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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방 Jul 31. 2023

<제22화> 제갈량의 후계자 영순위

제갈량은 살아생전에 후주 유선에게 표를 올려 비밀리에 자신의 후계자를 추천하였습니다.

“신에게 만약 불행한 일이 생기면 뒷일은 마땅히 장완에게 맡겨야 합니다.” 

제갈량의 병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후주 유선은 상서복야 이복을 보내 제갈량에게 나라를 위한 계책을 자문받게 하였습니다. 이복은 며칠 동안 제갈량과 이야기를 나눈 후 성도로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제갈량이 말했습니다.

“그대가 다시 돌아온 이유를 알고 있소. 며칠 동안 하루종일 이야기를 나눴지만 말을 미처 다하지 못했으니 다시 와서 결론을 듣고 싶은 것 아니겠소? 내 뒤를 이을 사람은 장완이오.”

이복이 사죄하고 물었습니다.

“일전에 확실히 가르침을 받았어야 했는데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청컨대 장완 다음에는 누가 뒤를 잇는 것이 좋은 지 가르쳐 주십시오.”

“장완 다음에는 비의가 적합하오.”

이복이 비의 다음을 물었지만 제갈량은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제갈량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후주 유선에 의하여 장완은 촉의 행정을 맡은 상서령이 되었고 점차 승진하였습니다. 상서령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군대의 업무를 주관하는 도호를 겸직했고 황제의 권한을 대행하는 가절을 받았고 촉한이 위치한 익주의 책임자인 익주자사 직까지도 겸임하게 되었습니다. 군국의 대사가 다 장완의 수중에 주어졌습니다. 명실상부하게 촉의 1인자의 위치에 오른 것이었습니다. 유선은 장완의 명성이 제갈량에 미치지 못하였으므로 차츰차츰 장완의 존재감을 부각해 나간 것이었습니다. 제갈량은 장완의 어떤 점을 보고 그에게 중임을 맡긴 것일까요? 

    장완은 호남성 상향 사람으로 훗날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증국번과 동향인 사람입니다. 삼국시대에는 형주 무릉군 출신입니다. 유비가 형주에서 조조와 대항할 때 장완은 유표 휘하에서 형주 주정부의 서좌라는 낮은 지위의 관리였습니다. 그는 유표가 죽고 유종이 조조에게 투항하자 유비를 선택하여 익주로 따라와서 광도현 현장으로 임명받았습니다. 광도는 촉의 수도인 성도에서 서쪽 30리에 위치한 현이었습니다. 


 광도현의 현장으로 있으면서 과거 방통이 유비에게서 뇌양현 현령직을 맡았을 때와 똑같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재능에 자신 있는 유능한 관리가 가진 자신감의 표현으로도 보입니다. 일상적인 임무를 하지 않고 술만 마시고 잠만 자는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유비가 익주목으로 현장을 순시하다가 장완을 발견하고 크게 노하여 현장직을 파면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당시 분위기로는 사형도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제갈량이 소식을 듣고 장완을 구하기 위하여 급히 달려갔습니다. 과거 방통은 노숙의 추천장을 숨기고 유비를 시험하다가 노숙과 제갈량의 추천장을 유비에게 보여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적이 있었지만 장완은 아직 유명인사가 아니었고 노숙처럼 추천해 줄 명사도 없었습니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달려가 장완을 위하여 인정을 베풀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훗날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유비에게 방통을 소개하며 ‘1백 리를 다스릴 작은 재목이 아니다’라는 말은 정사에서는 장완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제갈량은 장완이야말로 사직의 기둥이며 나라를 맡길 큰 인재라고 극찬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비는 장완을 술꾼 정도로 생각하고 한두 해를 살려만 두었다가 겨우 십방현의 현령 자리에 임명하는데 그쳤습니다. 나중에 유비가 한중왕이 되면서 중앙 정부로 불러 상서랑에 임명했지만 그 자리는 보통 젊은 사람이 임명되는 자리로 초임 관리인 낭중에서 단지 1년이 지나면 상서랑으로 오르는 자리여서 장완은 그저 광도현 현령 시절에 유비의 눈밖에 난 것을 원망할 뿐이었습니다. 유비가 황제에 오르면서 제갈량은 승상이 되었고 비로써 장완에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말단 관직인 상서랑에서 승상부 동조연으로 전격 발탁하였는데 이 자리는 인사 담당 책임자의 자리였습니다. 장완은 이 요직에 대하여 자신의 학문이나 도덕적 수준이 부족하다며 요화, 유옹, 음화, 방연 등을 추천하면서 사양하였습니다. 장완이 이제는 자신을 낮추는 성숙한 인품도 갖추게 된 것입니다. 

  제갈량은 장완에게 자신을 낮추면서 자리를 사양하지 말아 달라면서 “

다른 사람이 이 일을 맡으면서 감정적인 얽매임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비밀을 유지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으며, 왜 그런 인물을 뽑았는지 전혀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뽑아놓곤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나는 그대가 동조연 자리를 맡아주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이 일을 잘 수행하여 백성들에게 이 일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동조연의 지위가 깨끗하고 귀한 자리라는 사실을 알게 해 달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장완은 승상부의 동조연으로서 맡은 일을 잘 수행하였습니다. 제갈량은 출사표에서 장완과 곽유지, 비의, 동윤 등을 거명하면서 “곧고 선하여 죽도록 절개를 지킬 신하”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동조연은 조조 밑에서 최염과 모개 등이 맡아서 공정하게 처리하여 명성을 쌓았던 자리였습니다. 이어서 장완은 제갈량이 10만 병사를 이끌고 한중을 주둔하였을 때 후방 사무를 담당하였습니다. 장완은 후방의 보급업무를 잘 처리하였습니다.  

