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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방 Sep 01. 2023

<제35화> 여포와 초선

여포가 정원의 머리를 베어 동탁에게 바치자 동탁은 여포를 기도위로 삼고 매우 아끼고 신임했으며 부자의 서약을 맺었다고 <여포전>에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동탁이 여포에게 항상 자신이 거처하는 내실의 작은 문인 중합(中閤)을 지키는 경호임무를 맡도록 명했는데 여포가 동탁의 시녀와 사통 하면서 발각될까 두려워하여 여포의 마음이 항상 불안했다고 합니다. 결국 여포는 왕윤에게 설득되어 동탁을 죽였고 왕윤은 여포를 분무장군에 임명하고 즉결처분권을 증명하는 가절을 주며 최고위직인 삼공과 같은 의례로 대하고 온후로 작위를 봉하여 함께 조정의 정치를 맡는 자리로 출세시켰습니다.      


초선은 동탁이 죽은 후 어찌 되었던 것인가요? <동탁전>에는 초선이 전혀 등장하지 않으며 <여포전>에는 동탁의 시녀를 여포가 좋아했다는 구절만 등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최고의 미인을 표현하는 ‘침어낙안, 폐월수화’의 8자에는 4명의 미인이 등장합니다. 침어(沈魚)는 완사강에 비친 모습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가라앉게 만들었다는 춘추전국시대 구천의 여인인 서시를 말하고, 낙안(落雁)은 하늘을 날던 기러기가 변방에 끌려간 여인의 슬픈 금(琴) 소리에 이끌려 날갯짓을 잊고 땅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는 한나라의 미인 왕소군, 수화(羞花)는 미모가 꽃을 부끄럽게 했다는 당현종의 며느리에서 귀비가 되었던 양귀비를 말하지만 폐월(閉月)이라고 달이 초선의 미모에 숨어버렸다는 극찬을 받았던 삼국시대의 초선은 실제가 아닌 상상 속의 존재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동탁의 비녀와 사통한 여포가 동탁에게 발각될까 두려워하자 왕윤이 이를 빌미로 여포에게 동탁을 죽이라고 꼬드겼다는 기록만 남아있지만 수백 년 동안 많은 작가들은 이 짧은 구절의 이야기를 가지고 상상의 날개를 펼쳐서 수많은 스토리를 남겨놓았습니다.     

 

명나라 <삼국지연의>의 전단계인 원나라 시대의 잡극 <금운당에서 연환계를 몰래 구상하다>에서는 초선이  자신의 신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 사람이 아니라 흔주 목이촌 사람으로 임앙의 딸이며 아명은 홍창이라 하옵니다. 한나라 영제께서 궁녀를 선발했는데 제가 눈에 들어 황궁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초선관을 관리하는 자리에 올랐는데, 그때부터 초선이라 불렸습니다. 영제가 저를 정원에게 내려주었는데, 정원은 수양아들인 여포에게 저를 짝으로 내려 주었습니다. 훗날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저희 내외는 전쟁통에 헤어지고 말았는데 지아비의 행방을 알 수 없었습니다. 제게 두 번째 인생을 선물해 준 그 은혜를 어찌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어제 부인과 길거리를 살피던 중 머리를 흔들며 당당하게 걷는 무리를 보았는데, 적토마 위에 탄 분이 여포였습니다.”     

원나라 시대의 이야기 공연 장르의 대본인 <삼국지평화>에 등장한 초선의 모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동탁이 궁에서 황제의 네 명의 비빈을 보고 시시덕거리며 희롱하자 재상 왕윤은 화를 참지 못하고 몰래 혼잣말을 하였습니다. ”천하에 주인이 없구나. “

왕윤은 집으로 돌아와 뒤쪽 화원으로 들어가 우울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한 여인이 향을 사르는 자태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여 가장을 만날 수 없다고 중얼거렸습니다. 왕윤은 마당에 나가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왜 향을 사르고 있느냐? 내게 사실대로 말해다오. “

초선은 깜짝 놀라 얼른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녀는 감히 숨기지 못하고 사실대로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본래 성이 임 씨이고 어릴 적 이름은 초선으로 제 지아비는 여포입니다. 임조부에서 헤어진 뒤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향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

왕윤은 초선의 미모를 보고 몹시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한 나라 천하를 편안하게 할 사람은 바로 이 여인이로다! “

그러고 나서 금은보화와 비단을 초선에게 주었습니다. 초선은 감사 인사를 하고 물러났습니다.      


며칠 후 왕 승상은 태사 동탁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고 술 취한 동탁에게 초선을 주기로 약속하였습니다. 

 다음날 왕 승상은 이어서 바로 여포를 초청하여 연회를 열었습니다. 다시 초선을 연회 자리에 불러 노래를 부르게 하였습니다. 여포가 초선을 보고 자신의 헤어진 부인이라고 말하였고 왕 승상은 여포에게 돌려보낼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며칠 후 왕윤은 말 네 필이 끄는 수레에 초선을 태워 동탁의 태사부에 보냈고 그날 밤 동탁은 초선과 술을 마셨습니다. 여포는 낭랑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듣고 시종들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시종들이 왕윤이 초선이라는 여인을 데려왔다고 말했습니다. 여포가 깜짝 놀라 회랑 아래까지 갔으나 초선을 만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초선이 옷깃을 풀어헤친 채 나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여포가 불같이 화를 내며 물었습니다. 여포는 칼을 들로 방 안으로 들어가니 동탁이 코를 고는 소리가 우레와 같았고 누워 있는 몸집은 산더미 같았습니다. 여포가 단칼에 동탁의 목을 베자 선혈이 샘처럼 솟구쳤습니다. 여포는 다시 동탁을 찔러 숨을 끊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정의로운 인물인 우국지사 왕윤이 부부 사이인 초선과 여포의 사이를 악용하는 비도덕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단점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동탁과 여포 모두 왕윤이 펼친 계략인 연환계 속의 미인계에 걸려들었습니다. 여포는 초선을 의부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에 분노하였고, 동탁 역시 양자가 자신의 애첩을 계속 흘깃거리며 쳐다보니 그 마음이 불편하였습니다. 점차 두 사람의 관계는 서먹해지고 여기서 초선은 신들린 연기를 선보입니다.      

