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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ve Feb 20. 2021

아이는 어떻게 자라나는가?

웹툰 <전자오락수호대>를 읽고

* 인용글은 모두 웹툰 <전자오락수호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서진 소년의 흩어진 조각들.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다시 찾을 수 없는 조각들도 있었지만 가장 큰 조각만은 오늘 다시 꿰어졌다.


 나는 요새 소위 말하는 ‘젊은 꼰대’가 되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는 막냇동생과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편이다. 갓 태어나서 내 팔뚝 길이밖에 되지 않았던 막냇동생은 자라서 대학 진로를 고민할 나이가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야기를 끝내고 나면 항상 이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막냇동생은 영상 편집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쪽 일을 할 수 있으면 대학을 진학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으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에 나는 대학은 무조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사람을 무시한다고. 대단한 재능이 없다면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이 낫다고. 그 이후에 막냇동생은 대학을 가는 방향으로 진로를 잡았다. 그 이후에는 과가 문제였다. 성적이나 사람들이 인식하는 대학교 이름값이나 대학교 커리큘럼 등을 보면서 또 조금씩 부딪히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물론 이런 부분으로 무슨 젊은 꼰대라고 할 정도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냇동생이 내게 하는 말이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어른들에게 하던 말과 같았고, 내가 그에게 하는 말은 나를 억압하려고 한다 생각한 어른들이 하는 말이었다. 그게 새삼스럽게 떠올라서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사촌 동생이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겠다고 이름도 잘 모르는 대학을 간다고 했을 때, 나는 사촌 동생의 유일한 편이 되어서 함께 어른들과 싸웠다. 일러스트레이터의 전망이나 수요에 대해서 찾아 설득하고, 사촌 동생의 자기소개서를 봐주었다. 그리고 네가 가고 싶은 길을 가는 것이니 힘껏 나아가라고, 너의 용기를 응원한다고 하며 가장 든든한 아군이 되었다.

 그랬던 내가 막냇동생에게 이름 없는 대학에 가면 사람들이 무시하니, 그런 대학은 장학 제도가 별로라서 고생을 많이 하니, 타지 생활을 하면 돈이 많이 들고 힘드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어릴 때는 꿈이 확실하고 원하는 대학이 없다면,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노력만 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고 믿었고, 노력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언제나 내가 ‘혁명가’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혁명에 성공한 혁명가’는 또다시 사회에 고여 들어 ‘혁명을 당해야 하는 존재’가 되는 법이었다.


 이런 심란한 내 마음을 달래주었던 웹툰이 바로 <전자오락수호대>였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말하자면 꽉 막힌 원칙주의자로 매뉴얼이라는 별명을 가진 ‘패치’가 자신의 조수인 ‘치트’의 계략에 의해 ‘고전게임부’로 전출되며 고초를 겪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의 작가가 그린 전작은 일상 웹툰이었는데, 일상 웹툰을 재미있게 잘 그려 마음의 위안을 받았었다. 이 작품은 그 작가의 차기작이었으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또한, 일상 웹툰을 그렸던 작가가 스토리성 있는 웹툰을 그렸다는 점이 흥미롭기도 했다.


 웹툰 <전자오락수호대>는 가벼워 보이는 게임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가볍게 읽고 넘어가기 좋아 보인다. 실제로 초반부는 그런 유희성이 강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패치가 고전게임을 넘나들면서 그 게임 속에 있는 이들의 문제점을 다루고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 생각보다 이 작품이 무거운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은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특히 ‘세대 갈등’에 대해 심오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점이 작품의 주된 포인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난 느낄 수 있었어… 당신은 내 목소리를 고칠 마음이 없다는 걸. 그런 날이 오길 바랬다는 걸. 당신은… 살아남은 내가 당신의 위대한 ‘악용’에 먹칠을 할까봐 탐탁지 않았겠지…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서 내 존재감을 지워둘 필요가 있었던 거야. 난 믿고 있었거든. 오늘같은 날이 반드시 올 거라는 걸. 당신은 사과할 필요 없어.”
“그래서… 게임을 망치시겠다…? 대사제도 성기사도… 니 욕심으로 전부 없애버리겠다고…? 용사의 앞길도!! 이 게임도!! 싸그리 다 망쳐버리겠다 그거냐?!!”
‘수호대 없인 아무것도 못했던 놈들이…!! 이렇게 살 수 있게 해준 은혜를 모르고…!! 내가 지켜낸 도시를 감히!!!’


 패치 대신 그를 돕던 ‘퍼블리’는 플레이어인 ‘주인공’보다 먼저 ‘홀리시티’에 도착해서 도시의 상황을 확인한다. 그러면서 홀리시티의 적폐를 알게 되어 그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홀리시티에서 대사제 역할을 맡은 ‘홀리’는 꼴보기 싫은 ‘언데드’를 몰아내기 위해 그들이 사람을 해쳤다는 누명을 씌웠다. 그래서 언데드를 홀리시티에 발도 못 들이게 하고, 그 누명을 씌우는 과정에서 다쳤던 피해자인 ‘메르시’가 회복할 수 없도록 감시했다. 그리고 결국 그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 홀리는 파국을 맞이한다.


 나보다 윗사람에 대한 감정을 가질 때, 항상 어려운 부분이 있다. 특히 나에게 나쁘게 구는 윗사람일 경우는 더더욱.

