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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일 Jun 19. 2024

까마귀, 그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깨다

다쳐서 날지 못하는 새끼 주변에서 몇 시간째 울고 있는 어미들

어려서부터 왠지 까마귀는 '나쁜 새'고, 까치는 '좋은 새'라고 여겨왔던 것 같다. 물론 누가 직접적으로 가르쳐 준 것은 아니었다. 그냥 막연한 생각이었다. 단지 까치가 울면 ‘손님이 찾아온다’라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기분이 좋았던 것 같고 까마귀는 온통 검정에 부리부리하게 생긴 것 자체가 까치보다는 귀엽지 않고 무섭게 생겼다는 어려서의 생각이 굳어진 듯 싶다. 내가 생각해 온 까마귀와 까치의 구분은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어제 오후 지금까지의 확고했던 생각이 바뀌는 일이 일어났다. 40년도 넘게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까마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풀리는 사건(?)이었다.


어제 여의도는 업무차 갔었다. 여의도 공원 앞 건널목에 같이 근무하는 직원 서너 명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어 무슨 일인가 싶어 가봤다. 그곳에는 꽤 큰 까마귀가 바닥에 있었다. 날지를 못하는 듯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도 가만히 있었다. 어딘가 다친 게 분명해 보였다.


그 까마귀를 보고서야 알았다.

다친 까마귀 새끼

몇 시간 전부터 주변에서 까마귀가 계속 울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늘 듣던 생활 소음이라고 생각하고 주의 깊게 듣지 않았을 뿐이었다. 다친 까마귀는 울지도 못하고 있었고 하늘과 나무에 앉은 까마귀들이 계속 울고 있었다.


“아니 웬 까마귀예요?”라고 동료에게 물었다.


“한 시간 전에도 여기서 봤는데 아직 그대로 있어서 종이컵에 물 좀 가져왔어요. 먹을까 했더니 안 먹네요”


“와, 근데 이렇게 가까이서 까마귀를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생각보다 안 무섭게 생겼네요. 오히려 이 녀석은 귀여운데요”


“근처 어디에선가 이 녀석 때문에 가족들이 계속 울고 있는 거 같아요. 처음에는 주변에서 뭘 보고 저렇게 까마귀가 우나 했는데 이 녀석 때문이었더라고요”


어미 까마귀가 새끼 까마귀쪽을 보고 계속 울고 있다.

“진짜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잘 보면 한 마리는 저 은행나무 위에서 이쪽을 바라보면서 울고 있고 한 마리는 계속 이 주위를 빙빙 돌면서 울고 있어요. 한 시간도 넘었어요. 아마 가족인 거 같은데 이걸 어떻게 하죠?”


“서울시 120번 연락해서 야생 조류가 길가에 있다고 신고하고 인계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라고 동료에게 말을 건네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30여 분이 지나 그 동료를 다시 만났습니다. “120번에 신고는 하셨어요?”, “네, 했는데 아직 오지 않네요”


“저도 그럼 한 번 더 전화할게요.”라고 말한 뒤 민원전화 120번과 통화 후 영등포구청 푸른 도시과(2670-3773)를 안내받아 직접 통화를 했다.



서울시에는 별도의 ‘서울야생동물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전화번호 02-880-8659로 전화하면 해당 구청을 연계하고 있다. 구조가 필요한 개체 발생 시에는 원칙적으로 구청별 관리부서에서 현장에 직접 출동하고 있다. 이후에 구조된 야생동물을 센터에 인계하고 있었다. 맹금, 맹수, 고라니 성체, 독사 등 위험한 개체이거나 전문적인 구조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센터에서 현장으로 직접 출동도 하고 있으니 알아두면 좋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안녕하세요. 영등포구청 푸른도시과입니다. 조금 전 야생동물 관련 신고하셨죠. 제가 지금 현장에 도착해서 까마귀를 확인했습니다”라는 연락이었다.


급하게 현장으로 가봤다. 그곳까지 가는 동안 하늘에서의 까마귀 우는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다친 까마귀 근처에는 사람들이 꽤 모여 있었고 그걸 본 어미 까마귀들이 더욱 크게 울었던 것 같았다. 현장에 도착해 전화한 영등포구청 직원을 만났다.


“제가 전화 받은 사람인데요. 죄송합니다. 바쁘신데. 그런데 다친 까마귀를 동물병원에 인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송구하지만, 연락을 드렸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라고 양해를 구했다.


“아닙니다. 잘하셨어요. 보니까 이 녀석이 새끼가 맞네요. 그리고 저기 우는 새가 어미 새가 맞을 겁니다. 까마귀들이 모성애가 엄청나게 강하더라고요”


“이렇게 큰데 이 녀석이 새끼라고요?”라고 물었다.


“네. 까마귀가 다 크면 몸길이가 50센티미터 정도 되고 날개 길이도 40센티미터 정도 되니까요”라고 말하며 까마귀를 새장에 넣었다. 그리고 그 까마귀는 관내 지정 동물병원에 인계된다고 말하고 그 직원은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다.


서울시야생동물센터를 통해 도착한 영등포구청 푸른도시과 직원

그 뒤로도 10분 넘게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 하늘을 빙빙 돌면서 우는 까마귀가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아니 진짜 너무 슬프게 우는 거 아냐? 내가 새끼를 보낸 게 잘한 건가’ 싶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까마귀는 흉물스러운 야생동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모성애가 강하다니. 대단하단 생각이었다.


사실 이웃 나라에서는 까마귀가 엄청 길조(복되고 좋은 일이 있을 조짐)로 통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유사에 까마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까마귀는 예언하는 새로 여겨졌다고 한다. 아랍인들도 이와 비슷하게 믿는다고 한다. ‘예언의 아버지’라 부르며 오른쪽으로 나는 것을 길조, 왼쪽으로 나는 것을 흉조로 믿는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막연하게 ‘나쁜 새, 뭔가 불길한 기운이 있는 새, 사람이 죽은 곳에 올 것 같은 새, 가까이하지 말아야 하는 새’로 그냥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잘못된 것이었다.


가끔 잘 알아보지도 않고 막연한 선입견으로 남을 판단하고 배척할 때가 많지 않았나 싶다. 사실 세상을 살다 보면 의외로 생각과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이 틀릴 때가 참 많다. 그걸 왜 항상 이럴 때만 아는 걸까 싶다. 오늘도 반성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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