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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방 Aug 28. 2023

<제32화> 촉의 멸망

손권은 관우를 219년 형주에서 죽인 후 후환이 두려워서 책임을 조조에게 돌리려고 관우의 목을 위나라에 보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장비의 부하인 범강과 장달은 221년 장비를 죽인 후 목을 들고 오나라로 투항하였습니다. 유비는 223년 백제성에서 사망하였고 40년 후에 촉의 유선은 263년 종회에게 항복함으로써 촉한은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과정은 어떠했을까요? 

 

249년 사마의는 고평릉의 사변으로 위나라의 실권을 장악하였고 251년 사망하였습니다. 장남 사마사가 대장군이 되었으나 255년 사망하여 사마소가 권력을 장악하였습니다. 촉의 대장군 강유가 여러 번 변경을 침입해 왔으므로 거슬렸던 사마소는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촉국 정벌을 결정하였습니다. 전장군 등돈이 “강유는 여러 차례 중원을 쳐들어와 우리의 피해가 막심하여 방어하기에도 힘이 부친 판입니다. 헌데 촉국을 취하려 하십니까? 촉국은 지세가 매우 험난한 곳으로 깊이 쳐들어가면 잇속이 없이 화만 자초할 것입니다.”라며 반대하였습니다. 사마소는 “내가 정의의 군사를 일으켜 무도한 유선을 치려하는데 전장군이 무슨 망발을 하는가? 이 자의 목을 베어라!” 사마소가 등돈의 목을 베니 더 이상 반대하는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사마소는 “내가 정벌을 쉰 지도 6년이 되었다. 군사를 조련시키고 군수물자를 저축하여, 오 촉을 정벌하는데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서촉은 성도에 8~9만, 변방에 5~6만, 강유의 둔전군이 6~7만에 불과하다. 내가 이미 등애에게 명하여 강유를 붙잡으라 하였고, 종회에게 관중 정병을 이끌고 한중을 공략하라 명하였다. 촉주 유선은 어리석은 자라 변방의 성이 패하면, 아녀자나 선비처럼 떨다가 끝내 자멸할 것이다.”라고 승리를 자신하였습니다. 

 

소제가 사마소에게 간언 하였습니다. “종회에게 10만 대병을 주어 서촉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종회는 뜻이 큰 사람이라 대권을 몰아주어사는 안됩니다.” 

하지만 사마소는 “나 사마소도 그 부분을 잘 알고 있다. 모든 대신들이 강유를 두려워하지만 종회는 두려움 없이 서촉을 칠 것이므로 반드시 서촉을 무찌를 것이다. 만일 승리한다면 병사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일을 생각하지 타지에서 모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는 절대로 다른 곳에 알리지 마라.”

라고 하자 서제는 사마소의 전략에 감탄하며 절하고 물러났다 합니다. 

 

사마소는 전국에서 병사 18만 명을 징발하여 원정군을 편성하였습니다. 종회에게 원정군의 지휘권을 맡기고 10만의 대군으로 낙곡을 통하여 촉의 한중으로 진격하게 명했습니다. 등애와 제갈서에게는 각자 3만의 병력을 이끌고 등애는 적도에서 답중에 주둔하고 있는 강유를 공격하게 하고 제갈서는 기산에서 무위로 진군하여 강유의 퇴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종회는 감군 위관, 호군 호열, 대장 전속, 선봉장 허의와 방회 등 용맹한 장수들과 함께 대군을 이끌고 출정하며 허저의 아들 아문장 허의에게 마병 5천과 보병 1천을 주어 선봉을 맡기고 사곡으로 나가라 하면서 길을 정비할 것을 명하고 10만 대병을 이끌고 허의의 뒤를 따라 전진하였습니다. 그러나 허의가 만들어 놓은 다리에 구멍이 뚫려 종회가 탄 말이 빠져 위험에 처하자 종회는 부실공사의 책임을 물어 바로 허의를 참수하였습니다. 개국공신인 허저의 아들 허의가 용서받지 못하자 군영 내에서는 두려워 떨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사마소는 등애와 제갈서에게는 강유를 답중에 붙잡아 놓으라고 명했는데 강유는 이미 백수로 물러났습니다. 이에 등애는 비상한 수단으로 초전의 실패를 만회하려고 하였습니다. 정예병으로 샛길을 통하여 성도로 진군하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등애는 제갈서에게 동행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제갈서는 거절하였습니다. 제갈서는 등애와의 합동작전을 거부하고 종회에게 합류했으나 종회는 단독으로 지휘하기를 원했으므로 제갈서가 나약하다고 보고를 올리고 제갈서를 해임한 다음 함거에 실어 낙양에 소환시키고 제갈서의 군대를 자신에게 소속시켰습니다. 종회의 무고 덕분에 제갈서는 살아남을 수 있었고 훗날 진나라에서 태상과 위위까지 승진하였습니다. 

