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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Nov 21. 2022

어쩌다 스웨덴 05

스웨덴 예테보리 여행



그리고 다시 돌아온 예테보리 미술관. 무거웠던 패딩과 가방, 목도리와 모자는 카운터에서 받은 코인을 이용하여 사물함에 넣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육체적 가벼움. 카메라 가방만 메고 홀가분한 걸음으로 전시장으로의 계단을 올랐다.



올라가는 계단의 중간에도 작품 설명이 있길래 슬쩍 봤다가 깜짝 놀랐다. 예테보리 미술관의 포문을 South Korea의 Sunny Lee 님께서 열어주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건 무려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도착한 이래로 한동안 보지 못했던 고향과 관련한 첫 무언가이기도 했다. 찾아보니 정작 작품 사진은 남기지 않았던 듯싶지만. 아무튼, 이곳에서 마주한 첫 번째 작품은 알파벳의 나열들만으로 어떤 감정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알게 해줬다. 여기서 느꼈던 건 안도감이었다.




전시를 보기 시작했던 섹션. 아름다움에 한참 동안 눈과 발을 떼지 못했다. 작품을 바탕으로 재현해 낸 전시관은 그 당시의 시공 속으로 나를 초대해주었다.



한 벽면에 이렇게 많은 그림들이 얼기설기 걸려 있는 게 신기해서 한 장. 공간의 효율을 위한 건지 배치에 의도가 있던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The Radio Dept.의 <Domestic Scene>이 떠오르던 설명.



여정 중에 향하게 될 키루나를 막연하게 상상하며 본 노르딕 아트. 백야와 오로라는 20세기에도 사람들에게 멜랑꼴리한 감정들을 안겨주었던 듯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다 다르면서도 다 같은 것 같다.



어두운 조명과 흐르는 음악에 압도당했던 방. 긴 의자에 한참을 홀로 앉아 있었다. 동영상으로도 남겨와봤다. 어쩐지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공간 같지 않은지?




거대한 체스판 같던 조각 홀. 자세히 보면 조각들도 정확히 한 칸씩을 차지하고 있다. 둘러보는 중에 네모칸 안에 들어갈 때면, 어쩐지 나도 체스 말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없었지만, 당시 스스로를 룩 정도로 여겼다.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서 그랬나.



북유럽의 오후. 그 사이 밖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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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층에서부터 내려오다보니 스스로의 현 위치 파악을 할 수가 없었다. 이어지는 계단들을 따라 이런저런 상설 및 특별 전시들을 보다 보니 도착해 있는 곳은 본관 옆에 있는 핫셀블라드 센터(Hasselblad Center) 안. 예테보리 미술관보다 먼저 염두해두었던 곳이기도 했다.




사진작가의 최고 영예로 여겨진다는 Hasselblad Award전을 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2019 수상자가 모리야마 다이도라는 일본 작가였다. 전시를 보고 있는 이들에겐 이질적인 동양인의 사진이었겠지만, 멀리서 날아온 나에게는 오히려 가까운 이의 일상 같았다. 물론 인물과 장소가. 사진에 담긴 관능과 퇴폐는 한참 멀었고.



HASSELBLAD and the MOON. 핫셀블라드 센터에 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곳에 있었으니, 스웨덴 브랜드인 핫셀블라드는 NASA와 함께 우주여행을 다니는 카메라이고, 센터에서는 핫셀블라드가 함께한 달까지의 걸음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닐 암스트롱과 아폴로 11호를 타서는 달 표면에 남겨진 발자국을 찍어온 카메라가 바로 핫셀블라드 사의 것이라는 거다.





