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터부시 되어야 했던 이야기들
18살 이후로 내 감정을 꺼내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 누구도 나의 가장 가까운 이로 두지 않을 것이며 마음속 이야기는 혼자만 간직하리라.
속상했던 것, 아팠던 것을 입 밖으로 꺼낸다고 해서 위로받을 수 있는 가정 분위기도 아니었을뿐더러 완전한 나의 편은 없었다. 한 때 친했던 아빠에게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는 순진함도 있었지만, 그다음 날 엄마가 나를 조롱했다. 나는 영영 집 안에서 입을 닫았다.
감수성 예민할 고등학교 시기에 나는 학교에서 '왕따'였다. 그 당시 말로 '은따'였다. 작은 싸움에서 시작되었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미숙하게 맺어온 우정은 허무하리만치 사라졌다.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최근 누군가 내게 물었다. '밥은 어떻게 먹었어?'. 그 날의 기억들이 다시 물밀듯이 찾아왔다. 나는 급식을 신청하지 않았다. 넓은 급식실에서 도저히 혼자 먹을 용기가 없었으며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 아이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빵 또는 매점에서 사 온 음식으로 점심은 대체되었다.
급식실에 가서 혼자 깨작거릴 바에야 '밥도 안 먹고 공부하는 애'라는 유난스러운 별명을 택하기로 했다.
어느 날 교무실 청소를 하는데 다른 친구가 말을 걸었다. '넌 왜 쓰레기통 안 비워? 앞으로는 네가 다 비워.'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원래 맡았던 바닥 청소는 이 짧은 대화에서 논외였다. 그 날 무언가가 임계치를 넘은 기분이 들었다. 학교가 끝나고 만난 엄마에게 울분을 토했다. 너무 속상하다고. 내가 가장 약할 때 나를 짓밟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싶지 않다고. 돌아온 대답은 충격이었다. '난 네가 이렇게 감정에 휘둘려 나대는 게 더 보기 싫어.'
앞으로는 정 반대로 살고 싶다. 단지 새로운 해를 맞이해서가 아니다. 나를 위해서, 다시는 다가오는 소중한 사람들을 밀어내지 않기 위해서 연습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