 

등애는 절벽을 만나자 모포로 몸을 감고 급경사를 굴러 촉군의 예측을 벗어나 갑자기 출현하여 마막의 진영을 기습하여 항복을 받아내었습니다. 등애군은 촉의 마지막 방어선을 지키는 제갈첨을 마주하였으나 제갈첨은 제갈량의 아들이라는 명성만 있을 뿐 실전경험이 전무한 장수였습니다. 등애가 제갈첨의 군대를 면죽에서 대파하자 촉의 유선은 항복하였습니다. 후주 유선이 항복하고 유선의 주문을 받은 장현이 강유를 찾아가 항복하라는 후주의 칙령을 전하자 강유의 군대는 분기 탱천하였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강유는 자신에게는 한실을 부흥시킬 계책이 있다면서 부하들을 달래며 종회에게 항복하였습니다. 강유는 종회에게 사마소에게서 독립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우도록 부추겨 위나라 장수들을 모두 제거할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강유가 등애가 아닌 종회에게 항복하자 종회는 강유를 상빈으로 대접하며 서로 의형제를 맺는 관계로 까지 의기투합하였습니다. 

 

등애는 강유가 자신이 아닌 종회에게 항복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사마소에게 서신을 보냈습니다. 승리에 도취하여서인지 등애가 유선을 왕으로 봉하고 내년에 오나라에 사신을 보내 항복을 권유하자는 등의 선을 넘는 내용이 담겨있자 사마소는 의심하는 마음이 커져갔습니다. 사마소는 종회에게 등애를 감독하라 명하였고 종회는 사마소에게 등애를 향한 의심에 불을 지르는 상소문을 보냄과 동시에 등애가 사마소에게 보내는 편지를 가로채어 오만불손한 가짜 편지를 보내기까지 하였습니다. 등애의 편지를 읽고 노발대발한 사마소는 종회에게 등애를 제거할 것을 명하면서 가충에게 3만을 주어 출정시키고 자신도 위나라 황제 조환과 함께 친정할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사마소는 촉이 멸망한 상황에서 등애와 종회를 모두 정리할 결심을 하였습니다.

 

종회는 감군 위관에게 성도로 가서 등애 부자를 잡으라 명하였습니다. 이는 성도에서 등애가 자신을 체포하려는 위관을 죽이면 이를 명분으로 촉에서 반란을 일으키려는 계책이었으나 주도면밀한 위관은 황제의 조서를 30여 장을 준비하였는데 “조서를 받들어 등애를 잡는다. 여타 다른 사람들은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협조하는 자는 상을 줄 것이고 아니한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격문을 성도에 있는 여러 장수들에게 보내 사전에 등애 모르게 포섭하였습니다. 

