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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ve Jan 20. 2021

화장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웹툰 <화장 지워주는 남자>를 읽고

* 인용글은 모두 웹툰 <화장 지워주는 남자>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예슬! 얼굴이 요새 그게 뭐야! 옷도 좀 예쁜 거 입고, 입술 좀 찍어 바르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화장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럴 수 있다. 다만 남성일 경우에는 당연히 그럴 수 있고, 여성의 경우 그것은 수많은 조건을 충족해야만 가능하다.


 나는 여성이지만 화장을 하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당연히 알고 있다. 내가 운이 좋은 편이라는 것을.

 여성이 화장하지 않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화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잔소리하지 않는 가족 환경이어야 한다. 내 주변 친구 중 꾸미는 것에 관심 없는 친구들은 가족에게 항상 이런 말을 듣는다고 한다. “네가 나이가 몇 살인데 이제 관리해야지.”, “다른 애들은 예쁘게 하고 다니는데 너는 예쁘게 하고 싶은 생각 없어?” 등등. 그렇지만 그렇게 잔소리하는 가족 중에서 남성 가족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두 번째 조건은 화장하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친구들이 없는 환경이어야 한다. 내가 화장을 하다가 귀찮다는 이유로 화장을 때려치웠을 때 걱정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러고 다니면 남자 못 만나.”, “너 화장 안 하고 다녀서 주변에서 왜 화장 안 하고 다니냐고 물어봐.”, “화장 안 하니까 안색이 안 좋아 보여.” 등등. 정말 놀랍게도 진심으로 친구들은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다. 나중에는 내가 자신의 조언을 듣지 않는다며 화를 내는 친구도 있었다.

 세 번째 조건은 화장하지 않는다고 눈치 주지 않는 직장 환경이어야 한다. 나는 작은 가게에서 일하는데 점장님께서 내가 화장을 하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시다. 일만 잘하면 아무래도 좋다는 분이셔서 나는 점장님께 한 번도 화장하고 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다른 직장 다니는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화장하지 않으면 어느 정도 눈치를 준다는 듯했다. 그래서 화장을 못 하고 출근하면 반드시 화장품을 챙겨서 회사에 도착해서라도 화장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반대로 말하면 꾸미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족은 잔소리할 수 있고, 친구들이 걱정할 수 있고, 사회에서 눈치 주는 것이 여성들에게 주어진 세상이란 말이다. 웹툰 <화장 지워주는 남자>에서의 주인공인 ‘김예슬’은 그런 ‘평범한 세상’에서 사는 여성이다.

 웹툰 <화장 지워주는 남자>의 내용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평범한 주인공인 ‘김예슬’과 천재 메이크업 아티스트 ‘천유성’이 함께 메이크업 쇼에 나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에는 별로 이 웹툰에 큰 기대를 하고 보지는 않았다. 못생겼던 여자 주인공이 아름다워지면서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본 게 하루 이틀은 아니니까. 단지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남자 주인공으로 세우는 것 같은데 어째서 제목이 ‘화장 지워주는 남자’인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웹툰에서는 생각보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지만 그 다양한 이야기는 모두 여성의 삶을 관통한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내게 와 닿았지만, 특히 내가 와 닿아 다른 사람들도 한 번 보고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고 느낀 부분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면... 저는 한두 시간 늦게 일어나고 화장한 게 아까워서 얼굴에 손 못 대는 거보다 내 맘대로 얼굴 만지는 게 더 좋아요."


 예슬이가 메이크업 쇼에 나갈 때,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정체를 숨긴다. 그렇지만 ‘은정’이라는 스태프에게 정체를 들키게 되는데, 은정은 정체를 숨겨주는 대신 유성에게 메이크업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오랜만에 동창회에 가는데 ‘여전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은정은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편이었기에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예쁘게 하고 동창회에 가면 자신을 평가하는 시선이 바뀌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돌아오는 말은 더 많은 평가였다. “이제 살만 빼면 진심 여신각~”, “근데 사실 넌 코랄보다 핑크가 더 잘 어울릴 거 같은데.”, “그리고 컨실러로 가리는 것보다 원래 피부를 개선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아!” 등등. 그 말을 한 이들은 모두 ‘조언’이라고 말했다.


