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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ccos Jan 14. 2021

유럽 축구 직관기 (2)스페인 바르셀로나

축구의 신을 만나다.

런던에서의 여정을 마친 뒤 친구와 나는 1월 16일, 바르셀로나 행 비행기에 올랐다. 늦은 저녁 비행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런데도 세계에서 가장 큰 축구 전용 경기장인 캄 노우를 직접 본다는 설렘에, 또 그 경기장을 누빌 리오넬 메시를 볼 생각에 전혀 지루하거나 피곤하지 않았다. 약 두 시간 정도의 비행 끝에 자정이 가까울 무렵, 바르셀로나의 엘 프라트(El-Prat) 공항에 도착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시간도 늦고, 몸도 지쳐 큰마음 먹고 우버 택시를 이용했다. 다행히 숙소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역시 게스트 하우스였다.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한 뒤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나오자 아래층 로비가 시끌벅적했다. 바로 잠자리에 들기는 아쉬워 친구와 내려가 보니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샹그리아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비슷한 나이대의 친구들인 것 같아 친구와 나도 슬쩍 자리에 앉아 자기소개를 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역시 BTS와 엑소 이야기를 꺼내더라. 내심 뿌듯한 마음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신나게 이야기했다. 이 겨울에 바르셀로나에는 무슨 일로 왔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축구와 리오넬 메시를 보러 왔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는 “한국인들 정말 유럽 축구를 좋아하더라. 영국이랑 이탈리아에서 축구를 보러 온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봤다.”고 이야기 했다. 확실히 유럽까지 축구를 보러 오는 게 팬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듯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우리는 다음 날 일정을 위해 잠을 청했다.


바르셀로나와 레가네스의 경기는 1월 20일에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기저기 둘러볼 여유가 좀 있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일찍 눈을 뜬 친구와 나는 산책도 하고 아침도 먹을 겸 침대에서 빠져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유명한 라 보케리아 시장이 있었는데, 돼지의 다리 고기를 소금에 절여 건조한 하몬과 빵, 과일들을 주로 팔았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하몬을 먹어보기로 했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하몬은 굉장히 짰다. 특유의 비릿한 향도 느껴졌다. 결국 많이 먹지는 못했다. 뒤늦게 찾아보니 술안주로 조금씩 먹거나, 빵 사이에 끼워 스페인식 샌드위치인 ‘보카디요’로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시장 안에 있는 빵집을 찾았다. 바게트 사이에 두툼한 햄을 끼워주는 기본적인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바르셀로나 특유의 활기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한참 걸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식감이 기가 막혔다. 빵은 바삭했고, 햄은 어금니에 씹히는 걸 저항하는 듯 아주 탱글탱글했다.

 

보케리아 시장에서 먹은 기본에 충실한 샌드위치. 맛은 기가 막혔다. [촬영 iphone xs]

1월 17일부터 19일까지 우리는 바르셀로나의 유명 볼거리를 모두 찾아다녔는데, ‘바르셀로나가 사랑하는 두 남자’ 중 한 명인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른 아침 일어나 반나절 동안 구엘 공원을 둘러보았고, 1882년부터 현재까지 공사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바르셀로나의 중심가에 위치한 카사 밀라 등 태어나서 본 적 없는 독특하고도 웅장한 건물들을 차례로 만나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물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었다. 어찌나 높고 거대한지 길 건너편에서조차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카메라 앵글에 담을 수 없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안토니오 가우디의 사망 100주기인 2026년 완공 예정이었으나, 최근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완공 연도가 연기되었다고 한다.


한참 동안 대성당의 웅장함에 취해있었기 때문일까. 슬슬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말라왔다. 앞서 언급한 카사 밀라로 이동했는데, 다행히 1층에서는 커피와 음식, 맥주를 판매하는 카페가 영업 중이었다. 시원하게 맥주 한 잔을 홀짝이며 유명한 먹거리에 대해 찾아보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19일까지 우리는 약 3일간 콜럼버스 기념탑, 바르셀로네타 해변, 카탈루냐 미술관 등 유명 관광지를 직접 걸어 방문하며 알찬 시간을 보냈다.

카사 밀라에서 목을 축인 에스트렐라 담 맥주와 바르셀로네타 해변[촬영 iphone xs]

바르셀로나가 사랑하는 두 남자 중 다른 한 명, 메시를 만나다.

1월 20일 매치 데이에는 밀린 피로를 해소하기 위해 오전 늦게까지 잠을 청했다. 정오가 되어서야 일어난 우리는, 근처 케밥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곧바로 캄 노우를 향해 떠났다. 경기는 오후 늦은 시간 잡혀 있었지만, 경기장에 조금 일찍 도착해 메가스토어도 둘러보고, 경기장 이곳저곳에서 사진도 찍을 생각에 메시 유니폼을 챙겨 입고 부랴부랴 출발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마주한 캄 노우는 웸블리에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했다. 벽에 커다랗게 그려진 메시와 수아레스, 피케가 우리를 반겼다. 경기장 입구에서 기념 촬영을 마친 우리는 빠르게 메가스토어로 이동했다. 1층 통로를 통해 들어간 메가스토어의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다. 지하부터 시작해서 지상 2층까지, 총 세 층이었다. 여성 전용 유니폼과 바르셀로나의 농구팀, 핸드볼팀의 용품도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역시 메인은 축구 아니겠는가. 어마어마한 양의 제품들이 화려하게 나열되어 있었고, 나는 눈이 돌아가고 말았다.     