여포는 동탁이 자리를 비운 틈에 몰래 후당으로 들어갔는데 초선과는 후원인 봉의정에서 만나기로 약조한 상태였습니다. 잠시 뒤 초선이 울음을 터뜨리며 여포에게 입을 열었습니다.

”소첩은 비록 사도 왕윤의 친 여식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장군을 뵌 이래로 장군 곁에 머물면서 보필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동 태사께서 나쁜 마음을 품고 소첩을 희롱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금 당장 죽지 못하는 것이 억울할 뿐이옵니다. 이제 장군을 뵈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더럽혀진 몸으로 영웅을 다시 모실 수 없는 노릇이지요. 다만 소첩의 뜻을 밝히고자 장군 앞에서 목숨을 끊으려 합니다. “

 말을 마치자 초선은 연꽃이 가득 핀 연못으로 뛰어들려고 하였습니다. 그 모습에 놀란 여포가 달려들어 초선을 품에 안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네 마음을 내 이미 일고 있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것이 원망스럽구나! “

초선은 손으로 여포를 끌어안으며 말했습니다.

”소첩이 이번 생에서는 장군의 아내가 되지 못했으니 부디 다음 생을 기약하려 합니다. “     

하지만 동탁이 나타나 노발대발하며 여포를 향해 창을 휘두르자 여포는 놀라 잽싸게 도망가자 홀로 남은 초선은 이번에는 전혀 다른 ‘연기’를 펼칩니다.

 동탁이 초선을 불러 물었습니다.”

“네가 여포와 사통한 것이더냐?”

“소첩이 후원에서 꽃구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여포가 들이닥쳤습니다. 놀란 소첩이 피하려고 했는데 여포가 자신은 태사의 아들이니 피할 이유가 뭐 나고 하며 화극으로 위협하더니 봉의정으로 저를 억지로 끌고 갔습니다. 소첩이 연못으로 뛰어들어 자결하려고 하자 억지로 여포가 품에 끌어안았습니다.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순간에 동 태사께서 오셔서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내 지금 너를 여포에게 준다면 어떻게 할 테냐?”

그 말에 초선은 크게 놀라더니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소첩은 이미 귀인을 모신 몸인데 갑자기 여포에게 주시겠다뇨!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음으로 이 모욕을  씻으렵니다! “

초선이 순식간에 벽에 걸린 보검을 잡고 자결하려고 하자 동탁은 보검을 뺏고 초선을 품에 안았습니다.

”내 너를 놀린 것이다! 내 내일 너와 함께 미오성으로 가서 즐거움을 함께 누릴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

곁에서 상황을 바라보며 동탁의 책사인 이유는 초선의 치밀한 이간책으로 초선의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동탁과 여포의 치정극의 결말을 내다보면서 긴 한숨을 내뱉었습니다.

”한낱 여인의 손에 내 목숨이 달렸구나. “      

현대에 출판된 <삼국연의사전>에 수록된 ‘관우, 초선을 베다’에서는 미색을 밝히지 않는 관우가 초선에게 마음을 빼앗긴 유비와 장비를 보며 초선 때문에 형제간의 의리가 상할 수 있다는 생각에 초선을 제거할 결심을 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초선은 관우가 칼을 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겁에 잔뜩 질렸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비를 맞고 있는 한송이 목련꽃, 바람에 흩날리는 버들잎처럼 애처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초선의 모습을 차마 바라볼 용기가 없었던 관우가 두 눈을 감았는데, 청룡언월도가 그만 관우의 손에서 미끄러지더니 초선의 몸 위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희대의 미인 초선은 관우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

로 기록되었습니다.      


원나라 잡극 <관우 대왕이 달 아래서 초선을 베다>라는 작품에서는 조조가 관우의 투지를 꺾고 도원 삼 형제의 의리를 깨기 위하여 초선을 관우에게 내렸으나 대의를 쫓는 관우는 청룡도로 초선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원나라 잡극인 <금운당에서 연환계를 몰래 구상하다>라는 작품에서는 동탁을 주살한 후 여포는 초선과 결혼하여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내용이 있고 또 다른 전설에서는 관우의 손에서 벗어난 초선은 형주에 흘러 들어갔다가 겸손하고 진중한 성격의 맹장 조자룡에게 시집을 가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 <삼국>이라는 작품에서는 조정에서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시켜 한 황실을 위해 큰 공을 세웠다고 관우가 초선의 비범함을 높이 평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조의 손에 떨어져 불행한 삶을 살던 초선이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기둥에 목을 매 자결했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는데 이는 작가가 고대의 전통 윤리와 현대 윤리 중간쯤에서 이야기를 끌어간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서시, 왕소군, 양귀비는 모두 역사적 실존 인물로 객관적 사실을 담은 풍부한 스토리가 존재하지만 초선은 동탁의 시녀로 초선관을 관리하는 직책명으로만 등장하는 이름만 남아있는 인물이다 보니 수많은 작가들이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 다양한 버전의 이야기로 다채롭게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초선은 정사에 나타난 역사적 팩트인 삼국지 최고 빌런인 동탁을 제거하도록 여포에게 동기를 부여한 삼국지 핵심 캐릭터로 영원히 살아남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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