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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ve Jan 20. 2021

여는 글

 "너, 그 나이 먹고 아직도 그런 걸 봐?"
 "그런 건 좀 유치하지 않아?"
 "이제 그런 건 졸업할 나이가 되지 않았어?"


 어릴 때는 문제가 없던 것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문제가 된다는 말을 듣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그 당시 내 또래들이 공영방송에서 하는 만화 시간대를 줄줄 외우고, 그 시간에 맞춰 TV 앞에 앉아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친구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만화 방송 시간이 되면 함께 TV 앞에서 만화 주제가를 부르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다음날 전날 봤던 만화 이야기를 학교에서 내도록 하는 것도 어떤 의미로 당연한 일이었다.

 또 그런 시기를 지나 자란 10대 시절은 어땠던가. 그때는 한창 인터넷 소설 열풍이 불던 시대였고, 그 시대의 여자애 중에서 ‘귀여니’나 ‘백묘’를 모르는 이는 드물었다. 어른들이 보기엔 해괴망측하게 이모티콘을 쓰고, 소위 말하는 ‘날라리 같은 학생들의 이야기’가 판을 쳤다. 그 안에는 그 나이 나름대로 사랑이 있었고, 로망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거기다가 인터넷 사용이 보급되던 시기였으므로 각종 사이트마다 인터넷 소설을 쓰는 사람들도 많았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글이었고, 그 글을 직접 써본 이들도 제법 있었다. 한때나마 그런 사람 중 하나에 내가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때만큼 열정적으로 만화와 인터넷 소설에 미쳐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것을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렇지만 내 나이는 내가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 자체가 문젯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내가 여전히 그것들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남들은 유치하다고 했고, 삶에 있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 것을 좋아할 바에야 좀 더 생산적이고, 교양적인 것을 좋아하는 게 나을 것이라며 조언 아닌 조언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었고, 남들 앞에서 드러내기 수치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에 관한 말을 최대한 아꼈고, 모르는 척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어쩌다 이야기 소재로 나오면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남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차라리 그렇게 해서 그것들이 싫어지거나 질리게 된다면 다행이었을 텐데 몇 년이나 좋아하던 것이 지금 와서 갑자기 싫어질 리도 없었다. 그렇게 남들이 눈치를 주는데도 좋아하는 걸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웹툰’과 ‘웹 소설’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웹툰과 웹 소설은 이제 상당히 대중적인 것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웹툰 작가가 TV에 나오고, 웹 소설을 쓰기 위한 강좌가 인기 강좌가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 있을 때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보아도 별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일반적인 것과 동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하나의 문화가 된 것이다. 가볍게 “나 웹툰 보는데?”, “나 웹 소설 보는데?” 하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나의 부모님 세대에게, 혹은 나의 일부 친구들에게는 어딘가 떨떠름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유치한 내용의 웹툰이나 웹 소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웹툰이나 웹 소설이 문제가 되는 현실인 것도 맞다. 또한, 비슷한 내용을 양산하거나 자극적인 장면만 연속적으로 나열하여 질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런 좋지 않은 일부분만 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깎아내리는 사람을 보면,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좋아하는 웹툰과 웹 소설을 연재하는 동안 읽고, 그것의 마지막까지 함께 달리면서 함께 좋아하고, 조마조마했던 감각을 알고 있다. 연재가 끝나고 작가님의 후기가 올라올 때 느끼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은 웹툰과 웹 소설을 보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또 그 내용이 아주 좋아서 몇 년을 내내 함께했던 것을 몇 번이나 다시 보고, 읽었던 적도 있다. 보면 볼수록, 읽으면 읽을수록 깊게 이해하고 느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희열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일반적인 책을 읽을 때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든 것들이 고작 웹툰과 웹 소설이라는 이름을 달았다고 덜 떨어지는 것 취급받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위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얼마나 이 작품들을 사랑하고, 아껴왔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다. 웹툰과 웹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나쁜 꼬리표를 달았다면, 좋은 꼬리표를 달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내 글을 읽고 한 명이라도 웹툰과 웹 소설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면, 누군가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근거가 된다면, 혹은 내가 언급하는 웹툰과 웹 소설을 한 번쯤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보게 된다면 무척 기쁠 것이다. 그런 마음을 담아 조심스럽게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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