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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박 Apr 04. 2024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습니다   

『인간을 넘어서』 나카무라 유지로. 우에노 치즈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때까지 살고 싶습니다> 정희진/한겨레 칼럼



참으로 신박한 정희진의 칼럼 제목은 서간집 『인간을 넘어서』로부터 왔다. 60세의 남성 철학자 나카무라 유지로와 40세의 여성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가 ‘늙음’이라는 주제로 주고받은 편지형태의 글이다.    

   

책에는 치매 관련 소설 『황홀한 사람』을 쓴 아리요시 사와코 인터뷰 내용이 나온다. 인터뷰어가 질문한다.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치매노인의 생활을 그토록 사실적으로 그리셨는데, 선생님은 치매가 되어서까지 살고 싶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리요시 사와코가 답한다.

“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될지라도 나는 오래 살고 싶습니다. 태어났을 때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의 귀찮은 존재가 되어서 살아왔던 것처럼, 죽을 때도 대소변도 가리지 못해서 타인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어 죽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리요시 사와코는 10여 년간 치매 노인 가정을 방문하고 인터뷰한 여성이다. 단순한 자기 감상에 빠져 노인 치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치매는 ‘자신이 스스로 처리할 수 없게’되는 것이므로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하겠다’ 따위의 선택의 여지가 있을 리 없다. 우에노 치즈코가 인터뷰를 인용하면서 감동했던 것은 자신의 무력함과 의존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태도에 대해서였다.     

 

서간집의 배경은 1989년 경이다. 이 시기의 일본은 노령인구가 증가하면서 ‘늙음’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 같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고령사회로서의 준비가 안 되어있는 국가 비판, 늙음과 죽음에 대한 사유 등 많은 토론이 이루어진다. 서간집도 한 잡지의 ‘늙음’에 대한 기획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우에노 치즈코에게 좀 더 감정이 이입되어 읽었다. 치매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입장 차이에서 더 그렇게 되었다.      


나카무라 유지로는, 타자의 치매는 나 자신의 문제로 말하기 어렵고, 나 자신의 치매는 어찌할 도리가 없으므로 그저 발병하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다. 그는 또한 노인치매를 카오스의 발현이라고 자신의 철학관을 피력했는데 내게는 공허하게 들렸다. 뭔가 중요한 게 빠져있다. 치매의 삶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고 대응하는 사회적 시도가 필요하다. 노인 혐오의 가장 재앙적 형태로 인식되는 벽에 똥칠은 치매 당사자나 주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에노 치즈코는 ‘노인’을 한 가지 색깔 범주로 보지 말라고 한다(예컨대 ‘귀여운 할머니’,‘사랑받는 노인’). 노인(치매)은 00 하다는 식의 평균으로 환원시키는 일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노후란 그때까지의 생활역사의 총체이기 때문에 색깔의 범주로 바라보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억압적이라고 한다. 그녀는 말한다. ‘강함’에 대한 근대 패러다임은 허구이다. 늙음이라는 수동성, 심신의 쇠약을 긍정하면 나 자신과 타인의 의존과 무력함에 관대해질 수 있다.      


초고령 사회 진입이 코앞인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다고 누군가 부르짖는다면 어떤 취급을 받을까. 그게 오래 살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그 정도의 취약함도 바라볼 수 있다는 긍정의 표현이라면 받아들여질까. 언론은 노인 인구가 많아져서 큰일이라는 협박만 하고 대안은 제시하지 않는다. 공포와 혐오가 뒤따라온다. 우리는 지금 수동성(늙음)의 수용이 가져올 관대함이 필요하다. 취약함에 대한 긍정이 혐오를 확실히 줄여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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