 제갈량이 죽자 장완은 상서령에 임명되었는데 이 자리는 겉으로는 황제의 비서실 관장에 불과하지만 실제 권한은 삼공과 구경의 상소문을 비준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제갈량이 장완을 천거했지만 아직 장완의 존재감은 이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후주 유선은 장완을 상서령으로 삼았지만 바로 제갈량의 직무를 계승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장완의 원래 직책이 무군장군으로 지위가 너무 낮았고 서서히 승진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선 상서령에서 영익주자사로 승진시키고 다시 대장군 녹상서사로 특별 승진시킨 다음에 안양정후로 제후에 봉하였습니다. 녹상서사는 전한의 한무제가 나이 어린 태자를 곽광에게 부탁하면서 녹상서사로 임명하면서 처음 역사에 등장한 막강한 자리입니다. 이어서 행도호에 임명하였는데 도호는 군대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자리였고 ’ 가절‘은 황제의 홀인 ’ 절‘을 잠시 그에게 맡겨서 천자를 대신하여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의미로 군대를 통제하고 대관에 대한 임면권을 갖도록 허락한다는 막중한 권한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거기에다 익주자사의 임무도 겸임시켰는데  익주가 촉한의 모든 지역임을 감안하면 촉의 중요한 요직들을 장완이 겸임한 것입니다.     

 

장완의 인품을 알 수 있는 일화로는 

동조연 영희의 평소 성품이 장완과 이야기하면서도 늘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이를 문제 삼자 장완이 말했습니다. 

“앞에서는 따르고 뒤에서 나쁜 말을 하는 것은 선인들이 경계하는 바였습니다. 양희가 내 생각을 옳다고 찬성하면 그의 본심이 아니고 내 의견에 반대하면 내 잘못을 드러내기 때문에 잠잠히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양희의 좋은 태도입니다.”라고 말하였고

  독농 자리의 양민이라는 자가 장완을 헐뜯으면서

“장완은 일 처리가 모호해 진실로 앞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한다.”라고 비판하자 장완은 

“나는 확실히 앞사람만 못하므로 추궁할 만한 게 없습니다.”

나중에 양민이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옥에 갇히자 사람들이 장완이 과거 일로 보복하여 양민이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며 두려워하였습니다. 장완은 개인적 감정에 따라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양민은 중죄를 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장완은 제갈량 이후의 실질적인 촉의 1인자였습니다. 삼국지연의에는 강유를 제갈량의 후계자로 설정하였지만 강유가 위나라에서 귀순한 출신 배경 등을 감안하면 강유가 제갈량처럼 촉의 대군을 지휘하기에는 무리가 따랐습니다. 장완은 실제 전투는 강유가 담당하고 장완은 대군을 이끌고 강유를 후원하는 형태의 북벌을 구상하였습니다. 강유가 전투에서 승리하면 장완이 해당 지역을 점거하면서 후방 지원업무를 계속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갈량이 고민하였던 수군을 이용하여 과거 맹달이 있던 상용을 통하여 위를 공격하는 방안도 고려하였지만 이후 장완의 질병이 재발하였고 패배하였을 경우의 대비책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병이 심해지자 장완은 상서령 비시를 자신의 후임으로 추천하였습니다. 장완은 24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담으로 장완은 제갈량과 주고받은 편지가 상당하였습니다. 제갈량이 “강유는 이릉 대전에서 전사한 마량 이상의 재능을 가진 양주 최고의 인물”이라고 칭찬하는 글도 장완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긴 내용이었습니다. 마속이 제갈량에 의하여 참형을 당하기 전에 마속의 재주를 아까와하며 구명하였던 인물 중에 장완도 포함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속은 처형되었습니다.      


  제갈량이 자신의 후임으로 촉의 수많은 명사들 가운데 장완을 선정한 이유는 그의 넓은 도량과 탁월한 업무처리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엄이 보급에서 제갈량의 속을 태웠지만 장완은 보급의 1인자였습니다. 한고조 유방이 보급의 소하를 전투의 한신보다 높게 평가하였고 애플의 잡스도 물류의 팀 쿡을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장완은 제갈량 없는 촉에서 중심을 잡고 나라의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후주 유선도 점차 장완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장완의 수명이 좀 더 허락되었다면 강유와 협력하여 2인3각으로 새로운 삼국지를 써내려 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은 거기까지였고 장완은 자신의 후임으로 제갈량이 예정한 대로 비의를 추천하였습니다. 하지만 비의는 위의 첩자에 의하여 암살되었고 비의의 후임은 제갈량의 추천 명단에 없었습니다. 비의가 사라지면서 환관 황호가 촉의 핵심인물이 되었고 촉의 국운도 급격하게 기울어져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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