나서부터 해가 질 때까지 요양원 복도 끝에서 끝으로 계속 걸으셨다.
어느 날은 천천히 산책하듯, 어느 날은 아주 빠른 걸음으로
마치 어르신 머릿속 혼란이 걸음으로 나타나듯이 걸으셨다.
그러면서 직원이나 다른 어르신이 옆을 지나가면
“문디 자슥!”하며 인상을 찌푸리시고 다시 걸어 다니시는 것이 어르신의 하루 일과였다.
정말 매일 걸어 다니셨다. 최대한 어르신을 많이 재워 드려야 했다. 그래서 매일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커튼을 빨리 치고 늦게 걷고. 밥 먹고 간식 드시는 시간 외에는 계속 걸으셨다 사실 간식도 식사도 겨우 직원들이 앉히고 잡숫게 해야 드셨지, 식사도 사실 생각이 없으시고 그냥 마냥 걸으시기만 했다.
그러니 어르신의 기저귀는 항상 축 처진 상태였다.
오롯한 직원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게 문제였다.
어르신 기저귀 가는 일.
의사소통되지 않아도 갈아입을 옷을 드리면(물론 벗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림) 입는데 협조를 하시고, 식사, 간식을 드리면 드시기라도 하는데
축 처진 기저귀를 갈기 위해 생활복 바지를 내리면 어르신이 협조가 안되는 거다.
발버둥 치시면서 날아오는 주먹과 발길질! 이런 어르신이 너무나도 이해가 가지만(나 같아도 누가 바지를 내리면 너무 싫을 것 같으니) 기저귀 갈아야 하니까. 항상 2인 혹은 3인으로 어르신 기저귀를 갈러 갔다.
어르신은 항상 걸어 다니시니 어르신 방 앞쯤 오면 두 명이서 어르신 팔짱을 달랑 끼고 들어와서 문을 닫고 순식간에 바지와 기저귀를 교체해야 한다.
어르신 기분이 더 상하기 전에, 내가 맞기 전에!!
그날은 새로 들어온 직원에게 어르신 기저귀 가는 법을 알려주던 참이었다.
“쌤 이 어르신은 빨리 해 드려야 어르신도 우리도 스트레스를 덜 받아요, 자 이렇게 해서 얼른 이렇게..”
하는 순간 눈에서 별이 반짝
발에 얼굴을 차이고 안경이 날아갔다.
주절주절 말하는 사이 피하는 것을 잊고 정통으로 맞은 것이다.
“쌤.... 이렇게 하면 이렇게 맞아요.”
“나처럼 말하면서 말고 얼른 신속히 해야 해요.”
하면서 머쓱했다. 얼굴이 아팠는데 부끄러워 아픈지도 모르겠다가 부러진 안경을 보니 다시 아파 왔다.
어르신은 일어나서 방을 나가시려 문을 잡으시려는데 신규 직원과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기저귀를 입혀드리고 바지도 입혀드렸다.
그래도 다시 걸어 다니시는 어르신.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복도로 나가서 다시 걸으신다.
사실 기분이 나쁜데 또 축 처져있는 기저귀가 아니라
가벼워 보이는 바지 모양새가 또 기분을 좋게 한다. 뭔가 뿌듯한 마음이 든다.
나 비록 맞긴 하였으나 그녀에게 보송함을 주었다.
그 누가 이렇게 하겠느냐 나라서 했다
정말 잘했다 나르시시즘을 팍팍 느끼며 돌돌만 기저귀를 버리러 가는데,
어르신이 복도 끝에서 웬일로 창밖을 가만히 보고 계신다.
“어르신 기저귀 갈고닦으시니 찝찝한 게 없어졌죠? 시원하시죠?”
하면서 넉살 좋게 한번 웃어본다.
그러니 가만히 나를 쳐다보시며
“문.디.자.슥!”
이라 한 말씀하시고 반대편 복도로 향하신다.
나도 모르는 내 입가의 미소가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다시 또 힘내서 웃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