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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박 Apr 07. 2024

리듬 속의 그 춤을

2023년 댄스가수유랑단을 보고 썼던 글입니다



리듬 속의 그 춤을


아름다운 불빛에

신비한 너의 눈은

잃지 않는 매력에

마음을 뺏긴 다오

리듬을 춰줘요

리듬을 춰줘요

멋이 넘쳐 흘러요

멈추지 말아 줘요

리듬 속의 그 춤을


결혼 초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TV에서 유명 가수들의 공연을 보고 있었다. 꽤 커다란 규모의 야외 특설무대였다. 김완선도 출연해서 춤추며 노래했다.

김완선의 무대가 끝나고, 다음 순서로 나온 여가수가 신나는 노래를 불렀다. 어떤 가수였는지 무슨 노래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녀를 비추던 카메라가 갑자기 다른 곳을 비췄다. 무대 아래쪽 후미진 곳이었다. 김완선이 그곳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무대에 있는 여가수의 노래에 맞춰 미친 듯이 열정적으로 추고 있었다. 자신의 춤에 완전히 몰입해 있는 무아지경의 모습이었다. 춤 선이 멋들어진, 기가 막히게 잘 추는 춤이었다. 카메라 감독도 신기해서 그 장면을 비춘 듯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이 여자는 진짜구나(요즘말로 찐이다). 최고다. 당시 내가 알고 있던 김완선은 섹시함과 백치미로 치장한, 각종 가십으로 소비되는 유명인이었다.

이 장면이 도장이 찍히듯 내 마음에 박히면서 그녀를 보는 내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순수하달까, 지극함이랄까, 자신한테 진심인 어떤 모습을 본 것 같았다. 한 인간으로서의 그녀가 궁금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되었지만.


요즘 다시 김완선이 내 마음에 훅 들어왔다. 한 연예 프로그램에서 유명 댄스 가수들이 김완선의 집을 방문했다. 이효리, 엄정화, 보아, 화사 이 4명의 가수들이 그녀의 집에 갔다. 김완선의 집에는 그녀가 그린 대형 그림들이 걸려 있었는데 그중 프리다 칼로*를 그린 것도 있었다. 프리다 칼로가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는, 상반신을 그린 그림이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었다. 이효리가 그림을 한참 쳐다보다가 그림에 적혀있는 글씨를 읽었다.


‘I hope the exit is joyful and I hope never to return.’


이것은 프리다 칼로가 죽기 며칠 전에 일기에 적은 글이다. '이 죽음의 여행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이 일기를 쓸 당시 그녀는 한쪽 발을 괴사로 잃고 폐렴으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런 그녀가 죽음이 ‘joyful’하기를 바란다고 썼다.


효리가 물었다.


"언니도 그래요? never to return?”


완선이 답했다.


“당연하지. 한 번 살았으면 됐지 뭘 또 살아. 난 그래서 매일매일 즐겁게 살아 행복하게.”


우아한 목소리로, 그러나 확신에 차서 하는 그녀의 말이 또 내 마음을 움직였다. 이 여자는 뭔가. 왜 이렇게 멋있지?


나는 김완선이란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한창 그녀가 활동하던 시절, 섹시하다는 의미는 쉬운 여자라는 뜻으로 해석되곤 했다. 지금처럼 소속사의 보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자 연예인들은 쉽게 성적으로 대상화되었다. 요즘도 그런데 그때는 더 심각했다. 김완선은 가족으로부터도 수모를 당해야 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런 세상을 살아내고 살아남은 그녀가 망가지지 않고 이렇게나 멋진 모습을 갖고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아마도 어느 시점에서, 아주 깊은 수렁의 어느 길목에서 그녀는 결심했을 것이다. 나를 잃지 않는 여인이 될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으로 살 것이다.


어떻게 나이 먹어갈 것인가. 요즘 나의 중요한 인생 주제이다. 김완선의 표정, 말, 웃음, 동작, 하나하나를 몰입해서 보게 되는 이유는 그녀의 나이 듦이, 나이 들어가는 그녀의 삶이 내게 뭔가를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그것은 ‘리듬’이다.

나는 춤추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잘 춘다는 것이 아니다). 한 때는 춤 배우는 곳에 가서 두 시간씩 펄쩍펄쩍 뛰기도 했다. 음악이 시작되고 리듬이 내 몸을 타고 흐르면 주체할 수 없게 감성이 폭발했다. 집에서도 혼자 음악을 틀고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런 감각(리듬)이 내 몸속에 남아 있는 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죽을 때까지 갖고 가고 싶다.


김완선에게서 나는 ‘리듬’을 본다. 들린다고 해야 하나. 노래와 춤이 내재되어 있는 리듬. 아주 오래된,  깊고 감칠맛 나게 숙성된, 그러나 무겁지 않은 리듬. 그녀는 리듬을 안다. 그녀가 곧 리듬이다. 아름다운 리듬. 그래서 멋이 넘쳐흐른다. 조용히 가만히 있을 때조차도. 그것이 그녀가 현재를 살게 하고, 현재를 산다는 의미를 알게 하는 힘일 것이다. 그녀를 배운다. 그녀가 계속 리듬 속에서 춤 추길 바란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리듬을 배우고 리듬을 잃지 않고 그 속에서 춤을 추는 삶. 그렇게 살 수 있기를 늙기를 죽기를 나는 소망한다.



*프리다 칼로 : 멕시코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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