 

위관은 몰래 성도로 들어가 깊은 잠에 빠진 등애를 포박하여 준비한 함거에 실었습니다. 아들 등충도 소식을 듣고 급히 밖으로 뛰어 나왔다가 잡혀 함거에 갇힌 신세가 되었고 등애의 직속 장수와 아전들도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때 종회와 강유가 들어오다 함거에 갇힌 등애를 보고 꾸짖으며 함거를 낙양으로 옮기도록 명하였습니다. 더욱 친밀해진 종회와 강유는 모반할 계획을 주야로 짜고 있는데 사마소가 등애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대군을 거느리고 장안으로 나와 있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두려워진 종회는 사마소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깨닫고 강유에게 상의하였습니다. 

“사마소가 장안으로 진군했다고 하는구려. 이상하지 않소?”

강유는 “이상하다 뿐이겠습니까? 임금이 신하를 의심하면 그 신하는 죽고 맙니다. 종회께서는 곽태후의 유언이라고 거짓 선포하시고 사마소가 전 황제를 시해한 죄상을 세상에 알리시면 충분히 중원 천지를 장악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종회는 “정말로 좋은 계책이오. 강유 장군께서 나를 봐서 선봉을 서 주시겠소?”

 

종회는 강유와 상의한 대로 장수들을 궁으로 초대한 다음 연회를 성대하게 열었습니다. 갑자기 종회는 대성통곡하면서 “사실은 곽태후께서 승하하실 때, 나에게 유언장을 내리셨소. 사마소가 황제를 시해하는 대역무도를 범했으니 더 큰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에 사마소를 토벌하라 명하시었소. 모두 다 이에 맹세하는 서명을 하고 큰 일을 성공시킵시다.” 

촉 정벌군의 여러 장수들은 갑작스런 사태에 어리둥절 하였으나 종회는 칼을 뽑아 들고 엄포를 놓아 서명을 시킨 다음 자신이 거느린 위나라 장수들을 어찌할까 고민하다 아직은 믿지 못하고 옥에 모두 가두었습니다. 강유는 종회에게 이들을 모두 죽이고 새로이 독립할 것을 권하였습니다. 

 

종회의 심복 구건이 종회가 옥에 갇힌 장수들을 모두 죽일 것을 알고 가까웠던 옛 상사인 호군 호열에게 찾아가 상황을 알려주었습니다. 호열은 구건의 말을 듣고 옛정을 생각하여 자신의 아들 호연에게 이를 알려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구건은 호열의 부탁을 듣고 갇힌 장수들의 식사 수발을 위한 사람을 청하자 종회는 구건에게 “너를 믿고 모든 것을 맡겼으니 책임지고 맡아서 하라.”라고 하며 구건에게 감옥의 감시업무를 모두 맡겼습니다. 옥에 있던 호열은 구건을 통하여 밖에 있는 아들 호연과 연락하였고 감군 위관을 비롯한 장수들은 불시에 거사를 일으키면서 종회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종회와 강유가 대항하였으나 혼란스러운 난리 중에 큰 화살을 맞은 종회는 치명상을 입었고 강유는 스스로 칼을 목에 대고 자결해 버리면서 종회의 반란 시도는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새로이 권력을 잡은 감군 위관은 자신이 등애를 체포하여 함거에 가두고 낙양으로 호송시킨 사실을 기억하고 평소에 등애와 사이가 나쁜 부하인 호군 전속에게 기병 5백을 주어 등애의 함거를 추격하게 하였습니다. 면죽에서 등애를 따라잡은 전속은 등애를 죽였고, 새롭게 촉 정벌군의 전체 상황을 보고받은 사마소는 안심하면서 낙양으로 회군하였습니다. 등애, 종회는 죽었고 제갈서는 낙양으로 호출되다 보니 장수들 중에서는 위관의 공이 가장 절대적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촉의 성도에서는 혼란 중에 학살이 자행되었고 후주 유선의 아들인 태자 유선도 그 와중에 죽게 되었으며 관우의 손자인 한수정후 관이도 위병에 의하여 살해되었습니다. 성도는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10여 일이 지나자 사마소는 가충을 성도로 보내어 방을 붙이고 백성들을 위로하게 하였습니다. 방의 효과는 즉시 나타나 민심은 가라앉고 세상은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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