트레이닝복 상의 한 벌과 10번이 마킹 된 축구 바지 한 벌을 큰마음 먹고 구매한 뒤 메가스토에서 빠져나오자 어느새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이었다. 저녁을 먹어야 했기에 경기장과 메가스토어 사이에 있는 패스트 푸드점에 들어가 햄버거 하나씩과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맥주는 큰 거로 드릴까요, 작은 거로 드릴까요?” 하는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이 큰 맥주로 주문했고, 점원이 말했던 ‘큰’ 맥주는 500ml가 아닌, 1리터 정도 되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맥주였다. 식당 바깥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신나게 맥주를 마시던 우리는, 우연히 만난 한국인 신혼부부와 테이블을 함께 쓰기로 했고, 남편분과 축구 이야기를 하며 선발 라인업이 공개되기를 기다렸다.

정말로 혼자 먹기 벅찼던 바르셀로나 생맥주. 한 손으로 들고 먹기도 힘들어서 두 손으로 마셨다. [촬영 iphone xs]

세상에나. 메시는 벤치에서 시작했다. 1월 10일 코파 델 레이 16강 레반테전을 시작으로 13일 에이바르전, 17일 레반테와의 2차전을 치렀다. 23일에는 세비야와의 코파 델 레이 8강 원정 경기를 앞둔 빡빡한 일정이 이어졌다. 때문에 발베르데 감독은 비교적 쉽게 풀어갈 수 있는 이번 레가네스전에서 메시에게 휴식을 부여한 것이다.


킥 오프 시간이 임박해왔고, 우리는 신혼부부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경기장에 입장했다. 경기가 시작하고 다소 답답한 경기가 이어졌다. 전반 32분경, 우스만 뎀벨레의 구석을 찌르는 슈팅이 골로 연결되어 1-0으로 전반전을 마쳤지만, 후반 57분, 지금은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마틴 브레이스웨이트에게 동점 골을 헌납했다. 도무지 공격을 풀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경기장에 모인 5만여 명의 관중들은 벤치를 향해 ‘메시’를 외치기 시작했다. 모두가 신에게 경배하는 듯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정말 열심히 메시를 외쳤다. 이를 의식한 것인지, 본인도 답답했던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은 64분, 카를레스 알레냐를 빼고 메시를 투입했다. 길어야 30분 정도였지만 눈앞에서 메시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등장만으로도 관중을 이토록 흥분시킬 수 있는 선수가 과연 몇이나 될까.  

2층 자리에서 내려다 본 피치의 모습 [촬영 iphone xs]

투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메시는 강력한 중거리 슛을 날렸고, 골키퍼의 선방에 튀어나온 공을 수아레스가 재차 밀어 넣으며 2-1 리드를 가져왔다. 메시가 투입되고 7분만에 나온 득점이었다. 답답했던 경기가 풀리기 시작했다. 후반 종료 직전, 조르디 알바와 원투패스를 주고받은 메시는 왼쪽 측면에서 오른발로 득점하며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경기장에 모인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번 신에게 경배했다.

알바와 원투 패스를 주고 받은 메시, 그대로 득점에 성공한다.

비록 메시가 풀 타임을 소화하지는 않았지만, 메시의 위대함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60분 내내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레가네스의 흐름에 끌려다니던 바르셀로나를 투입 된 지 10분이 채 되기 전에 능숙한 조율과 지휘로 완벽히 바꿔 놓았다.


박문성 해설 위원을 만났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여태 직접 본 선수 중 단연 최고는 베르나베우에서 본 지네딘 지단이었다. 지단이 공을 잡으면 흰색 유니폼을 입은 최고의 공격수들이 전방으로 쇄도했고, 지단의 발에서 출발한 공은 이내 뛰어 들어간 선수 중 한 명의 발 앞에 정확히 떨어졌다. 충격적이었다.” 내가 본 메시도 비슷했다. 메시가 공을 받으면 레가네스의 수비수들은 메시에게 일제히 달려들었고, 덕분에 바르셀로나 공격진은 수비수를 따돌릴 수 있었다. 메시가 엄청난 드리블로 압박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들면, 곧 동료들을 향해 패스가 쭉쭉 들어갔다. 그야말로 축구의 신 같았다.


캄 노우에서 엄청난 하루를 보낸 나와 친구는 경기장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오후 11시쯤 되었을까. 숙소 근처에서 내린 우리는 15분 정도 더 걸어야 했다. 사람도 별로 없어 무섭게 느껴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오늘 보고 느낀 경기가 꿈은 아닌지, 사진은 잘 찍혔는지 확인하며 수다를 떠느라 무서운지도 모르고 걸었다. 다음 날 저녁에는 파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밤에 인사를 건네며 한국에서부터 조심 조심 가져온 소주 한잔 기울이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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