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ve Feb 21. 2021

세대가 바뀌어도 존재하는 ‘어른’과 ‘아이’

웹툰 <전자오락수호대>를 읽고

* 인용글은 모두 웹툰 <전자오락수호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웹툰 <전자오락수호대>의 이야기는 ‘어른’과 ‘아이’의 이야기이다. 작은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이야기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어른의 이야기이다. 동시에 작은 아이일 때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고 무작정 어른이 된 누군가의 이야기이고, 더 나은 미래에서 욕을 먹는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점이 이 작품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작품 내에서 아이는 아이의 역할로 끝나고, 어른은 어른의 역할로 끝난다. 그러나 어른의 아이 시절 이야기, 아이가 상처받았던 이야기, 괜찮았던 어른이 괜찮지 않은 어른이 되는 이야기 등으로 한 존재의 인생이 얼마나 길고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지 생각하게 한다. 또한, 아이를 위한 고민을 하게 하고 어른을 이해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

“게임을 모두에게 돌려줄 것입니다. 지금 업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은 모두 독점으로 인한 것입니다… 게임과 함께하고 싶어도 독점자의 기준에 맞추지 못하면 이 바닥에 발을 들일 수조차 없어요. 어쩌다 발을 들였다 해도 여전히 그들의 요구사항에 끌려다니며 소비될 뿐… 행여 운 좋게 그것을 다 뚫고 올라간 사람 또한 이 모든 과정을 되물림하는 사람이 되어버릴 지도 모릅니다.”
“뭐 혁명봉기해서 수호대 제국 무너뜨리자 그런 분위기 같은데?”
“상상력이 좋으시군요… 사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수호대 없이도 돌아가는 게임들이 생기면 되죠. 자생이 가능한 생태계가 있으면 그 뒤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겁니다.”
“선배님은 그렇게라도 해보셨습니까?!! 갈수록 차별은 심해지고 닫힌 기업이 되어가는데 다들 바뀔 생각은 없지 않습니까?!! 주인공 입에서 직접 발벗고 나서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썩은 세상을 만든 책임은 대체 누구에게 있단 말입니까?!! 저와 제 딸이 얼굴까지 팔리면서 선을 넘어오는 동안 그 잘난 불평불만 말고 한 게 뭐가 있냔 말입니다!!!”
“……제가 어떤 마음으로 ‘피니셔’라는 두 번째 이름을 지었는지 아십니까…? 첫 번째는… 수호대로 인해 벌어지는 게임계의 모든 나쁜 일을 끝맺고 싶었던 마음. 그리고 두 번째는 이런 선을 넘는 존재는 제가 마지막이길 바랐던 마음입니다.”


 작중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검은 금요일’ 사건이다.

 이 사건은 ‘게임 마스터’가 되고 싶어하는 ‘주인공님(플레이어)’인 ‘AAA’에게 ‘전자오락수호대’인 ‘컨티뉴’가 존재를 들키면서 시작된다. AAA는 게임에서 건드려서는 안 될 부분을 건드리는 존재였고, 컨티뉴는 주인공님에게 들켜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그런 두 존재가 만나 게임을 위해 더 나은 일을 하자고 손을 잡게 된다. 그러나 좋은 의도로 시작된 일은 ‘정도를 지키지 않은 편법’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결국 어그러지게 된다. AAA는 게임 세상의 재앙이 되었고, 그 때문에 게임 세상은 초토화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컨티뉴는 그를 막아내고 죽게 된다.


 사람이란 게 참 그렇다. 좋은 뜻을 변질하지 않고 내내 좋은 뜻으로 두는 것도 어렵고, 자신만이 대업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쉽다.

 내가 아는 언니 중에 서른이 넘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할 수 없는 언니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언니가 나에게 자신이 아주 한심해 보이냐고 물었고,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내 또래의 아는 동생이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살 것이냐고 매도하듯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사람은 일찍 취업하고, 자기계발에 힘쓰고, 사회운동도 하고, 기부도 하는 등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듯했다. 돈도 그 나이 또래보다 많이 모은 편이고, 주식투자를 하는 등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인데 그것을 주변에도 권한다는 것이다. 물론 권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권하는 일을 하지 않거나 자신의 눈에 차지 않는 사람에게는 인생을 그런 식으로 살면 안 된다며 매도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언니가 그 매도에 상처를 받아 자신은 사정이 있다고 설명을 했지만, 오히려 그 사람은 직접 노력은 해보고 하는 소리냐면서 더욱 화를 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이 보기에 대단한 사람과 좋은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다고 해도 남을 배려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일일 것이다. 또한, 내 눈에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 사람은 그 사람만의 삶을 살고 있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언니에게 모진 말을 했던 그 사람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부디 후회하기 전에 그런 식의 행동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리고 나의 좋은 의도가 여전히 좋은 의도의 색을 지니고 있는지, 자신에게 심취해 다른 사람의 삶을 낮잡아보고 있지 않은 지 항상 점검하고 조심해야겠다고 이 장면을 보면서 새삼 다시 생각했다.


