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박 Mar 23. 2024

죽음을 잃어버린 자들

「최후의 라이오니」김초엽 

인간이 죽지 않는 불멸의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인류의 오랜 염원인 볼로장생의 시대가 도래하면 인간은 행복해질까?

SF작가 김초엽의 「최후의 라이오니」는 이런 상상에 과학지식을 엮어 만든 단편소설이다. 먼 미래 우주에서는 유전공학의 발달로 ‘불멸인’을 복제 배양할 수 있게 된다. 놀라운 기술력은 자의식이 있는 기계의 발명도 가능하게 한다. 그 기계는 우연한 기회에 죽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나는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다. 당신은 어떤 삶을 선택하고 싶은가? 죽음을 모르는 불멸의 인간과 죽음을 알고 공포를 느끼는 기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말이다. 당연히 전자인가? 인간이면 누구나 아프거나 죽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하니까. 그런데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죽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죽음에는 고통만 있는가? 「최후의 라이오니」는 그런 고민을 담고 있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주인공 ‘나’는 로몬족이다. 로몬족은 멸망한 행성에 가서 생명 찌꺼기(생의 온기가 남은 자원)를 회수하도록 배양된 인류족이다. 회수된 것들은 다른 행성 유기체의 생명유지를 위해 쓰인다. 로몬족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복제된 종족인데, 유독 ‘나’는 죽음의 공포가 크다. 시스템 오류로 탄생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그런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나’는 멸망 행성인 3420ED로 단독 탐사를 떠난다. 인류가 멸망한 그곳에서 ‘나’는 자의식이 있는 기계들의 우두머리 ‘셀’을 만난다. 셀은 ‘나’를 ‘라이오니’라고 부른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라이오니.”     


3420ED는 한때 매우 번성했던 인공 거주구였다. 그곳의 인간들은 ‘불멸인’이라 불렸다. 과학의 발달로 죽지 않는 방법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기계에 자의식을 넣는 것도 성공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술을 외부와 공유하지 않았다. 자신의 행성을 다른 별들로부터 고립시켰고 자신들만의 기술로 번영했다. 어느 날 자의식을 복제하는 과정에서 불멸인들이 사망하는 감염병이 발생했다. 죽음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던 불멸인들에게 팬데믹의 공포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폭력이 난무했다. 그때 라이오니는 죽음 직전의 셀을 구하고 셀은 광란의 폭동으로부터 라이오니를 지켰다.     

 

혼자 남은 인류 라이오니는 그곳을 탈출했고 떠날 수 없었던 기계들은 남았다. 그때 라이오니는 셀에게 약속했었다. “셀, 꼭 다시 돌아올게”

‘나’는 왜 셀이 자신을 라이오니라 부르는지 계속 생각하다 문득 깨달았다. ‘나’가 배양된 복제 원본이 라이오니였다는 것을. ‘나’는 기계수명이 다해 죽어가는 셀에게 달려갔다. 

“셀, 미안해. 내가 너무 늦게 돌아왔지. 이제는 너를 떠나지 않을게.”

‘나’의 품 안에서 셀이 죽었다. 셀은 거주구의 오퍼레이터였기 때문에 셀의 죽음은 행성의 소멸을 의미했다. 죽음의 공포를 아는, 자의식을 가진 남은 기계들은 ‘나’에게 자신의 전원을 꺼 줄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3420ED는 사라졌다.     


절망과 파괴로 어두운 기운만 가득한 행성에서 기계 셀이 간절하게 기다린 것이 무엇이었을까. 많은 시간이 지나가버렸기에 인간 라이오니는 이미 죽고 없을 거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셀은 자의식이 강한 기계였다. 삶의 온전한 기쁨이었던 라이오니를 사랑했고 그 기억은 지옥 같은 행성의 시간을 버티게 해 준 것이다. 셀에겐 라이오니의 약속이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해 준 신념이었다. ‘나’가 그것을 깨닫고 셀에게 달려갔을 때, 셀의 손을 잡고 위로와 사과를 건넸을 때, 셀의 마지막 기억은 고통이 아니라 구원이 되었다.        

 

최후의 라이오니가 건넨 말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위로였다. 소멸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위로였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이상 결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구원이 되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나의 선택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기계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의 죽음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위로를 건넬 수 있다면 그게 기계인들 어떠랴. 그런 기계의 세상이 훨씬 따뜻할 것이라 기대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독립적 의존, 의존적 독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