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의와 제갈량의 대결은 234년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으면서 끝이 났습니다. 제갈량보다 나이가 두 살이 더 많은 사마의는 17년을 더 살면서 제갈량 없는 세상을 뒤흔들어놓고 자신의 왕조의 기반까지 세운 다음 세상을 하직한 것입니다. 제갈량과 사마의 두 고수의 대결은 어떠한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231년 2월 제갈량이 기산으로 출병하자 위나라는 비상 상황이 되었습니다. 대사마 조진은 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하였고 조예는 형주에 주둔하고 있는 사마의를 불러 서부 지역을 부탁하였습니다. 서쪽 장안으로 가서 옹주와 양주 2개 주의 군대를 총괄하도록 하였고 장합, 비요, 대릉, 곽회, 두습 등이 참여하였습니다. 사마의는 먼저 비요와 대릉에게 4천의 병사를 주어 상규를 방어하도록 하고 나머지 병력은 기산에 포위된 위군을 구원하려 출발하였습니다.
사마의의 대군이 출동했다는 소식을 들은 제갈량은 군대를 둘로 나누어 방어를 맡은 군대는 기산 남북에 영채를 구축하여 노성의 위군들을 포위하도록 하였고 제갈량은 직접 공격부대를 이끌고 상규의 위군을 공격하였습니다. 상규의 곽회와 비요가 대항하였으나 제갈량의 부대는 모두 격파하였습니다. 사마의의 본대가 밤을 낮 삼아 달려왔을 때 제갈량의 군사들을 밀밭에서 밀을 베고 있었습니다. 사마의의 병사들이 도착하자 촉군은 일단 밀밭에서 물러나 진을 치고 대응하였습니다. 두 병력이 마주친 곳은 상규성 동쪽이었고 두 사람이 실제 전투에서 마주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사마의는 우금을 시켜 기병을 거느리고 제갈량을 유인하도록 시켰습니다. 약간의 접전이 있었으나 대치 상태가 이어졌고 제갈량은 기산으로 철군하였습니다. 위군을 유인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장합은 만류했지만 사마의는 추격하여 기산의 노성에 이르렀습니다. 제갈량은 기산의 북쪽 성책에 본영을 설치했고 남쪽은 왕평에게 맡겼습니다. 도착한 사마의는 자신은 본대를 공격하고 장합에게 왕평이 있는 남쪽을 공격하도록 명했습니다. 사마의가 본진을 공격하자 제갈량은 위연, 고상, 오반 등의 장수에게 사마의 군을 요격시겼고 촉의 장수들은 위군 3천여 명의 수급을 베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사마의와 제갈량의 첫 접전은 제갈량의 완승으로 끝났습니다.
제갈량은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대치기간이 길어지자 군량 부족이 점점 문제가 되었습니다. 군량 공급을 맡은 이엄은 군량 공급의 불가능함을 이유로 회군을 요청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제갈량은 후퇴를 결정하였습니다. 제갈량의 군대가 철수하자 사마의는 장합에게 추격을 명하였습니다. 장합이 반대하였습니다.
“병법에 돌아가는 군대를 추격하지 말라 했소.”
장합의 반대에도 사마의는 추격을 명하였습니다. 제갈량은 후퇴하면서 복병을 설치하였고 목문에 이르렀을 때 숨어있던 궁노수들이 나타나 활과 쇠뇌를 어지럽게 쏘아댔습니다. 장합은 온몸에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장합의 나이 거의 70이었습니다.
진서의 기록에는 정반대로 사마의가 제갈량의 성책을 공격해 제갈량이 초저녁에 달아났고 사마의가 추격하여 무찌른 촉군의 수가 1만 명에 달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지의 기록과 서로 배치되는데 목문에서 장합이 전사한 것으로 보아 제갈량 군의 승리가 더 타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제갈량은 유리한 전황에서 식량 문제로 철군하였는데 성도에 있던 유선은 제갈량의 승전보가 도착한 지 얼마 안 돼 제갈량이 철군하니 궁금하여 이를 한중에 있는 이엄에게 질문하였고 이엄은 거짓으로 유선에게 보고하였으나 시시비비를 가린 제갈량은 식량책임자인 이엄을 해임하고 대신 아들인 이풍을 승상부로 불러 중랑참군을 맡기었습니다.
234년 제갈량은 10만의 대군으로 야곡으로 다시 출병하였습니다. 사마의는 부하 장수들에게 “제갈량이 무공현 동쪽으로 진군하면 두려운 일이지만, 서쪽으로 물러나 오장원에 주둔한다면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오.”라고 예측하였는데 조심스러운 제갈량은 오장원 위에 주둔하였습니다. 사마의는 일단 장군 주당을 시켜 미끼 병력으로 유인하였으나 제갈량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마의는 옹주자사 곽회를 양수에 주둔시켜 북쪽 평원을 방어시키자 촉군이 위수를 넘어 북쪽 평원으로 몰려왔습니다. 양군은 들판에서 격렬하게 전투를 벌이다 촉군은 다시 오장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제갈량이 평원의 서쪽을 공격하자 양수의 수비 장수들이 군대를 나누어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곽회가 홀로 반대하였습니다. 제갈량이 위군이 나누어 지기를 기다렸다가 양수의 수비가 약해지기를 기다려 공격하려는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곽회의 통찰로 인하여 결국 제갈량의 계획은 실패로 끝났고 오장원의 대치 상태는 길어졌습니다.