“어깨 펴!! 수호대 된다는 놈이 이 정도로 주눅들 거냐?!! 나한테 달려들던 성질머리 여기까지 밖에 안 되는 거냐고?!!”
“……이제 안돼… 아저씨도 그랬잖아… 나는 몸도 이따위로 생겨먹었고…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을 거라고… 내가 손대는건 전부 망가지고… 내가 욕심부린 건 전부 얻을 수 없는 거였어…”
“짜는 소리 하지마!! 넌 뭐든 할 수 있어!! 니가 가고 싶은 길을 가는 거야!! 니가 언제부터 그렇게 완전무결했냐?!! 처음부터 잘난 놈이 어디 있어?!! 세상에 욕심 한 번 안 부려보고 실수 한 번 안 하는 놈이 어딨냐고?!! 어린 놈이 어디 봐줄 게 없어서 어른들 사정을 봐줘?!! 그렇게 니가 다 포기하면 우리가 잘 됐다고 고맙다고 할 줄 알았어?!!”
“경기가 끝나면… 이 경기가 끝나고 나면 다시는 정상화시킬 수 없게 된다면요?”
“…… 평생을 기다려왔는데 이 한 경기를 더 못 기다린다면 저들은 더 이상 이 바닥에 머물 자격이 없다. 그리고 자네 또한 그걸 감내하지 못한 채 후반전에서도 계속 그 이유로 망설이겠다면… 자네는 역시 수호대와는 맞지 않는 것이겠지.”


 작중에서 주인공인 ‘패치’는 어린아이였고, 어른이 된 존재이다. 그는 어릴 때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했고, 자신이 머무는 ‘19금 마을’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아이였다. 그런 그는 자신에게 꼬장꼬장하게 정도(正道)를 말하는 ‘매뉴얼’에게 반발한 적도 있고, 새로 19금 마을에 온 ‘오마케’의 편법을 마을의 부흥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돕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런 그는 좌절했지만, 그에게 매뉴얼은 너는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그렇게 패치는 자라 별명이 ‘매뉴얼’이 될 정도로 원리원칙주의자가 된다. 그런 패치는 ‘고전게임부서’에서 ‘퍼블리’를 만나게 된다. 퍼블리는 ‘고전게임부서’의 갈등을 늦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패치는 게임의 진행을 이어나가는 것이 먼저라며 그녀와 갈등하게 된다.


 아마 대부분 사람이 패치를 보면 자신을 떠올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아무리 어려운 일도 나는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서 실제로 얻은 값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더 잘하기 위한 노력이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은 잘못이라 절망해본 적도 있을 것이다. 잘하려고 한 일이 잘되지 않아 주눅이 들기도 했을 것이고, 지나고 보니 ‘어른’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계속 살아가면서 어린 날의 실수를 잊지 못하고 몸을 웅크리고, 실수하지 않으려 애를 쓰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실수를 ‘아이’가 하지 않도록 소위 말하는 ‘꼰대’ 같은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이만 먹어도 어른이라고 하는데, ‘제대로 된 어른’이 되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내가 어릴 때 했던 실수를 다시 반복하게 될까 봐 두려운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아끼는 누군가가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기도 했다. 내가 본 주변은 어릴 때 봤던 것과 너무 달라서 아이가 보이지 않는 시야에 대해서 말을 하며 그 아이를 막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게 언제나 잘하는 일인지는 알 수 없다. 정말 할 수 있는 아이의 발목을 잡는 일이 될까 봐 두렵기도 하다. 나보다 더 현명하게 그 아이가 이겨낼 수 있는데 내가 어떤 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많아진다. 그렇지만 나는 더는 아이가 아니고, 끊임없이 어른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하고, 다음 세대 아이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내가 언제나 이 마음을 잊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몇 번이고 이 작품을 읽었었다.


 아이는 아이라서 완벽하지 못하고, 어른은 어른이라서 완벽하지 못하단 생각이 든다. 아이는 끊임없이 외부의 시련을 겪어야 하고, 어른은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실수를 두려워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는 결국 내적으로 단단해질 것이고, 어른은 더 나은 어른이 되어 나아갈 것이다. 세대가 바뀌어도 그것은 변함없는 아이와 어른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패기 넘치는 아이였고, 패기로 뭐든 이길 것 같은 사회에게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 자라면서 여전히 실수하지만 그래도 그것에 대한 책임 또한 지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이 세상의 모든 아이와 어른이 이 작품을 보고, 자신이 앞으로 되어야 할 어른에 관해 자신의 어린 시절에 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는 어떻게 자라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