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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ve Jan 20. 2021

두려운 것이 아주 많은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웹툰 <같은도장>을 읽고

* 인용글은 모두 웹툰 <같은도장>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검도장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내 작은 세계에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삭제해 버리는 게임 캐릭터와는 다르다. 내 행동에 상대방이 반응한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행동에 사람들의 기분이 바뀐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신경이 쓰이고 약간 무섭다. 그래서 자꾸 생각이 많아지고 소심해진다. 사소한 일에서조차도.


 지금도 약간 그런 면이 있지만, 어릴 때는 정말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었다. 그런 나는 애석하게도 아버지의 직업상 이사할 일이 잦았다. 그 탓에 이것저것 힘든 점이 많았지만, 그중 단연코 힘들었던 것은 새로 친구를 사귀는 일이었다.


 차라리 학기 초에 전학을 온 것이라면 다행인데 학기 중에 전학을 온 것이면 더욱 힘들었다.

 이미 다른 아이들은 서로 친해져서 무리 짓고 다니는데 거기에 덩그러니 떨어진 감각은 이루 말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안 그래도 낯을 가리는 편이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 거는 것조차 무서운 사람이었으니 정말 두려웠다. 자기소개를 시킬 때는 정신이 아찔해져 내가 어디를 보는지도 알 수 없었고,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이후 쉬는 시간이 되면 전학생이다 보니 상당히 주목받게 되었고,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부담감을 느낀 부분은 다양했지만, 특히 그렇게 느낀 이유는 잘하든 못하든 함께 학교생활을 해야 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혹시 다른 사람 앞에서 실수할까 봐. 그것이 누군가에게 기분 나쁜 것이 되어서 따돌림을 당할까 봐. 내가 한 행동을 다른 사람이 나쁘게 오해할까 봐. 끊임없이 불안이 꼬리를 물었고, 그것은 내가 어떤 행동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행동은 소극적이게 되었고, 기분 나쁠 만한 일도 그냥 웃고 넘기는 일도 잦았다. 다행스럽게도 좋은 친구들을 만나 따돌림을 당한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 친구들도 처음에는 내가 너무 말을 안 해서 자신들이 너무 귀찮게 해서 싫어하는 게 아닌가 오해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낯을 가리던 나도 당당하게 나를 드러낼 때가 있었는데, 바로 게임을 할 때였다.

 남들이 나를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나를 드러낼 수 있었다. 게임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채팅으로 일상 이야기도 하고, 게임 공략에 관해 이야기도 했다. 가끔 모르는 사람이 게임 공략을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주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멋지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나이를 몰랐던 이들 중 나를 ‘누나’라고 부르던 사람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적도 있었다. 나는 게임 속 세상에서 어른스럽고, 도움이 되는 든든한 사람이었다. 그런 충족감이 들어 더욱 게임에 몰입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웹툰 <같은도장>의 주인공인 ‘최은별’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웹툰의 내용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방에서 게임만 하던 주인공인 ‘최은별’이 우연히 함께 게임을 하던 ‘강현우’가 다니는 검도 도장에 다니게 되면서 시작되는 성장 스토리이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과거와 마주한다. 그리고 마침내 과거의 자신을 떨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처음 웹툰을 보았을 때, 그림체가 귀여워서 별생각 없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1화에서 게임을 하면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은별이가 귀여웠고, 자신보다 어린 학생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겁먹고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이 안타까웠고, 어영부영 검도 도장에 등록했을 때는 어떻게 성장할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아는 동생을 응원하는 기분으로 웹툰을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웹툰을 보면서 느낀 점은 은별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이라는 점이었다. 은별이가 성장하기 위해 힘껏 발돋움할 때 옆에서 지지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일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웹툰 내의 이야기들을 모두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장면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혼자 하는 운동 아닙니다. 힘들다고 대충 하지 마세요. 대충 버티기만 해서는 끝나지 않습니다. 제대로 한 방 날려야죠. 지려고 시합 나가는 거 아니잖아요?"


 은별이 시합에 나가기 위해 공격연습을 하는 장면이다. 그때 은별은 ‘이푸른’이 ‘관장님’의 부탁으로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것만 같아 생각이 많아진 상황이었다. 그러니 공격연습에 집중하지 못하고, 금방 지쳐서 힘들어한다. 그런 와중에 관장님은 연습을 멈춰주지 않고 은별은 악으로 공격한다. 그제야 관장님은 연습을 멈추게 하고 은별에게 말한다.