 나도 한때는 꾸미는 것에 열을 올렸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꾸미면 꾸밀수록 이상하게 내 못난 모습만 더 보이는 기분이었다. 살을 빼면 지금보다 더 빼면 더 나아질 것 같았고, 화장하면 내 얼굴을 왜 이렇게 못나서 신경 써서 커버할 게 많은가 싶었다. 그런 스트레스 탓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신경질적인 성격이 되기도 했다.

 남들 신경 쓰지 않고, 내가 꾸미고 싶은 대로 꾸밀 것이라며 눈두덩이를 보라색으로 칠하고, 입술을 검게 칠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남들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뒷말에 남들과 비슷하게 화장한 경험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웃으면서 그땐 그랬다고 할 수 있지만, 그때는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모든 게 귀찮아져서 화장하는 걸 그만뒀다. 화장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던 시간에 잠을 좀 더 자고, 입가에 뭔가 묻으면 화장지로 쓱 문질러 지웠다. 그래서 그럴까. 유달리 저 부분이 마음에 들었고, 이전의 내가 생각나서 더 열심히 웹툰을 챙겨보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땐 좀 못하고 살아도 돼. 그럴 때 아니면 언제 그러냐? 응? 어때?"
"...사실은... 아래부터 들이대는 카메라... 너무 싫어... 나 어른 되는 거 기다리겠다고 하는 말들... 소름 끼쳐. 아이돌 되려면... 사람들한테 욕 안 먹으려면 이런 거 다 참아내야 한다고 하는 것도... 내가 왜 그래야 해... 나 열한 살인데... 나 그냥 춤추고 노래하고 잘했다 소리만 듣고 싶어..."


 메이크업 쇼가 막바지에 이르고, 미션이 내려진다. 탈락자와 함께 쇼를 진행할 것. 쇼에서 살아남은 ‘은하’와 탈락한 초등학생 ‘미미’가 만났을 때,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한다. 아주 화장을 못 한 콘셉트로 나가자고. 어릴 때는 화장을 못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 말에 미미는 솔직하게 울면서 자신이 느낀 감정을 말한다.


 더는 어린 나이가 아니라는 게 실감 날 때가 있다. 바로 요새 데뷔하는 아이돌이 한참 나보다 어리다는 것이다. 성인이 아닌 아이돌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걸 보면서 가끔 내가 저 나이 때 뭘 했나 돌아보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겠다고 생각하면서 아이돌 영상을 보면, 특히 여자 아이돌 영상의 댓글 중에 수위를 넘는 말이 많은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직캠’이라고 말하는 영상을 보면 댓글은 더 심한 경우가 많다. 댓글을 꼼꼼하게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더 그럴까. 그런 영상은 각도도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렇지만 그런 영상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은 나뿐인 것처럼 댓글은 그런 영상이 더 없느냐고 아우성치는 인간들이 많았다. 어째서일까. 그런 영상은 신고해도 끊임없이 나오는 것 같았다.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답지 않은 것은 그 아이가 철이 들어서라기보다는 상처가 깊어서라는 말이 있다. 어린아이답다는 걸 뭐라고 정의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어른들에게 선정적으로 보이는 게 어린아이다운 것은 아닐 것이다. 괜히 성인과 성인이 아닌 사람 사이의 법 차이가 있는 게 아닐 것이고, 아동보호법이 있는 것이 아닐 테니까. 어린아이가 어른처럼 보이고 싶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어른과 똑같이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내 주변만 보던 시각이 더 나아가 나 다음 세대까지 볼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웹툰을 보면 작가가 얼마나 여성이 살아가는 세상을 아끼고,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 삶의 불편함과 문제점을 잘 알아차리고, 그것을 불편하지 않게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웹툰을 보는 내내 많은 공감을 했고, 내 이야기 같이 느껴진 이야기들이 많았다. 또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하여 한층 더 폭넓은 시각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내가 소개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 정도가 되지만, 아주 많은 소소한 누군가의 삶이, 나의 삶이 웹툰에 녹아있다. 너무 평범해서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 사실은 이상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나만 불편했던 것이 아니라, 모두가 불편했고, 함께 바꿔갈 수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나는 이런 따뜻한 연대가 담긴 웹툰을 좀 더 많은 사람이 보고, 대화할 수 있게 되면 좋을 것 같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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