제갈량은 여러 번 사마의에게 도전장을 보냈으나 사마의는 맞서 싸울 생각이 없었습니다. 촉군은 원정을 온 객병이었고 오래 버틸수록 안방에서 싸우는 위군에게 유리하였습니다. 제갈량은 사마의에게 수치심을 주기 위하여 도전장과 함께 여자들의 머리장식과 노리개 등을 함에 넣어 보냈습니다. 제갈량의 도발에 많은 장수들이 분노하였고 젊은 장수들은 사마의를 비웃기까지 하였으나 사마의는 노한 시늉만 하면서 조정에 표를 올려 결전을 허락해 달라는 모습만을 보였습니다. 조예는 출전을 허락하지 않았고 꼬장꼬장한 신하 신비를 보내 군대의 출전을 제지하는 역할을 맡겼습니다.
사마의는 군량을 담당하는 직무인 탁지상서를 맡은 동생 사마부에게 편지로 상황을 설명하였습니다.
“제갈량은 뜻은 크나 기회를 만나지 못했고, 책모는 많으나 결정하는 바가 적다. 병법을 좋아하나 임기응변의 권도가 없으니 비록 10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있다 할지라도 이미 나의 계책 안에 떨어졌으니 필히 격파될 것이다.” 제갈량 군은 10만 남짓이었으나 사마의의 군은 20만을 넘는 병력이었습니다. 적장 사마의의 군대의 통제와 방어벽에는 빈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갈량은 촉의 승상이 되고 나서 모든 일을 꼼꼼하게 챙겼습니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려다 보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온종일 땀을 흘려가며 일해도 시간이 부족하였습니다. 워낙 촉에 인재가 부족하다 보니 실무진의 일처리가 미덥지 못하였고 막중한 책임을 맡았으니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작용하였습니다.
사마의는 촉의 사자가
“제갈공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침상에 드십니다. 곤장 20대 이사의 형벌은 다 친히 참관하십니다. 식사를 하시는 양은 한 달에 몇 되를 넘기지 않습니다.”
사자가 돌아간 뒤에 사마의는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고 말했습니다.
“제갈량은 머지않아 죽겠구나. 먹은 것은 적고 일은 분주하니 어찌 몸이 오래 버틸 수가 있겠는가?”
사마의는 제갈량보다 2살이나 위였지만 타고난 건강 체질이었습니다. 사마의는 느긋한 자세로 변화를 기다렸습니다. 양군이 서로 대치한 지 100여 일이 지난 8월 제갈량의 병세가 악화되었습니다. 제갈량은 군대에 군량이 다 떨어져 가고 대안이 없게 되자 근심하고 분노하다가 피를 토하였습니다. 때마침 붉게 빛나는 혜성하나가 동북쪽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흐르다가 제갈량의 군영에 떨어졌는데 3번 떨어지고 2번 되살아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날 밤 제갈량이 군중에서 죽었습니다.
사마의는 혜성이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제갈량의 군영에 떨어지면서, 촉군이 군영을 불사르고 철병했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촉군은 급히 추격하였습니다. 사마의가 이끄는 추격부대가 촉군의 후미를 따라잡자 가장 후방에 있던 강유가 이를 양의에게 알렸습니다. 양의는 군대의 진격 방향을 돌리는 신호기를 올리고 전군에 공세를 취하도록 하였습니다. 사마의는 아차 싶었습니다. 함정에 빠진 것으로 착각한 사마의는 군대를 돌려 도주하였습니다. 이후 사마의는 감히 촉군이 접근하지 못하였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사마의는 불에 타나 남은 촉군의 영채와 보루를 점거하고 제갈량이 설치했던 군영과 보루 및 처소를 자세히 살펴보고 말했습니다.
“천하의 기재로구나!”
사마의는 제갈량의 군영에 축적되어 있는 제갈량의 도서들과 양곡을 매우 많이 획득하였습니다.
신비가 아직 제갈량이 죽었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주장하자 사마의는
“군대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군대의 서신과 비밀계획, 병마와 양곡을 지금 여기에 다 버리고 떠났습니다. 어찌 사람이 그의 오장육부를 다 덜어내고도 살아있을 수 있겠습니까?”
촉군은 후퇴하면서 위군의 추격을 어렵게 하려고 길에 철질려를 많이 뿌려놓았고 사마의는 군사 2천명에게 연한 재료로 만든 밑바닥이 평평한 나막신을 만들어주고 앞장서서 가게 하였습니다. 철질려가 나막신에 박혀 모두 제거된 후에 병사들을 일제히 진격하는 방식으로 추격하였습니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죽고 촉군 내부에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를 기회로 진격하여 촉을 멸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조예는 조서를 내려 회군을 명하였습니다. 아직 촉이 멸망할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고 보았던 것이었으며 이는 조예의 정확한 형세판단이었습니다.
사마의는 제갈량의 최후의 공격을 막아낸 공로를 인정받아 이듬해인 235년 삼공 중에서 최고의 지위인 태위로 승진하였고 봉읍도 크게 증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