 매사에 최선이고 열정적인 사람도 있겠지만, 보통 사람은 항상 최선을 다하지는 않을 것이다. 힘들고 지쳐서 이 순간이 넘어가기만을 기다리는 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라고 그런 적이 없겠는가. 처음에는 열심히 하고 의욕이 넘치지만, 그 노력을 이어가기엔 앞이 깜깜한 적도 많았다. 내가 이걸 해서 잘 될까 싶기도 하고, 최악의 상황만 만들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싶은 적도 있었다. 그런 나에게 관장님의 말은 마치 나를 따끔하게 혼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굳이 못 하려고 무언가를 하는 건 아니다. 그것이 일이든, 글이든,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든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남들보다 아주 뛰어나게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평소에도 무엇을 하든 보통은 하는 편이라 크게 노력을 기울여본 적이 없었다. 무언가를 잘하려고 노력하는 건 아주 힘든데, 못하는 일도 아닌 것을 힘들게 노력할 필요가 있나 싶었던 탓이었다. 그렇지만 그래서 어떤 것도 이루지 못했던 것 같다. 남들이 나에게 뭘 잘하느냐고 묻거나 뭘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우물쭈물하게 되었다. 이룬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입을 다물게 되었다. 결국은 관장님의 말대로 ‘지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삶에 있어 실패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삶의 끝에서 내 인생이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무엇이라도 힘내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만 제자리에 있단 말이야. 난 대체 왜 이 모양이야? 왜 난..."
"모든 사람이 완벽하다고 생각해? 다들 실패 없이 계획대로 사는 줄 아냐고. 나도 수도 없이 후회하며 살아. 그렇다고 다 포기하고 자기비하나 하고 있진 않는다고. 넌 바뀌려고 노력하고 있잖아. 걷는 속도는 다 다를 수밖에 없어."


 현우는 검도 도장에서 은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걸 도장에 있던 사람들이 들으면서 은별에게 시선이 몰렸고, 그 압박감에 은별은 쓰러진다. 쓰러진 은별을 친언니인 ‘은하’가 간호한다. 은하는 은별이 쓰러진 것을 걱정해 검도 도장을 그만두는 것이 어떠냐는 말까지 한다. 그렇지만 은별은 그건 싫다고 하며 여전히 변하지 않은 자신을 탓하고, 은하는 그런 은별에게 진지하게 조언한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나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친구는 계획을 짜고 그것을 자신이 생각하는 시간에 끝내는 성향이고, 나는 마감 시간만 정해두고 마감 시간 안에만 어떻게든 일을 끝내는 성향이다. 그래서 나는 계획을 짜고 그대로 실행하는 친구가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산다면서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충동적으로 어떤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계획을 맞추어 해내서 그 친구는 나보다 완벽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 친구와 함께 몇 년 전에 일본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친구가 시키는 대로 계획을 짰고, 친구는 그 시간대로 나를 챙겨주려고 노력했다. 친구는 몇 번 일본에 간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예기치 않게 계획을 지키지 못하고, 예약한 숙소까지 갈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게 되었다. 나는 살면서 친구가 그렇게 얼이 나가서 어쩔 줄 모르는 걸 처음 봤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침착해져서 역무원과 영어로 어떻게든 소통하고, 숙소에 전화도 넣었다. 어찌어찌 우리는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고, 다음 일정은 차근차근 잘 진행할 수 있었다. 나보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숙소에서 자신이 우왕좌왕할 때 내가 정신을 차리고 잘 이끌어줘서 다행이라고 말했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완벽한 줄 알았던 사람도 실수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날 나는 그 실수를 우연히 본 것이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확인하고 하지 않고는 매우 큰 차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후 일정을 차근차근 잘 진행하는 친구를 보면서, 또 그런 상황이 있을까 봐 무서울 법도 한데 함께하는 여행을 위해서 노력하는구나 싶었다. 아마 친구가 그 하루의 실수에 겁먹고 계획을 더 느슨하게 만들었다면 나는 많은 것을 보고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친구에겐 내가 있어서, 나에겐 친구가 있어서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지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 웹툰은 기분 좋은 우연이 겹쳐 은별이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렇지만 그것은 정말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현우가 게임 속의 은별과 친해진 것도, 은하가 은별을 아끼는 것도, 관장님이 은별을 도와주려고 하는 것도 모두 은별의 행동이 있었기 때문이니까. 그래서 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은별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개한 내용 외에도 귀여운 로맨스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건 이 웹툰을 앞으로 읽게 될 사람을 위한 즐거움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말하고 있는 건 은별의 성장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자신의 껍데기를 깨고 나아가는 이 기분 좋은 작품을 읽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은별의 주변에 있던 좋은 사람들처럼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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