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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ve Jan 20. 2021

더 나은 나를 향해 발을 딛는 ‘은별이’

웹툰 <같은도장>을 읽고

* 인용글은 모두 웹툰 <같은도장>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웹툰 <같은도장>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등장인물을 뽑으라고 하면 역시 주인공인 ‘최은별’일 것이다.


 웹툰 안의 은별은 사회와 직접 소통하지 않고 집 안에서만 지낸다. 고등학교는 자퇴했고, 나이 차가 나는 친언니의 집에서 얹혀살고 있다. 밖에서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너무 두려운 일인 은별은 게임 속에서 친하게 지내는 ‘또라이(강현우)’에게만큼은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렇지만 은별은 살면서 그를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은별이 우연히 등록한 검도 도장이 사실은 현우가 다니는 검도 도장이란 더 기가 막힌 우연으로 그들이 만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은별이란 인물을 서서히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은별이 일반적인 상황보다는 약간 극단적인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감할 만한 요소가 충분했기 때문이리라.


난 그대로인데. 아직도 고등학교 자퇴할 때에 멈춰 있는데... 저렇게 쿨하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들 앞으로 나가는구나. ...나만 빼고.


 은별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그녀의 어머니는 흔히 말하는 ‘극성 엄마’였다. 그랬던 탓에 은별은 항상 공부에 매달렸는데, 그런 은별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것이 ‘민지’였다. 민지는 은별에게 공부를 가르쳐달라고 했고, 공부를 가르쳐주는 은별에게 고마운 마음에 게임기를 빌려준다. 그러나 그것이 둘 사이를 파국에 이르게 한다. 은별의 어머니는 게임기를 발견하고 그걸 돌려준다는 명목으로 민지를 만났다. 그러면서 자신의 딸과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심한 말을 했다. 그 탓에 민지는 은별에게 화를 냈는데, 하필 장소가 복도였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그 싸움을 모두가 주목했고, 그 압박감에 은별이 기절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은별은 그 일을 계기로 자퇴하게 된다.

 은별은 그렇게 안 좋게 헤어진 민지와 성인이 되어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민지는 그때의 일을 잊은 듯 우연히 만난 은별에게 다음에 또 보자고 인사한다. 그런 민지를 보며 은별은 자신만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며 상념에 빠진다.


 살면서 한 번쯤은 다들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머물러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특히 내가 못난 짓을 했던 과거를 곱씹을 때 더욱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그 과거를 어떻게든 잊고 그럴듯하게 현재를 살다가도 한 번씩 그 과거가 떠올라 발목 잡을 때도 있었다.

 나도 살면서 은별과 비슷한 상황인 적이 있었다. 예전에 인터넷 동호회 사람들과 아주 친하게 지내서 정말 현실 친구처럼 지냈었다. 인터넷 동호회도 사람이 모인 곳이니 사건사고가 없진 않았지만, 큰일은 없을 줄 알았다. 언제나 오래도록 친하게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바람은 산산조각이 났다. 사람들 사이에 사건이 있을 때, 내가 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자 둘 사이에서 저울질한 것이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내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지만 그들에게는 그렇게 보였는지 결국 그들과 완전히 척을 지게 되었다.

 물론 내가 처신을 잘못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똑같이 생각한다. 그렇지만 정말 현실 친구처럼 지내던 사람들을 우르르 잃어 정신적인 충격이 심했다. 본래도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방에 틀어박혀 밥 먹을 때 빼고는 가족들 얼굴도 보지 않았다. 그런 내 상황을 알았던 현실 친구들이 나를 많이 다독여주었고, 나는 다시 일어나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일을 잊고 한참 현실을 살다가 정말 뜬금없이 그때가 떠오를 때가 있다. 애써 덮어두고 살고 있는데 불쑥 생각이 나 한참 스스로 머저리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때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때와 같은 실수를 할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은별의 그런 고민에 깊게 공감했다.


"그래도 그렇지. 무슨 운동을 방전될 때까지 해?"
"난 좋던데. 오늘 하루 열심히 산 기분이라."
"무슨 애늙은이 같은 소릴 하고 있어?"


 은별은 우연히 검도 도장에 등록했지만, 이후 점점 검도가 좋아져서 열심히 다니게 된다. 호구를 사고, 단증을 따기 위해 노력하고, 대회도 나가게 된다. 그러면서 은별이 운동하고 집에 와서 늘어져 있을 때, 은별의 언니인 ‘최은하’가 물어본다. 그때 은별은 그 물음에 대답한다.


 사실 나는 그다지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어릴 때는 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발레와 태권도를 조금 했고, 그나마 오래 한 운동은 음악 줄넘기였다. 그마저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아예 하지 않았다. 운동은 그다지 재미없고, 힘만 드는 것이었다.

 그런 나도 나이를 먹다 보니 다이어트를 위해서, 혹은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의무감 때문에 하는 운동이 귀찮고 힘들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운동하며 땀 흘리는 동안 잡생각이 들지 않는 건 좋았다. 힘들고 지치지만 그런데도 끝까지 해냈다는 것에 상당한 만족감을 느꼈다. 나중에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스스로 운동을 더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가끔 머리가 복잡할 때, 산책하러 나가보는 게 어떠냐고 권할 때가 있다.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기분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산책로를 걷는 것 정도밖에 못 하고 있지만, 웹툰 속 은별을 보면서 이후 여유가 생기면 본격적인 운동을 배워봐도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래서 얘기해 보고 싶었다고. 말 해보면 별 것도 아닌 일인데 너나 나나 바보 같았다, 그치?"
별 거... 아니라고?
"네가 그만둘 줄은... 쓰러지기까지 해서 솔직히 좀 무섭더라. 다른 애들이 그렇게 몰아붙일 줄도 몰랐고... 늦었지만 미안해."
그때 내가 찾아가서 오해를 풀었더라면 내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줬을까.
"말해줘서 고마워. 나도... 나도 미안했어."


 은별은 검도를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용기를 내게 된다. 다시 만난 민지와 진솔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진다. 민지는 그 당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이야기했고, 은별이도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은별은 다른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만남은 여전히 꺼려지긴 해도, 민지와의 만남이 싫지 않아졌다. 그렇게 은별은 과거의 응어리를 해소하게 된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기에 그때 쌓인 응어리를 해소하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렇지만 알면서도 바라는 게 사람 마음이 아니던가. 과거에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기에 은별이 민지와 만나 자신의 과거를 해소하는 장면 역시 인상 깊었다. 비록 우연이 겹쳐 일어난 일이라고 해도, 현실에서 이루기 어려운 일이 웹툰에서나마 이뤄지는 것이 나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나도 언젠가 내가 과거에 받았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구나 은별처럼 상처받은 과거가 있고, 그 과거에 발목이 잡혀 괴로워하는 나날을 보낼지도 모른다. 나만이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그럴 수 있고, 그것은 내가 못났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쉽게 툴툴 털고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에 자괴감을 가지지 말고, 조금만 용기를 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잡아보는 것도 좋고, 스스로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어도 괜찮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은별처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나만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닐까 불안한 누군가가, 혹은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누군가가 이 웹툰을 꼭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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