 흔히 말하는 ‘나 때는 말이야~’ 하는 그는 정말 한창때 잘 나갔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젊은 시절 힘들었을 것이고, 자신의 노력으로 그것을 극복했을 것이다. 물론 부조리에 화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본인이 그 부조리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한창때 이야기를 들먹이며 너는 왜 이러냐고 매도하고, 진상을 부리면 좋아하려야 좋아하기가 어렵다. 시대는 변하고, 예전과 같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좋았던 예전의 기억 속에 머물고, 현재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아니라 찍어누르려고 하면 그것은 언젠가 좋지 못한 결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세상은 더 나아가기를 원하고, 나아지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흐름은 아무리 예전에 날고 기던 사람이라고 해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홀리는 자신이 쌓아올린 홀리시티에서 자신이 고생한 것을 보상받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이들을 차별하는 것으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이런 것을 보면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짱개’니, ‘왜놈’이니, ‘코쟁이’니 하는 소리를 하는 게 생각난다. 물론 전쟁을 겪은 분들이라면 특정 국가에 관한 반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마는, 동시에 그저 개인에게 그런 비하의 말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의 과거를 과거로 두지 못한 자의 아집이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 아집을 가지고는 계속 흘러가는 현재를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내가 과거에 겪었던 일로 인해 다른 사람을 비하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편이다. 내가 겪었던 일로 고생을 하고, 힘들었다고 할지라도 나에게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힐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래서 이 장면을 보면서 나의 그런 다짐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었다.


“네놈이 드디어 정신을 놓았구나!! 이 곳은 네 자식의 미래를 위한 터전이다!! 기어이 네 자신의 인생까지 망칠 생각이냐!!”
“아뇨… 이건 배운대로 행하는 내리사랑입니다…! 어머니께서 소년 헥소미노를 망쳐버린 것처럼요…!”


 작품 내 악당인 ‘치트’의 계략으로 인해 패치와 퍼블리는 주인공을 데리고 ‘타이트니스’ 게임(테트리스)에 오게 된다. 패치와 퍼블리는 타이트니스의 운영자인 ‘헥소미노’의 불합리한 지시를 따르며 게임을 진행한다. 그러면서 퍼블리는 헥소미노와 단둘이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고, 헥소미노는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인 ‘펜토미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타이트니스 편은 가족 간의 세대 갈등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3대로 이어진다. 초대 운영자인 펜토미노는 아주 대단한 사람이었다. 위대한 업적을 만들었고, 그것을 이어나가는 전설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녀의 아들로 태어난 헥소미노는 그 대를 이어야 했고, 그 기대감에 깔려 숨도 못 쉬고 살아갔다. 결국,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펜토미노와 지독한 갈등을 빚다가 더는 얼굴을 보지 않는 사이가 된다. 이후 헥소미노는 제 아들이 타이트니스의 대를 잇고 싶다고 하자 그가 그럴 수 없게 다른 마을로 보낸다.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나와 내 바로 아래 동생을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대학을 진학하던 당시에 나는 내가 원하는 과로 진학했다. 소위 말하는 돈 안 되는 인문계열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쪽으로 진학할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나 때문이었을까. 아버지는 바로 아래 동생에게 세세한 커리큘럼을 짜서 그대로 따르게 했다. 동생은 아버지의 계획대로 학원에 다녔고, 자격증을 땄고, 공대 계열로 진학했다. 동생은 공대 쪽에서도 가고 싶은 과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그 과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며 다른 과로 가라고 했다. 그러니 동생은 그것이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유롭게 진학하도록 내버려뒀으면서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 일을 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도 지금에 이르러 그때 너무 동생의 진로를 강압적으로 결정한 건 아닌가 생각이 많다고 하셨었다.

 나는 형제 중 가장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 그런 내가 위에 있었기에 바로 아래 동생은 부담이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나가 이 정도 하니까, 너도 이 정도는 하겠지, 같은 주변 기대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가는 것보다 아버지가 만든 길을 따랐을 것이다. 그때 내가 동생과 이야기를 많이 해서 그 진로를 함께 고민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요새 많이 든다. 그 동생은 남들의 기대에 깔려 아등바등 지내다가 별로 바라지 않던 과로 진학해서 지금은 그 과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을 하고 있다. 본인은 지금 잘 지내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 얼마나 괴로웠을까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자리 잡게 된다. 그래서 유달리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대화가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기대하는 사람도, 기대를 받는 사람도,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말이다. 나와 내 바로 아래 동생에게는 지나간 일이지만,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면, 지나가고 있다면 꼭 함께 대화해보면 좋을 것 같다. 다그치는 그 말에 담긴 마음과 노력 속에 담긴 그 말을 말이다.


 이 웹툰을 보면 작가가 한 세대가 어떻게 젊었고, 어떻게 늙어가며, 오래된 것으로 자리 잡아 현재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마냥 ‘꼰대’라며 이야기하기 꺼리던 사람에 관해서, 그저 마냥 ‘철없는 어린애’라며 혀부터 차던 사람에 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꼰대’는 젊은 시절 누구보다 치열하게 이전 세대의 부당함에 저항했었고, ‘철없는 어린애’는 어느새 스스로 두 발로 땅을 딛고 설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였다.

 물론 작품 내에 있는 일이 너무 유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분명 치열했고, 균열이 일어난 벽과 같은 오랜 상처인 것을 지금이나마 회복해보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였다. 마냥 꽃밭과 같은 이야기가 아니기에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을 통해 나의 이전 세대와 나의 다음 세대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어른은 결국 아이가 자란 것이고, 어른은 자신이 아이였던 때가 있다는 걸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너무 자란 어른에게, 자신을 마냥 억압하는 어른들만 주변에 있는 것만 같은 아이에게 이 웹툰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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