NASA와 핫셀블라드의 왕성한 교류를 보여주던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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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나 또한 미술관을 나서기에 앞서 기념품 샵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플래너 타이틀이 DO IT LATER! (무려 느낌표까지!) 라니. Non-Planner일 수도 있다며 남겨준 여지마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하다 사온 달 착륙 50주년 기념 패치 세트. 다른 것보다도 경위도가 적힌 50주년 기념 엽서가 너무나도 갖고 싶었더란다. 패치 대신 스티커가 들어있는 세트도 있었는데 그건 300SEK를 넘겼었던 걸로 기억한다. 금전적 타협이 남겨준 패치와 엽서. 다시 보니 더욱이 잘 샀다는 생각이. 달 착륙 50주년과 스웨덴 예테보리에서의 머묾은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교차할 수 없을 테니까. 누군가에겐 종이 한 장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 실제 대량 인쇄의 현장에서는 그랬겠지만 - 나에게는 많은 게 담긴 증명서로 남았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는 상설 전시된 미술전을 봤던 경험이 거의 없었을 뿐더러, 이 정도의 양과 시간이 남겨져 있기도 어려웠다. 우리가 비중 있게 배웠던 건 서양미술사였고, 그런 나는 이곳에 와서야 놀랄 수 있었고 알아볼 수 있었는데. 세계가 이렇게 흘러왔던 건지, 역사가 이렇게 쓰여왔던 건지, 이것들이 한자리에 모이기까지는 어떤 과정들이 있었던 건지, 한 켠에선 몇몇 개의 질문들이 뒤엉켰다. 그럼에도 얕은 지식이 알아보는 작가와 작품은 계속해서 반가웠고, 다른 미술관들은 얼마나 더 다양한 것들이 있을까 궁금해했으며, 무엇보다 그림이라는 것이 담고 있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에 끊임없이 감탄하며 시간을 보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들여다보고 관련해서 찾아보는 것, 종종 사진을 남기는 것밖에 없었기에, 이곳에 내가 찍은 작품들을 몇(십) 장 올려본다. (아래로 사진이 많을 것이란 뜻이다.)



작정하고 들린 건 아니었던 미술관에서 마주쳐서 너무나도 신기했던 작품들이었다. 뭉크, 고흐, 모네, 렘브란트, 세잔, 로댕, 르누아르와 피카소까지,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알아볼 수 있던 낯익은 작품과 그림체는 미술 교과서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막연히 '언젠가를 살았던 사람이겠지,' 싶었던 이들의 숨결이 내게 닿는 듯한 그 느낌. 유적지에 가면 종종 느끼곤 했던 그 기분을 미술관의 그림과 조각으로 느끼는 건 사실상 처음이었던 까닭에 더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듯싶다. 여러 작품들 중 하나씩을 골라서 올린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 작품들은 북유럽을 보고 그린 그림들이다. 화풍 자체의 특징일 수도 있겠지만, 부드럽게 담긴 자연의 싱그러움과 신비로움은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게끔 했었다.



낯선 땅에 3일째 있는 이의 심경이 반영된 끌림들. 첫 번째 그림은 예테보리에 머무는 동안 가장 인상깊었던 파란 버스 (및 트램) 가 반가워서, 두 번째 그림은 같은 항구 도시로서 색 입힌 도형들로 나타낸 항구가 감각적이어서 찍었었다. 세 번째부터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방황과 불안정이 담겨 있다. 그때도 유난히 눈이 가는 작품들마다 저런 제목이 달려 있어 웃었었는데, 지금 보니 더 그렇다. 특히나 여행 초반이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아마도 마지막 작품이 가장 비슷하지 않았을까. 방랑하기와 벗어나기 사이.



찍어놓고 싶었던 것들. 첫 번째에서 세 번째 작품은 본 작품과 관련한 사진과 조각 등을 옆에 배치해놓음으로써 현실감을 한층 더 부여해주었다. 세 번째 그림은 규모와 내용 모두가 압도적이었는데, 북유럽의 전쟁 중의 스웨덴의 패배와 칼 12세의 죽음이 그려진 것이다. 실제로 칼 12세가 저런 식으로 노르웨이에서부터 들려 돌아온 건 아니라고 하나, 전사한 국왕이 들것 위에 묘사됨으로써 주는 짙은 패배감이 있는 듯하다. 아, 스웨덴에는 여전히 국왕이 있다. 현재는 칼 16세 구스타프가 재위 중이라고 한다. 여섯 번째 작품은 실제 예테보리 미술관에 있었던 오래된 파일, 상자, 서랍 등으로 채운 작품이라고 한다. 시간을 담아왔던 것들을 모음으로써 또 시간을 담아내는 흥미로운 작품. 더 이상 이 물건들에 아카이빙되는 자료들은 없지만, 그랬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언가가 다시 아카이빙된다.



특별전의 형태로 진행되는 것 같아 보였던 곳에서 찍은 두 장. 그림만 찍어온 탓에 작가와 작품명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졌지만,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평온해지는 작품들이 한가득이었던 곳이다.





이렇게 세 시간 가까이를 미술관에서 보내고 나오니 하늘은 한층 더 어두워져 있었다.





대신 도시의 불빛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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